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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기(1) - 양무리 천국을 찾은 양무리 목사

관리자 2018-11-30 (금) 11:02 5년전 1451  

남태평양 국가들 여행기 /                                                                                                                                    최 부 옥  목사

 (2018.10.28.-11.10)

그곳에 다녀 온 지 어느 덧 두 주간이 흘렀으나, 그 곳 여행의 여운(餘韻)이 가시지 않는다. 뭔가 가슴에만 담아 둘 일이 아니라 정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그렇다고 보인다. 소회(所懷)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더욱 느낀 까닭이다. 그래서 다소 무거운 몸과 맘을 추스리면서, 스스로의 기대감 속에서 증인의 심정을 담아 연필을 든다.

 

떠나던 첫날(10.28)은 마침 주일이었다. 우리 양무리 교회는 추수감사절 예배와 함께 음식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매년 정착해가는 감사절 음식 축제는 이제 제법 자리 잡아 가는 느낌을 준다. 그날도 교우들의 마음은 들뜬 마음과 함께 축제 분위기가 완연했다.

 

당회장 오정석 목사의 배려로 나는 잠시 교우들에게 이런 출발 인사를 했다.

‘우리 부부의 생애에서 가장 새로운 여행길에 오릅니다. 비교적 세계 많은 곳들을 찾아보긴 했으나, 남태평양 국가들인 피지-뉴질랜드-호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대륙에의 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분위기와 환경도 너무도 새로울 듯해서 나는 이번 여행을, 부담 보다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출발합니다. 특히 이 나이에 하나님께서 아직 보여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들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 부부를 새로운 곳을 직접 보도록 보내신다고 판단이 되기에, 더욱 높은 감사와 기대감에서 다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자녀들의 도움과 사랑에 의한 것입니다. 부모의 목회 은퇴에 대한 위로(慰勞)와 함께, 7순 맞이를 축하(祝賀)하기 위한 배려의 성격도 담은 매우 뜻 깊은 나들이입니다. 부모의 이 축복된 여정을 위해, 오랫동안 마음과 정성을 다해 치밀하게 준비해 준 딸 지은 집사와 아들 부부인 영준 장로와 정희정 집사에게 깊이 고마움을 표합니다.’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찾은 곳은 최근에 개통한 인천 제2 공항 터미널이었다. 국적기인 KAL로 가게 되어서, 제2 공항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제1 에서 제법 들어가는데, 시간도 제법 걸렸고 규모 역시 대규모의 새롭게 확장된 터미널이었다. 세계 제1의 공항 터미널이라는 평가가 타당함을 느끼면서, 국력 신장의 자부심도 일어났다. 여행사 <노랑풍선>를 찾았다. 그곳이 바로 이번에 우리의 그룹(package) 여행을 인도할 책임 여행사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16명의 여행 동행자들을 찾을 수 없었다. 첫 미팅은 첫 기착지인 피지의 난디 국제공항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곳까지는 모두가 가이드 없이 가야만 했다. 이것부터가 그룹 여행의 색다른 첫 경험이기도 했다. 단 하나의 스스로의 규칙을 설정한 것이 있었다. 처음 가는 홀가분한 여행에서, 평생 간진 해 온 목사 신분은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여러 가지로 그것이 서로를 편하게 하는 일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 였다.

 

19:35의 출발로부터 약 11시간 가까운 긴 밤 비행기 여행을 했다. 숙면이 약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가지고 간 조선희의 책, <세 여자.1>을 읽으며 갔다. 그 바람에 몸은 신(新) 세계를 향하고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1900년 초기에 우리 조선의 험난했던 시대에로의 여행길에 들어가 있었다. 참 묘한 여행길이었다.

 

블라(Bula)의 나라, 피지 공화국

 

둘째 날(10.29) 일정은 피지 난디(Nadi) 국제 공항에서부터였다. 예정된 그곳 시간 오전8:25에 무사히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후끈거리는 날씨가 이질감을 풍기면서, 우리의 여행 분위기를 돋우어 주었다. 맑고 깨끗한 자연과 반팔에 반바지들, 화려한 색상들, 뚱뚱하고 큰 덩치의 피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러면서 대기했던 피지인들이 이방인인 우리를 환영하는 목걸이들을 ‘블라’를 연발하며 일일이 걸어 주었다. 블라는 그곳에 인사말로 우리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등의 폭넓은 의미였다. ‘블라’를 모르면, 예의가 아닌 듯싶기도 했다. 공항에서의 현지인 환영 꽃목걸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친절한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항 입구에서는 일련의 피지인들이 프랑카드를 내걸고, 이스라엘 등의 해외 성지순례를 다녀 온 일행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모임이 눈에 띠였다. 찬양과 기도가 뜨거웠는데, 그들의 또 다른 열정을 부담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 피지는 일찍이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와 상당히 복음화가 된 곳이었으며, 그 중에는 감리교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 16명의 처음 미팅이 바로 그곳 공항입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옷들 갈아입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국에서의 추위를 벗고 피지에서의 더위를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가볍고 짧은 여름옷들을 입고 새 환경 적응에 대비에 들어갔다.

