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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기념 - " 새 주인을 모신 이들의 과제 " / 제33주년 기념주일

관리자 2019-07-14 (일) 22:28 4년전 1022  

                                                                                                                                             2019. 6. 30/ 교회창립 제33년 기념주일

본문) 엡 3:14-21, 창 32:22-32, 마 13:44-52

 

오늘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세 번째 주일이다. 특히 우리 교회로서는, 창립된 지 제33년이 되는 기념(記念)주일이기도 하다. 햇수로만 보면, 소년 시절을 지나 청년시절을 맞이한 듯하다. 그 때 1986년 6월 29일에 교회의 주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 지구촌에 조그마한 겨자씨와 같은 한 복음의 생명체인 우리 양무리교회를 생산해 주시고, 이제껏 이렇게 키워주신 일에 대하여, 마음을 다해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그 중에 우리는 교회당만 3번을 이전(移轉)하였다. 강남의 대치동에서 시작하여 일원동으로, 그리고 현재의 송파 가락동으로 이사해왔다. 벌써 9년째를 보내면서, 이제는 담임목사도 2대째를 맞이하였다. 시무 장로도 어느 덧 3대째를 맞이하였기에, 이제는 그 동안의 경험과 연단을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는 교회로의 모습을 구체화시킬 때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마침 오늘 세 본문 말씀들은 교회생일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삼위일체적으로 메시지를 주신다. 복음서로는 현재 우리가 꽉 붙잡고 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고, 구약으로는 그것을 보유하기 위해 우리가 이전(以前)에 어떤 씨름을 해왔고 또 무엇을 얻었으며, 서신서로는 그 보화를 얻게 된 우리의 앞에는 또 어떤 새로운 과제가 부여된 것인지를 밝혀준다. 

 

마침 본인은 성령의 손길에 붙들려, 본 교회를 개척하고 섬겼으며 이제는 은퇴하여 협력자의 위치에 들어선 역사의 증인의 입장이 되었기에, 본문의 메시지와 우리의 역사와 과제를 대입하여 증언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일찍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말씀에서 천국을 보았고, 그 천국을 소유한 자들은 누구나 세상과 자신을 이기며 승리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마지막 구원도 그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갈 때 얻을 것을 믿고 있다. 이제 그 고백으로 증언하려고 한다. 

 

복음서 – 우리가 찾아낸 하늘의 보화에 대하여 말씀한다

본문 비유의 말씀은 온통 천국(天國=하나님의 나라)을 소개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 천국 비유들에 담긴 몇 가지 강조점들을 먼저 소개드린다(44-46절 참조). 

 

첫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寶貨)’와 같고(44절) ‘극히 값진 진주’와 같아서(45절), 아무에게나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마치 최상위(最上位)의 진리를 찾는 구도자(求道者)와 보물이 있는 광맥을 찾아 두드리는 광부(鑛夫)와 같은 이들에 의하여 찾아지는 것이며, 꾸준히 찾고 구하며 문을 두드리는 자들에 의하여 열리는 세계임을 말한다(눅11:9-10참조). 

 

둘째, 구하는 그들은 천국을 자신의 삶과 존재(存在)의 최고의 가치요 핵심 목표로 안다. 즉 천국을 이 세상 무엇보다도 절대 우선하는, 제일의 행복의 근원이며, 삶의 행복과 기쁨 그 자체로 간주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전력투구(全力投球)하며 산다. 즉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다 팔아서’(내려놓고 포기도 할 수 있을 정도로)라도 사 두려고 한다(44-46절). 그러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의 삶이야말로, 바로 지옥(地獄)의 생활이다! 

 

셋째, 혹 천국을 발견하고, 또 그 귀중함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먼저 ‘내 소유가 될 때에만’ 기뻐한다. 그러기에 천국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그 천국을 우선 자기의 것으로 확정(確定)짓도록 하기 위해, 다음 행동에 들어간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처분해서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삼는 단계’로 나아간다. 천국은 볼 줄 아는 이들이 행동한다. 지옥(地獄)갈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비상한 행동과 수고들이 거기에서 나온다. 

 

넷째, 천국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공동체인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Mission)를 하게 된다(47-50절).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47절)이 바로 그 선교를 말하고 있다. 그 선교로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고, 악한 세상에는 선한 영향도 끼친다. 선교의 열매에는 꼭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못된 것도 걸러진다. 의인과 악인도 걸러내기도 한다(48-49절 참조).

