본문) 사 55:6-13, 마6:5-15, 벧전1:13-21
비로소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가을이 오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를 읊조렸지만 올해만은 사양하려고 합니다.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라는 그의 싯 구절이 차마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을 견디며 바닥이 난 내 인내심으로는 이틀이 아닌 단 하루의 남국의 햇볕조차 견뎌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릴케가 말하는 ‘이틀 동안의 남쪽 햇볕’은 과실이 무르익고 포도주에 맛이 깃드는 달콤한 볕이지만, 올해 한반도를 폭염으로 달군 햇볕은 채 여물지도 않은 과실과 채소를 말라비틀어지게 하는 요나가 경험한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동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천지를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신지라 달이 차오르고 바람이 바뀌며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둘러보니 짙푸른 녹음(綠陰) 빛이 조금씩 바래갑니다. 올려다보니 하늘은 그지없이 푸르며 높고,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것 같은 적란운(積亂雲) 대신 저 하늘 높이 깃털구름이 흩어져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들어보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감수성을 높여주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그 레퍼토리가 바뀌었습니다. 멋쩍지만 가을이라는 유치한 핑계로 깊은 생각도 해보고, 어설픈 글 한 자락이라도 끄적거리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사색(思索)의 계절 가을이 왔으니 창조절 셋째 주일에 주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조금 더 깊이 묵상하는 것은 어떨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이사야는 이사야서 40장 이후로 오랜 포로생활로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사야는 포로 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생각과 길을 밝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마침내 이루어져 그들을 기쁨과 평안의 길로 구원하실 것을 선포합니다.
이사야는 이 놀라운 메시지를 풍성한 비유의 언어로 더욱 생생하게 전합니다. 비유의 언어는 논리적이거나 분석적이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통전적입니다. 비유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에 새겨 놓으신 창조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풍성한 비유의 언어가 가득하며 독자들은 그 비유의 언어를 통해 성경에 더욱 쉽고 더욱 바르게 다가서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많은 비유로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사야는 오늘 본문을 통해 피조 세계에 새겨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언어들을 비유로 나열합니다. 하늘과 땅과, 비와 눈과, 씨와 싹과 열매와, 산들과 언덕들과 들의 모든 나무와, 가시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찔레와 화석류가 그것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길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과 전혀 다르다고! 이는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다고! 사람의 생각과 길은 악과 불의이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긍휼과 용서와 생명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헛되이 흩어져 버리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 – 긍휼과 용서와 생명 – 을 형통하게 이루어 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구원의 날에 가시나무와 찔레 같던 그들의 고난의 날이 끝나고 잣나무와 화석류와 같은 기쁨의 환호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되었으니 이제 그를 찾고 그를 부르라고 포로 된 자들을 생명의 역사로 초대합니다.
소출의 계절 가을에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을 귀 기울입시다. 이 계절에 온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어 우리에게 사랑으로 내어주시는 풍성한 결실을 보며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생명을 묵상합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을 부르며 가을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산하와 노란 물결 굽이치는 들녘과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악과 불의에 오염된 우리의 생각과 길을 내려놓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깊이 묵상합시다.
베드로는 이사야가 전하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를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로 이어 받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사람의 생각과 길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한 것처럼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그 앞에서 사람이 취할 태도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주께서 주실 은혜만을 온전히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심판하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거룩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을 이루어 갈 것을 권면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의 풍성한 비유를 통해 포로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그 길을 전한 것처럼 베드로는 이제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 속에 세상을 이길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곧, 이사야가 온 피조 세계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계시를 전하였다면 이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겨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시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러할진대 이 가을에 우리의 묵상도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가을의 정취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묵상하는 자리에서 이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묵상함으로 그 사랑을 내 안에 그리고 역사 속에 내면화하고 구체화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면 참 좋겠습니다. 온 천지에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안에 이루신 것처럼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와 너 그리고 이 사회와 역사를 향한 사랑으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온 피조 세계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저절로 고개 숙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길은 여전히 악하고 불의한지라 가장 경건한 기도의 자리에서마저도 미혹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만하여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랑스러운(?) 거짓 기도를 할 때도 있고, 산만하여 마음 한 자락 담지 못한 채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중얼거림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거칠고 악하여 남을 용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소원만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연약함과 패역함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하지 않아도 이미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만을 나열해 놓는 나의 기도가 아니라, 겸손하고 은밀한 기도의 자리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비로소 깨닫게 하시는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좋은 계절 가을에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온 피조세계 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그 사랑 때문에 나를 위해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찾으십시오!
릴케의 가을날은 읊조리기가 꺼려졌으나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는 꼭 한 번 낭송해야겠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