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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9-05-16 (목) 17:14 4년전 1108  

본문) 요10:22-29, 겔34:25-31, 행20:28-35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이다. 일기도 어느 덧 초여름에 들어섰다. 한낮의 햇빛이 더위를 느끼게 하면서, 왠지 거리를 산책하는 자에게 주변의 가로수들의 그늘이 반갑다. 아직 무성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기댈 곳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왠지 새로운 평화 관계가 들어선 듯해도, 아직은 제대로 된 평화의 그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만큼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山積)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찾아 들어가 세워야 할 곳은, 평화와 화해로 하나 된 우리 조국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어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 제39주년이었는데, 아직도 그 사태의 발포 책임자 하나 제대로 찾아서 법정에 세우지 못한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4.16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304명의 꽃다운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는 참사를 겪은 지 벌써 5년이 지났으나, 우리는 그 책임을 물어야할 인물들을 제대로 심판의 법정에 세우지 못하고 산다. 오히려 뭔가, 거기에 이해관계가 얽힌 자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흐름위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산다. 

 

방향은 잡혀 있는데, 그래서 그물을 열심히 던지고는 있는데, 잡아 올리는 것은 너무 빈곤하다. 그리움은 깊은 데,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하여 갈증만 깊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와 백성들의 실존이다. 참 평화와 안전이 온 누리에 정착되는 그 때가 그립다. 정의가 온전히 실현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 심판이 공의롭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생명들이 부활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때를 누리고 싶다. 

 

이렇듯 여전히 미완(未完)이어서 불안이 가득하고 갈등이 깊은 사회, 하지만 이 모든 현실에 구경만 할 수 없어서 해결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다시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씀 속에서 오직 그 분만이 주시는 지혜와 은혜를 구하려한다. 마침 오늘 말씀들은 그 분이 당신의 택(擇)한 자녀들과 백성들을 지키시고 돌보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를 자세히 전해 주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지킴과 돌봄으로 당신의 부활의 역사가 이어짐을 보여 주시고 있다. 

 

최근에 강원지역에서 있었던 대형 산불 화재사건으로 얽힌 이야기들이 많은데, 매우 놀라운 기쁨의 한 소식이 있어서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동물들을 동원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이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여 강풍을 타고 그 작은 마을까지 덮쳐오고 있을 때, 목사님은 교인들 10여명과 교회당에 모여 집회하고 있었다. 불이 마을을 거쳐 교회 입구까지 덮쳐오고 있었지만, 그 교회의 집회 현장은 전혀 그 사태를 모르고 있었다. 엄청난 위기였다. 화재가 입구를 덮친다면, 그 안의 교인들은 빠져나갈 틈새가 없어서, 대형 인명참사가 예견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목사님의 귀에는 집안의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누가 사택(?)이나 교회 마당에 와서 그러나 보다’라고 그 짖음을 외면하고 집회를 인도(引導)하였다. 그런데도 갈수록 개의 짖는 소리가 격렬해졌고 마치 미친 듯 짖어댔다. 마치 ‘주인이 들으라’고 하듯 짖어댔다. 그것도 바로 입구에서 그랬다. 순간 목사님은 평소 개가 순하여, 짖어도 저 정도가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나 보다’라고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집회를 중단하고 예배당 문을 열어보니-, 아, 바로 입구까지 뜨거운 불길이 와 있었다. 그것을 알리려고 그 뜨거운 불길에도 개들이 도피하지 않고, 주인이 있는 예배당을 향하여 그토록 몸부림하면서 짖어 댄 것이다! 그 바람에 급히 예배드리던 신도들 전원이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그러자마자 그 화마(火魔)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배당을 덮쳤다. 나중에 그 황량히 불탄 예배당 내부를 화면에서 보니, 그 흔적은 정말 처참하였다-! 

 

그 때 살아나온 목사님과 교우들 10여명은 지금 임시 수용소에 있으나, 개들은 수용소에서 함께 있을 수 없어서, 타버린 황망한 집을 지금도 지키고 있었다. 집을 찾은 주인 목사님에게 반갑게 뛰어와 환영하는 개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이제 생명을 나눈 관계가 되었으니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목사님은 그 개들을 끌어안고, ‘얘들이 우리를 살렸습니다’라고 뜨겁게 고마워하였다. 그 개들은 실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天使)들이 분명했다!