 

다섯째, 천국의 제자 된 이들은 주의 말씀을 ‘깨닫는 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의 서기관’(書記官=율법교사)이란 새 이름을 부여 받게 된 자들로서, 마치 자기가 받아 논 옛것(구약의 율법)과 새것(예수의 가르침과 교훈들)을 가져다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에 맞도록 해석(解釋)하고 또 행동으로 보여주는 위치에 있는, ‘집 주인’과 같은 역할을 행한다(51-52절).

 

☞ 본 양무리교회 탄생 이면(裏面)에는, 크게 두 가지 동기(動機)들이 있었다. 

첫째는 일본 유학생활을 통하여,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제대로 맺지 못한 한국교회의 현상에 대한 아픔과 깨우침, 그로 인한 새로운 영적 도전이 ‘새 교회를 향한 꿈’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 각성 때문에, 지금껏 우리 교회는 줄곧 한국교회 일반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둘째는 교회는 절대 인간 중심이 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본 교회 시작되기 전, 잠시 개척목사로 사역한 교회에서 나는 인간 중심의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확인한 바 있었다. 결국 나는 주님과 그의 말씀과 뜻이 펼쳐지는 교회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 내가 받은 소명임을 알고,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밑바닥 개척을 시작했다. ‘양무리교회’란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분명한 목회지침이 있었다. 교회는 유력한 인간으로 되는 게 아니다. 주인 되신 주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고 되게 하신다. 그 바람에, 나는 교회건축문제로 인한 교회 떠나는 유력 교인들을 결코 붙들지 아니하였다. 

 

☞ 새 교회인 감추인 천국 보화를 찾아내고 정착하기 위해, 성령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게 하셨다. 대치동에서의 성전 전세 얻기와 그곳에 작은 방 들여 살기, 지하방들과 옥탑방들 찾아 살기, 그러면서도 뜻밖에 분당의 새 아파트 살기, 그러면서 나중에는 일원동빌딩을 구매하면서 옥탑에다 방 들여 살기, 그 후로 현 교회당을 매입하고 이전하면서 아파트살기 등으로 이전하며 살아왔다. 진정 다 내려놓게도 하셨고, 채워주시기도 하신 손길이었다. 

 

☞ 그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개척 10년 후인 1996년도에, 일원동의 빌딩을 성전으로 매입한 일이었다. 당시 가진 돈은 4천만원 곗돈을 포함해서, 8천만원이 전부였는데, 그 빌딩은 무려 9억5천만원이었다. 무려 12배 정도의 액수인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그 건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갖고, 매입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딱 2년간의 세월이었다. 그 일은 실로 세상의 시각과 계산으로는,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었고 허황된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에 일어난 변화들과 그 결과는 완전 상반된 두 측면이었다. 집 있고 돈 있으며 헌금에 도움이 될 만한 교우들 상당수가 교회를 떠나 간 일이었고, 그 대신 가난하고 헌금에는 힘이 없이 보이는 이들이 남아서 이 일에 참여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나? 우리가 그 건물을 끝내 9억원에 매입하고 등기이전(登記移轉)까지 완료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꿈을 꾸던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한 무료 장학숙을 3층 전층에 들여, 새로운 차원의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0년에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그 매입가에 대략 20억원을 언쳐 주셔서, 이곳에 지금의 가락동의 교회당을 마련하여 무사히 안착하게 인도하셨다. 

 

다시 구약의 내용을 보자.  

본문은 형 에서로 인하여 갖게 된 생의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순간에 처했던 야곱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매달리면서, 끝내 하나님의 천국 보화를 받아낸 이야기이다. 

 

그날 밤, 그에게는 지난 20여 년간의 타향살이를 통하여 곁에 둔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명의 아들들과 수많은 종들과 가축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자기의 삶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았다. 다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보호와 방패가 되어주시고, 지켜주실 유일한 분임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그를 찾는 행동으로 나아갔다.  

 

어떤 행동이었나? 야곱에게는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과 계산할 비밀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것은 자기가 20년 전에 형을 피하여 하란으로 도피할 때, 꿈에 친히 찾아오셔서 자기를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언약하셨던 일명 ‘사닥다리 계시’가 가슴에 있었기 때문이다(창28:10-15참조). 본문은 그런 자신이 받았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제 그 약속이 성취(成就)되는 복(福)을 달라고 여호와께 치열하게 기도로 매달린 것이다. 

