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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1-1) - " 까꿍! - 누가 왕인가?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19-08-29 (목) 12:22 5년전 2751  

본문) 창 3:1-13,22-24, 롬 5:12-21, 마 18:1-14

 

  요즘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두 글자는 ‘조국’입니다. 현 정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이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수많은 의혹과 문제제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본인과 관련되었다고 하면 아들, 딸, 아내, 가족, 사촌 가리지 않고 의혹을 제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결국 그런 노력 덕일까요? 그를 향한 긍정과 기대의 시선보다는 우려와 탄식아 터져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수많은 장관 후보자 중 왜 이 사람 한명에 대해 모든 언론이며, 정치권이며, 국민들이 집중하는 것입니까? 이는 그가 그냥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그 중에서도 가장 공정하고, 올바른 정신과 기준을 갖추어야 할 법무부 장관 후보이기 도 하고, 현 정부 가장 큰 과제로 삼은 사법개혁의 키를 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현 정부의 개혁을 대변하는 역할을 그간 담당해 왔고, 그가 법무부장관이 된다는 것은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됐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과 시선이 그를 향해 쏠려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수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갖고, 작은 의혹 하나만 등장해도 수많은 언론들이 달려들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많은 의혹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모든 의혹들이 본인의 말처럼 말끔히 해소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런 시국에 맞춰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 되묻고 있습니까? ‘누가 왕인가?’ 우리 삶의 중심에 누가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되묻는 것이죠. 특별히 오늘부터 시작되는 창조절에 맞춰 이 세상을 이끌고 주관하시는 이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에 대해 돌아보게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세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고 생각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오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의 첫 범죄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에덴은 하나님 은혜의 완성판이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동산입니다. 그 아름다운 낙원을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대가도 없이 당신의 피조물 중 하나인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그 낙원의 주인공으로 선택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거룩한 질서 안에서 주어진 것들을 누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 안에 있을 때, 그 거룩한 질서 안에 있을 때 에덴의 복은 인간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의 주인으로 세우시지 않고, 관리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부르신 것이죠. 부름 받은 인간이 할 일은 그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 에덴을 누리며, 그 질서를 지키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동산을 허락받은 그 인간의 손에 의해 깨어졌음을 오늘 창세기 3장은 보여줍니다. 주목할 것은 깨어진 원인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깨어진 이유로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피조물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편입된 인간이 그 자리를 벗어나 스스로 왕이 되고, 창조주의 자리에 앉으려 했던 욕심이 결국 오늘의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은 그들이 왜 주인이 될 수 없고, 왜 왕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담은 잘못을 묻는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에게 책임을 넘기고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는 책임회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왜 왕이 될 수 없는지, 그들이 왜 종이요, 피조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왕은 책임을 회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짊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열왕기상 3장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과정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진짜 엄마를 가려 달라는 송사에서 솔로몬은 책임감을 이용하여 지혜로운 판결을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진짜 엄마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그 엄마의 권리조차 포기할 줄 아는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가짜는 그만한 책임감을 간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직접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소리 높여 칭송했던 때와는 달라진 아담을 발견합니다. 오늘 아담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그 동반자에게 떠 넘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왜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만이 ‘왕이시다’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 왕으로서 산다는 것의 책임감과 무게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 왕은, 이 세상을 창조한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은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며, 우리에게 고통 주고 멸망으로 인도하기 보다는 우리를 용서하사 다시금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한 인간들을 낙원 밖으로 추방하면서 완전한 추방이 아닌 한시적 추방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그들에게 생명나무 곁으로 오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고, 불의 칼을 두어 지키게 함으로, 함부로 다가설 수 없게 만든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듯 ‘지킨다는 것’은 결국 조건이 되면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을 깨고, 선악과를 범한 아담과 하와였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그들이 그에 합당한 준비(회개)를 하면, 언제든지 불의 칼을 거두시고 다시금 생명나무 곁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셨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과 파멸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에 있음을 오늘 구약의 말씀은 더욱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핀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는 대목입니다. 제자들은 의도를 갖고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크냐?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 말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평행본문인 마가와 누가에는 분명히 ‘논쟁’을 벌였다 증거합니다. 곧 오늘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질문에는 우리 중 누가 가장 높은 자입니까? 예수님께서 정해 주시오 하는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죠. 마치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하셨던 선악과를 범했던 모습을 닮아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여 사람 낚는 어부로 살겠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이 정작 관심을 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권력이요, 출세요, 명예였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외치고, 입으로는 아멘 아멘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세상과 별다른 차이 없이 날마다 성공과 출세, 축복을 간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과 같은 것이죠.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내놓으신 답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천국에서도 큰 자로,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찼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아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기를 꿈꿨던 우리들에게 가슴 찔리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더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출세와 성공에 눈멀어 살고 있던 제자들에게 정신 차려라 외치시는 아픈 지적인 것입니다.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의 새 생명을 허락받은 인생들의 목적은 정죄하여 우리들의 이웃을 죄악의 나락에 떨어뜨려 영원한 멸망의 굴레 가운데 살도록 하는 존재가 아니라 죄로 인해 생명을 잃고, 세상 가운데 방황하는 인생들을 찾아 거룩한 생명의 품으로 인도하는데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껏 제자들의 인생은,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은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으며,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 성공이요, 복이라 생각해 왔던 것이죠. 또한 그 복을 갈망하며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에 간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는 그런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며, 오히려 넘어지고, 상처받고, 아픔 당한 이웃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치료해주며, 위로해 주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뜻이다 지적합니다. 성도의 본질은 남들과 싸워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죄를 드러내 스스로의 우월성을, 스스로의 결백함을 입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며, 먼저 용서하고, 손 내미는데 있음을 오늘 복음서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로마서의 말씀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서신서는 사망의 종으로 살 것인가? 생명의 종이 되어 살 것인가?,  아담의 길을 걸을 것인가?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들에게 되묻고 선택하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한 두 인생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인생도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서신서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깨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굴레로 인도하였지만, 둘째 사람 예수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 갖혀 살던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고, 다시금 회복과 생명의 길로 이끄사 불을 칼을 치워 버리고, 태초의 그 생명나무 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미래가 예수와 같이 될수도 있고, 아담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오늘 서신서는 분명히 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되묻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오늘 서신서는 그 모든 거룩한 그리스도의 선택이 우리들의 결단과 우리들의 선행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선택이었음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하나님 그 거룩한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아름다운 이 세상을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없이 은혜로 인간에게 허락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다시금 우리를 구원하셨고, 태초에 세워 두셨던 불 칼을 거룩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제하사, 다시금 우리를 생명의 동산으로 인도하시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역사라는 것이죠. 이는 99마리 양을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떠나신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주신 은혜로 사는 우리가 할 일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은혜받은 자, 구원받은 자, 새 생명을 약속받은 자의 인생인 것이죠. 