 

그곳 피지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경상도 합친 정도였고, 영국 지배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그곳에 인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지금은 숱적 면에서 그곳 원주민들과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바람에 지금의 피지는 독립 국가이면서도 영연방(英聯邦)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소국뿐만 아니라, 호주 등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독립주권국가를 이룩하고도 여전히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남아있는 까닭은, 그것이 자기 나라를 다른 강대국의 침략이나 간섭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사실은 힘의 역학관계를 자국 보호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음을 새롭게 확인한 대목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우리도 강대국인 미국의 우산을 활용하고 있는 처지와 마찬가지였다.

 

영연방의 뚜렷한 표적 중의 하나는 자동차 운전석의 자리배치였다. 대체로 세계의 대부분의 왕국들은 오른쪽 운전석을 택하고 있다. 영연방이 아니라도 그러했다. 아시아에서 만해도, 일본과 태국이 그렇다. 영연방인 피지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이었다. 뉴질랜드와 호주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옛적의 영국의 힘이 ‘24시간 해떨어지지 아니하는 나라’로서의 막강했던 힘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그 바람에 일본이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엄청난 메리트를 누리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곳에도 일산차가 활개치고 있었다.

 

피지의 원주민들은 생김새와 골격에서 우리보다 크고 굵고 강하게 보였는데, 그 바람에 피지는 세계 럭비 시장에서 항상 최강자급에 있다고도 했다. 국기(國技)가 럭비였다. 곳곳에 골프장이 널리 펼쳐져 있지만, 골프는 자국민에게는 그리 인기종목이 아니었고, 외국 부자들을 위한 것들로 보였다. 특히 이웃의 뉴질랜드와 호주, 그리고 세계적인 겔러리들이 대거 몰려와 휴양과 골프를 즐기고 있었고, 골프 훈련을 사계절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스타들은 럭비의 열기 때문에 이곳 피지에서는 그저 조용히 왔다 가야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사우나카라는 피지 전통마을을 방문했다. 피지 방문자들이 의례히 찾아야 되는 환영식장이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피지 전통의 환영예식의 모든 것들로 대접해 주었다. 우리 한국의 막걸리 같은 카바란 전통음료도 시음하면서 세레머니에 참여했고, 고유의 춤인 메케도 관람했다. 코코넛 음료도 시음했고, 피지 전통의상인 술루도 입고 사진들도 찍었다.

 

중식으로 점심한 후, 재래시장을 방문하면서, 그곳 피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파인애플, 망고, 바나나, 만다린 등의 계절 과일 등도 시식하면서 그곳 생활상을 들여다보았다. 지역마다 교회와 힌두 사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교회나 사원의 규모를 보면서 그곳 마음의 빈부도 측정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다. 지역에 뿌리를 둔 종교시설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은 여전히 가슴에 숙제로 남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일행은 조금 일찍 숙소에 입주했다. 휴식과 충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간밤의 설친 잠도 해결해야만 했고, 또 내일의 새로운 경험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당황한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 온 전기 콘센트가 그곳의 규모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220v라도 이곳에서의 규모는 작았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는데, 다행히 가이드의 친절로 문제를 해결되어, 핸드폰 충전은 할 수 있었다. 사진과 통신기능 때문에, 충전문제는 실로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꿀맛 같은 휴식 후 가졌던 저녁 식사는 한국 음식이었다. 여기에서도 한국인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이유가 식당에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우리가 만난 이들은 우리와 정반대의 역(逆) 코스로 온 이들이었다. 호주-뉴질랜드를 거쳐 마지막으로 이곳 피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의 시작이 그들에게는 마지막이어서, 흥미로운 조우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계의 관광 대국이 되었는지-, 실로 놀랍고 대단한 변화임을 느꼈다. 그 날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우리 일행은 서로를 사귀고 알아가는 이웃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 3일째(화,10.30)는 정말 화려했다.

 

그 날 하루 일정은 온통 티부아(Tivua) 아일랜드를 크루즈를 타고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그곳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은 크고 작은 다양한 크루즈 배들이 많았다. 맑고 청아한 하늘과 파아란 바다 위에 흰빛색의 크고 작은 크루즈들의 움직임들은 엄청난 낭만을 주는 훌륭한 조합이 분명했다. 주변 선창가도 잘 정돈되고 깔끔함으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우리 일행은 크루즈 중에서도 고풍(古風)스런 범선(帆船)을 타고 약 1시간 40여분이 소요되는 항해를 했다. 1-2백명 정도의 여행객들이 동승했는데, 우리를 맞이한 배는 그곳 원주민들의 따뜻한 환영과 원주민들 특유의 다양한 음악과 차와 유흥으로 지루한지 모르게 여행을 즐기게 해주었다. 주변에 펼쳐진 남태평양의 넓고 푸른 바다와 주변에 펼쳐진 다양한 섬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한 폭의 멋진 풍경이어서, 세파에 찌든 우리 가슴에 신선한 기쁨을 가득 안겨주었다. 정말 황홀했다. 특히 피부 보호를 위하여 예전에 없던 썬크림도 계속 발라 데면서 말이다!