 

그 장면을 시청(視聽)하던 나는 그 개들에게도 감동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만일 개들의 도움도 받지 못한 체, ‘예배하다 화재로 참사를 모두 당했다면 어찌 되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감사했다. 죽어도 그렇게 죽으면 하나님께 전혀 영광도 되지 못할뿐더러, 교회의 선교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개들의 역할이 더욱 돋보였다. 실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화마(火魔)로부터 건져내시려고, 개들의 입을 벌려 사지(死地)에서 구원해내신 ‘현대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과 함께 오늘 세 본문 말씀들을 묵상해보니, 찬송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가 떠오른다. 함께 뜻을 깊이 음미하면서 불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 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3.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복음서를 다시 보자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매우 거친 공격을 받으시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메시아적인 능력과 사역을 펼치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구원자로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계셨으나, 정작 당신 자신은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직접 밝히시지 않고, 다만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보고 믿으라’고 요구만 하시는 입장을 취하셨다(25절 참조). 알고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아는 방법을 취하신 것이다. 그 바람에 주님은, 믿는 자의 ‘그리스도’가 되셨으나, 반대자들에게는 ‘거치는 자’요 ‘심판자’가 되심을 전하는 분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그런 입장은 보다 확실한 당사자의 문제적인 증언(곧, 내가 그리스도이다)을 채증(採證)해 놓으려는 적대자들에게는, 혼란과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예수께 다그쳐 물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면 (그리스도라고) 밝히 말씀하소서’(24절). 그들의 이 질문은, 알고 나면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고난 후에는 문제 삼아서 예수를 제거(除去)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대응은 맞대응이 아니라, 당신의 중요 관심사를 보다 분명히 밝히시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당신이 무어라 하시든, 계속 시비하고 트집하며 당신의 사역을 훼방하려들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5-26절). 그들은 이미 예수의 등장을 자신의 영역을 훼손하는 심각한 방해자요 위협자로 간주하고 있으면서, 시기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있던 존재들임을 아신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당신의 행위와 말씀을 지켜보면서, 당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당신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시면서, 그들을 어떻게 하든 세상과 적대자들의 거친 공세로부터 온전히 지켜내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셨다(27-29절 참조). 그러면 누가 그의 양과 백성이며,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를 밝히신 내용들을 들여다보자. 

 

1) 때는 겨울에 맞이하는 유대 절기인 수전절(修殿節)이었다(22절). 이것은 B.C165년에 유다 마키베오가 희랍 세력과의 승전 후, 성전을 다시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여 해마다 8일간씩 지켜오던 절기였다. 겨울이란 표현은 예수와 유대인 사이의 냉랭한 관계를 엿보게 해 준다. 

 

2) 장소는 솔로몬 행각이었다. 헤롯이 새로 지은 성전의 바깥 뜰 동쪽의 기둥과 지붕만으로 된 방으로서, 이방인까지도 출입이 가능한 곳에서 였다(23절, 행30:11, 5:12참조). 

 

3) 그곳에서 주님은 당신의 양들(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이렇게 드러내셨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     히 멸망치 아니할 영생(永生)을 준다.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 없다’(27-28절 참조)

☞ 당신의 손만이 아니다. 그들을 당신에게 주신 만물(만유=ALL)보다 크신 아버지가 그들을      지키시기에, 그 누구도 그들(양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29절). 

 

즉, 예수 앞에 믿음으로 나온 이들은 아들이 준 영생을 받은 존재들이고(요5:24참조), 또 아버지와 아들의 강한 손 안에 보호받아 있기에, 그 안전함을 선포하셨다. 영생을 얻은 그들의 삶의 모습도 분명하다. ☞주의 음성을 듣고, 주 예수를 알며, 그를 따른다! 자체 점검 기준이다!