저희 아이가 어릴 때 읽어 주었던 책 중에 “까꿍”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며 ‘까꿍’ 인사하는 책입니다. 어릴 때 아이에게 읽어주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사자, 호랑이, 하마, 개구리 다양한 동물들이 아이와 인사를 나누며 즐겁게 노는데 아이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기대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더 재밌었던 것은 그걸 보고 아이가 이제는 저를 상대로 ‘까꿍’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만 가리면 자신이 안 보인다고 생각한 아이가 눈을 가리고 찾아봐라 하면 저는 안 보이는 듯 연기를 하며 ‘어디 있지? 어디 있지?’를 반복하면 아이는 아주 즐겁다는 듯이 눈을 뜨고 제 앞에서 얼굴을 내밀며 ‘까꿍’ 합니다. 내가 한번 나타나줬다 하는 넓은 아량으로 밝은 웃음을 머금고 말이죠. 여러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정말 눈이 안 좋습니까? 눈 앞의 아이를 정말 못 찾을까요? 그렇지 않죠. 알고도 짐짓 못 찾은 듯 속아주고, 알고도 져주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여러분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부터 시작될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모든 공직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빚진 자의 마음일 겁니다. 그들이 수많은 질타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나, 임명권자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족함에도 이해하고 용납해 준 국민들의 아량 때문입니다. 때문에 임명받고 나서는 욕심대로 살아왔던 과거의 구습은 버리고,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개혁을 완수하고, 이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 준 국민들을 향한 그들의 보답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는 동시에 이 땅을 사는 모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허물을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부족함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인생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회주시고, 용서해 주셨던 그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낮은 자의 자리에 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증거하는 거룩한 주의 증인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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