 

1)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는 대단한 씨름판이 펼쳐졌다. 야곱은 철야(徹夜)하며 기도했다(24절).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목숨을 건 기도를 드렸다. 쉽게 응답하지 아니하려는 하나님의 저항으로 야곱은 허벅지 관절(환도뼈)이 위골되기도 하였으나, 그는 주저앉지 않고 눈물을 쏟으며 부르짖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25-26절, 호21:4참조). 

 

2) 특히 그 때의 씨름판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본문은 이렇게 전한다. 야곱이 씨름하였다는 증언이 두 번 나오는데(24-25절), 그때의 ‘씨름하다’라는 히브리 원어 ‘하밬’은 ‘껴안듯이 꽉 붙들고 늘어지다’는 뜻을 담았고, 또 다른 표현인 ‘네에밬’은 ‘먼지를 일으키며 싸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야곱이 그 밤에 얼마나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몸부림쳤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역습(逆襲)으로, 육체의 힘의 근원인 환도뼈가 못쓸 처지였음에도, 야곱은 여전히 여호와께 매달린 손을 풀지 않고, ‘복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3) 야곱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음을 인정한 하나님은 그의 승리를 인정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 단계가 바로, 당신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인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을 물었다. ‘야곱(=속여 빼앗는 자)이다’라는 이름을 들은 그는, 그 씨름의 승자(勝者)에게는 걸맞지 아니한 이름임을 확인하고, 그에게 새 이름을 부여한다. ‘이스라엘(=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누어 이김, 하나님의 방패)이는 새 이름이 부여된 것이다(28-29절). 

 

실로 ‘말도 안 되는’(?) 순간(카이로스)이 임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 자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너에게 졌다’라는 시인을 받아내면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아낸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후계자로서 정식 비준(批准)까지 받아낸 대업을 이룬 것이다-! 

 

4) 깊었던 고독과 두려움의 터널을 쑥 빠져나온 야곱에게는 놀라운 안도감과 평화가 임했다. 새 이름이 부여된 야곱에게 주의 사자는 그의 축복을 건냈다. 어떤 축복인가? 당신이 보유한 ‘신적 능력(能力)’을 건너 준 것이다. 그의 능력이 야곱과 함께 있어, 그를 기리 돕는 복을 건네주었다. 그러니 세상의 누가 그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29절)! 그는 하나님을 뵙고도 살아남은 그곳을 잊을 수 없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해는 돋았고 자기 다리는 절었다!  

 

생각해보라! 인간이 하나님을 겨누어 이겼다는 논리(論理)가 과연 가능한가? ‘이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할까? 그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사랑과 인격을 바탕으로 얽혔다는 점에서, 이렇게 해명하려고 한다. 바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저 주신 것’이다! 우리 통설에도 부모자식 관계에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설(說)이 있다. 그렇다. 그래도 자식 농사가 되는 집은, 부모가 자식위에 군림하는 집이 아니라, 자식에게 저 주는 집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저 주시는 확실한 때가 있다.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시인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저 주신다. 그리고 야곱처럼, 인간이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것을 붙들고 응답해달라고 매달릴 때는, 저 주신다. 그렇다. 우리는 무자비한 하나님 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 밑에서 살고 있다! 

 

☞ 야곱의 이 ‘말도 안 되는 씨름’의 경우를 보면, 우리들도 그때의 경험이 생각난다. 그 때, 우리는 주인에게 5천만원을 깎아서, 9억원에 빌딩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가진 돈도 1억원도 없으면서 그렇게 요구했다. 주인은 거절했다. 거절도 진정 은혜였다! 그 기간이 2년간이었다. 그 때 우리에게는 돈은 쌓아두지 못했으나, 기도가 쌓여지는 기간이었다. 그 때, 우리들은 하나님을 누구라 부르며 기도했나?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마시게 하시는 하나님’(사43장)을 그 매입할 때까지 계속 찾으며, 매달렸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큰 씨름이었다!!

 

☞ 그런데, 놀라운 징조(徵兆)가 보였다. 예상치 못한 헌금이 올라오는 바람에, 목사 부부가 성지(聖地)인 이집트와 요르단과 이스라엘를 찾았다. 거기에서, 2년간 기도로 찾았던 광야가 무엇인지, 그곳에 낸 강물이 얼마나 시원한지를 홍해를 지나면서 먼저 맛보고 체험하게 하셨다. 귀국하자마자, 주인 측에서 연락이 왔다. ‘아직도 교회가 건물을 매입하겠다면, 요구대로 9억 원에 팔 터이니, 매입하시려면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인은 당시 가진 여러 빌딩들에 세금 폭탄을 당하면서, 자기가 교회에 인색한 일을 한 것에 회개하면서 5천만원 삭감을 수용한 것이다. 주님이 하신 일이 분명했다. 