 

항해 후, 시야에 조그만 섬이 들어왔다. 티브아 섬이었다. 그 섬은 원주민 추장이 주인인 듯한데, 여행객을 유치하여 휴식처로 제공하는 섬인 듯했다. 도착 팻말이 인상적이었다. <BULA! WELCOME TO TIVUA ISLAND> 잔잔한 흥분 속에서, 그곳에서의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 아름다운 섬의 분위기에 일행들은 적잖은 흥분을 느낀 듯했다. 게다가 그곳은 준비된 전통적인 차들과 음료와 술들과 음식들이 무료 제공되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나 식당에서 주문하여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먹거리부터 천국다운(?) 시도로 보였다.

 

일행들을 위한 몇 가지 자원 체험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였는데, 배 밑의 해저 생물들이 보이는 글라스 바름 보트 관람과, 아름다운 산호섬의 밑바닥을 직접 수영하며 보는 스노쿨링 체험을 하는 일과 적은 보트로 주변을 돌아보는 일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 기회 아니면, 다시는 없다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다. TV의 정글의 법칙에서 김용만 일행을 통해 보아왔던 스노쿨링에 도전하고 보트 타기로 해보기로 했다.

 

공기통을 입 속 가득히 물고, 머리를 물속에 처박으면서 물 속 수영을 하는 일이 내 생애 처음이어서 무척 흥분도 되었지만, 소중한 경험이라고 보고 도전했다. 아내는 노상 수영장 경험이 많아서 훨씬 노련했고 미숙한 남편을 많이 도왔다. 그 도움에 힘입어 비교적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었지만, 발에 낀 오리발은 아무래도 힘들었다. 파도가 만만지 않았고, 호흡도 쉽지 않아 물도 먹게 되었으나, 결국은 오리발을 빼내서 시도하는 바람에 해변가 스노쿨링을 해내는 쾌거(?)를 짧게 경험했다. 한없이 맑은 남태평양 바다가 깨끗하고 맑아 신비로웠다. 승리의 기쁨이 따로 없었다!

 

이런 우리의 행보가 동행한 일행들에게는 뜻밖의 도전과 즐거움을 준 듯했다. 나중에 계속 받은 인사를 듣다보니, 그곳 티브아 섬에서의 우리 부부가 보인 적극성과 활발함은 그들에게는 일종의 놀라움(?)이었던 듯했다. 일행 중 가장 고참 부부로 보이는 우리가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임하는 모습에서, 일행들은 감동과 활력을 적잖게 받게 된 듯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입장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고참 멤버의 느리고 비협조적 행태로 일행 전체에 부담을 안겨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겠다’. ‘인생의 매우 소중한 여행이며 새 경험들이다. 열심히 참여하고 많이 배우자’.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오자’. ‘그곳에서 주시는 또 다른 메시지에 귀를 활짝 열자’ 등등의 나름대로의 입장을 차근히 실행하였을 뿐이었다. 이런 우리의 입장은 어느 사석에서 피력이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매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여행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많이 배우게 됩니다’

 

티브아의 점심은 전통 바비큐 뷔페와 각종 음료들이 제공되었다. 생선, 치킨, 소시지 등이 풍성했다. 점심 후, 우리는 그 섬을 약 30-40분간 도보 투어를 했다. 야자수 나무와 코코넛 열매들이 그 적은 섬에 가득했다. 거북이와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도 한 듯했다. 사진과 그림에서만 보았던 남태평양의 정취를 우리 부부가 하나 되어 한껏 맛보고 체험한 이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피지 섬의 아름다움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저녁 식사 중에 나는 얼마 전 피지로 교인들 400여명을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요 피난처’라고 유혹하여 이민하게 한 이단(異端)자 신옥주 그룹들의 근황에 대하여 간략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피지 모 처에서 노동하며 집단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동시에 가져 온 재산으로 피지 처처에서 크고 작은 업체들을 설립하거나 경영하면서, 피지 산업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물론 본국의 여권 무효조치 내기 소환 조치가 있어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그곳에서의 자기들 천국 건설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였다. 문제는 피지 정부가 그들이 가져 온 경제력 때문에, 내치지를 못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갔다는 데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언젠가 그들은 그곳에서 제2의 인도인들처럼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께서 평가해 주실 것이다!

 

제4 일째(10.31)는 피지를 떠나, 두 번째 여행지인 뉴질랜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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