 

예언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당신의 양무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요19:28)라는 선언의 말씀이 그의 아버지인 여호와에게서 어떻게 구체화 되었었는지를 그 사례로서 보여준 곳이다. 여기에는 범죄로 인한 복역(服役)의 형기를 마치고, 바벨론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본국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다시 평화의 계약(covenant of peace)을 체결하신 것을 이유로(27절 참조), 앞으로 그의 양떼를 어떻게 지키시고 돌보셔서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실 것인지를, 예언자 에스겔의 입을 빌어서 구체적으로 밝히셨다(25(2회),27,28절 참조). 

 

이때의 하나님의 평화 계약체결의 특징은 당신의 백성들만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자연(自然)과 그 생태계(生態界), 그리고 제국을 비롯한 이방 세력과도 연결되었다는 점에 있다(25절). 그들의 협력과 도움이 없이는, 그들이 참 평화와 구원의 기쁨을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평화 계약으로 인한 구원의 모습이다 : 

 

1) 먼저 내부(內部)의 적들과 외부(外部)의 원수들의 공격을 잠잠하게 하여 평안케 하신다(25). 

악한 짐승(제국/강대국)의 공격이 그치고, 당신의 양들이 자연에서 평화로이 살게 하신다. 

산 사방에, 때를 따라 복된 소낙비를 내리셔서, 밭작물과 그 소산을 풍작케 하신다(26-27절). 

이방의 노략거리로 수치(羞恥)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농작물을 해치는 짐승도 막아주시며, 옥토(沃土)도 이루어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서, 옹색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28-29절). 

2) 그 결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 관계(구원/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너희 하나님이요, 너희는 내 양(羊)과 백성(百姓)임을 시인하게 하리라 하셨다(30-31절).

 

서신서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본문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양들과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돌보시는 지를 생생히 소개하는 곳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당신의 핏 값으로 교회(敎會)를 세우시고, 그 양들을 보살필 일꾼들을 세우셔서, 당신의 양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모습들이다. 

 

이런 지침이 전해진 곳은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앞두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직전에 에베소교회의 장로(감독자=위에서 지켜 봄)들을 밀레도로 불러서, 마지막 눈물의 회동(會同)을 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바울은 감독자들에게 당신의 에베소교회 개척목회 3년을 경험 삼아서, 그들이 감당해 내야할 목양사역(牧羊使役)을 위한 세심한 지침(指針)을 제시 한다:

 

1) 감독자(목회자) 자신을 위한 지침이다(28절)-자신이나 양들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살지 말라. 그것은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자로 삼았고, 하나님께서 아들의 핏 값으로 교회를 세워서 그에게 당신의 양들과 교회를 살피도록 위임(委任)하셨기 때문이다. 얼마나 엄중한 지침인가! 

2) 외부(外部)의 적(敵)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라(29절)-이단과 거짓 사상. 이념들을 막아내라!

3) 내부(內部)의 적들에게서 주의 양들을 지켜내라(30절)-자체 안의 거짓교사들의 파괴적 준동    으로 파벌이 형성되거나, 비(非)복음적인 거짓 주장들을 일으켜 교회를 분란으로 몰고 간다.

 

4) 기본적인 대응책(對應策)들 몇 가지가 더불어 제시되었다(31-35절 참조). 

① 당신이 모범적(模範的)으로 보여 준 두 가지 기억(記憶)할 사항들을 제시하였다.- 힘 있다! 

⒜ 당신의 3년간의 눈물로 쉬지 않고 각 사람을 훈계(訓戒)했던 일(31일). 

⒝ 교회에서 급여를 받지 않고 자비량(自備糧)선교를 통하여(33-34절), 약한 사람을 돕는 일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의 말씀(35절,눅6:38,12:34-34 참조). 

② 절대 명심할 것 - ‘예수와 그의 말씀’이 사역자와 교회를 든든히 세우신다는 점(32절). 

 

결론은 이렇다

나를 이 험한 유혹의 시대에 믿음을 주시고 지키도록 은혜를 주신 부활의 주님께 감사드리자. 

주님과 그 말씀을 신실히 믿는 신앙인에게는 심판 없는 영생을 가졌고, 부활의 영과 동행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의 말씀을 듣는 일, 배우는 일, 그 삶을 따르는 일, 그리고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며 사는 일에 꾸준히 정진하자! 그러면 만유의 주님과 평화의 그늘에 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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