 

우리로서는 비상(非常)이 걸렸다. 무조건 ‘사겠다’고 통보하면서, 가능한 방법을 모으기 시작했다. 매입이 성사되려면, 주인 측의 그런 5천만원 삭감과 함께, 나머지 3개의 과제들이 함께 일시에 해결되어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 4억원을 싼 이자로 허락할 곳을 찾아야만 했고, 또한 그것을 보증해 줄 후견인이 확보되어야 했으며, 내가 살던 분당아파트의 매매가 되어야만 자금을 보탤 수 있었다. 우리는 더욱 매달렸다. 그 결과는 그 모든 숙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면서, 우리는 역사적인 96평 대지에 연건평 1천 평이 넘는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산 브니엘의 아침의 맛을 그 때 본 것이다! 

 

☞ 그 산을 넘어서자, 우리는 그 다음 해인 1997년의 아이엠에프라는 더 큰 산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훌쩍 큰 우리에게는 야곱 앞에 선 에서와 같았을 뿐이다. 그 위기에도 더욱 의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 우리는 양무리교회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여 들어왔다. 

 

☞ 새로운 시대의 새 경험은 무엇이었나? 가락동 교회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담임목사를 통한 총회 목회에도 참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교회력에 따른 세 본문 설교를 강단에 정착시키면서, 한국교회를 깨우며, 그리스도가 교회와 세계에 진정한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전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온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뜻을 공유할 귀한 젊은 동역자가 후임으로 부임하여 온 교우들과 하나 되어, 새로운 교회 발전의 행보를 시작한 일들이다. 참 기대된다. 

 

이제 서신서인 에베소서를 보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인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을 통하여 천국의 보화를 이미 소유한 이들이다.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기에 그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이미 보유한 보화가 완전하게 정착되고, 더욱 성숙히 발전되기를 바라는 기도의 편지로 보냈다. 그는 하늘 아버지가 하늘과 땅의 각 인간 족속과 모든 종류의 생명체들에게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신 분이심을 밝혔다(14-15절).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곧 사명(使命=mission)과 역할을 부여하셨음을 뜻한다. 

 

우리는 어떤 이름들을 부여 받았는가? 자기 이름에 부여된 사명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한다. 부디 이름값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면서, 사도가 전한 말씀에 따라, 나도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받은 하늘의 보화를 공고히 지켜낼 과제들을 고하려고 한다. 

 

1) 우리들 속사람이 야곱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도록 기도하자(16절). 그러면 성령은 왜 겉 사람이 아닌, 우리 속사람을 겨냥하시는가? 각자에게 속사람은 그의 마음, 정성, 뜻, 감정, 인격을 결정하며 성령의 내주(內住)할 현장인 까닭이다(롬7:12참조). 인간의 주인 교체(交替) 문제도 속사람의 판도로 결정되기에 그렇다! 우리는 내 속사람을 늘 강건하게 해야만 한다.  

 

2) 견고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정착해 계시게 해야만 한다. 주님이 나그네처럼 내 안에 들락날락하시게 하면 절대 안 된다. 삭게오처럼, 내의 참 주인이 되셔야만 한다. 그렇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그리고 꾸준히 감당해 내야할 일이 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제대로 알아서, 서로 사랑함으로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 사랑은 교회와 성도의 생명과 건강을 지속가능(持續可能)하게 해 줄 유일한 영적 자산이다(17-19절). 주님의 주인 되심과 서로 사랑은 우리의 교회를 견고한 나무와 건물처럼 기리 존재하게 한다. 

 

결론이다

우리는 예전으로 뒤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얻어낸 그 소중한 이름이며, 하늘 백성이며, 이스라엘인가! 이제는 새 주인을 모신 몸들이다. 보전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 위한 거룩한 씨름을 전개해야 한다. 이름값을 하지 못하거나, 나태하면 다 빼앗길 수 있다. 그 분 오실 때까지 그 역할을 잘 감당하자. 부족하기에 더욱 서로 어깨동무하며, 마귀를 부끄럽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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