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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1-18 (목) 16:12 6년전 1207  

본문) 2:1-11, 왕하4:1-7, 요일5:1-12

 

오늘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위기의 험한 세상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 점은 특히 사도 요한의 신학의 최대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16:33참조), 바로 오늘의 말씀들은 그 문제와 함께 해답들도 집중해서 제시하고 있다(요일5:4-5참조).

 

인간이 세상을 이긴다는 일은 절대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인간은 원()역사 부터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 무참하게 패배를 당하고 살아온 치명적인 전력을 지닌 존재였기 때문이다(창세기 기록참조). 그러기에 그런 패배의 불행한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도리어 그 세상에 대한 승리의 기쁨을 견인해낼 새 터닝 포인트가(Turnning Point)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주현절 첫 주일에 제시된 마4장의 예수의 마귀의 시험에 대한 극복사(克服史)는 인간이 세상을 이겨낼 승리의 결정적인 전거(典據)를 안겨 준 일이었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기 위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예수를 찾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일차적인 사랑의 대상이 된 곳이지만(3:16참조), 그러나 현실은 유혹자 사탄의 장악아래 놓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사탄의 지배 아래 사는 인간들의 실존(實存)은 항상 빼앗긴 낙원의 회복을 그리워하며, 왜곡된 현실로 인한 고통과 불안과 탄식이 계속되는 현장이다.

 

오늘의 세 본문 중, 특히 복음서와 구약의 이야기는 그 세상의 비정한 상황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세상의 위협을 극복한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승리를 취하게 되었는 지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요한서신은 그 승리의 주역인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한다.

 

마침 오늘은 총회의 여신도회 주일인데-, 이 세상 승리의 문을 연 주역들이 여성들이요 그것도 어머니들의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이 말씀에서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o 복음서를 어떻게 보아야하나

 

본문은 예수로 인하여 가나 혼인 잔치에서 발생한 물이 포도주로 변한 표적(標的) 사건이다. 요한은 이 표적 사건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 중에 최초(最初)의 일로 기사화했다. 그는 이 표적 기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그 의도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세상 삶의 비정함과 잇달아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증언을 담고자 했다(3).

물론 혼인 잔치에서의 포도주 고갈(枯渴) 사태는 그 원인이 예상치 못한 축하객들의 증가로 인한 것이든, 주인 측에서의 부실한 대책에 의한 것이든, 이런 식의 예기치 못한 문제 발생은 앞으로 이어질 혼인잔치를 위해서는 아주 악재(惡材)였음이 분명하다. 그들 잔치는 평균 한 주간 이어지는 판이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상사에 어찌 이런 일만 일이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포도주 고갈 사건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그와 같은 류()의 예기치 않는 삶의 어려움들이 인간의 세상사에서 고비고비 나타남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이 관심하는 바는 그런 류()의 다양한 문제들이 왜 일어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숱한 문제들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고 또 극복할 능력이 과연 있느냐를 물으려고 한다. 숱하게 밀려오는 세상의 위기들을 기회로 뒤바꿀 능력과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둘째는 그곳에 바로 예수라는 문제 해결자가 계셨다는 점이고, 그 점을 적극 활용할 믿음의 인물들이 그곳에 있어서, 그 곤고한 현장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 되게 하였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두 인물이 그곳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었음을 보여줬다.

 

1) 그곳에는 어머니 마리아의 예수에 대한 정확한 시각과 놀라운 믿음이 있었다(3, 5).

그녀는 그곳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곧장 아들 예수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기도).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3).

-예수의 첫 반응은 예상 밖에 매우 차가웠다(4). 그럼에도 마리아는 문제의 해답은 역시 예수에게 있음을 믿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아는 예수의 그 거부의 의도를 파악하고 거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래서 그곳의 하인들에게 이런 특별한 당부를 했다.

-‘너희에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

 

-그녀의 믿음의 당부는 그곳 하인들의 전적인 순종(順從)을 견인하였고(7-8절 참조), 그곳에서 발생한 놀라운 표적을 직접 체험하는 현장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9).

 

2) 처음에 당신의 때가 아니다’(4)는 이유로 냉냉한 반응을 보였던 예수께서, 마리아의 그러한 당부 이후에 곧장 문제 해결에 직접 앞장서신 일도, 결국 마리아의 선제적인 믿음 요구와 그로 인한 하인들의 순종할 마음 준비와 결코 무관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 준다(7-8).

 

-이것은 예수로 인한 문제 해결의 최대의 전제 조건은 그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순종에 있음을 확인해 준 실례(實例)이다. 예수로 인해 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에 따른 놀랍고 기이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맛들은 모두 예수를 향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결정됨을 선언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한 경험 유무가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 체험자들이 그 때부터 삶이 새로워진다는 데에 있다. 마치 물과 같은 존재에서 포도주 같은 존재처럼 말이다. 존재의 맛에 있어서나, 모양 세에서나, 가치와 무게에 있어서 물과 포도주가 비교불가 하듯 달라짐에 있다!

 

o 열왕기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여기에서도 우리는 세상의 비정(非情)함에 몸부림하는 한 가족의 비참(悲慘)함을 만나게 된다.

엘리사의 신실한 신학생으로 보이는 남편이 죽자, 두 어린 아들과 함께 홀로 살게 된 외롭고 가난한 과부된 여인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빚더미에 앉아 채권자에게 독촉을 받아도 해결할 길이 없는 이 여인에게 떨어진 결과는, 두 어린 아들들을 채권자의 종으로 내어 줄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출21:2에 의해서 6년간 종살이가 가능했기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그 극한 상황에 무릎 꿇을 수 없었다. 이제는 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취한 행동이 바로 복음서의 마리아의 것과 그 맥이 같았고 그 결과도 같았다.

 

1)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하나님의 종이자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에게 고했다(1).

2) 엘리사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나,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매우 이채로운 것이었다(2-4).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 지 내게 말하라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 라

3) 그 여인과 자식들은 선지자의 그 요구에 완벽히 순종하며 실천했다(5).

 

그 후의 결과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아니 예수만이 해내실 수 있는 물로 포도주로 만들어내시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응답(應答)이 주어졌다! 차고 넘치는 기름을 받아내면서 그 무거운 빚을 갚고, 이산가족의 위기도 극복하며, 오히려 온 가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6-7). 세상에 완벽한 승리를 짜릿하게 맛보았다-!

 

o 서신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초대교회는 이단인 영지주의와의 싸움이 치열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예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십자가 희생과 대속 논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갖기에 무겁고 부담되는 짐을 안긴다는 명분 때문인 듯하다(3절 참조). 그래서 그들은 헬라적 영육 분리의 이원론을 적극 활용하며 기독교의 진리를 파괴했다.

 

천상적 그리스도와 지상적 예수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세례 때 영적 존재로 내려 온 그리스도는 십자가 고난 앞서서는 다시 예수를 떠났기에, 하나님의 아들은 고난을 아예 당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며 고난과 대속의 주를 외면하게 유도했다. 그 바람에 그 영향을 받은 자들은 세상과 형제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게 되었고, 형제 사랑도 외면하게 되면서 이기적 독선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육체적 괘락주의에 빠지면서 세상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재촉하는 반()신앙적인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기에 요한은 계명 실천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3./마리아와 과부의 모습에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로 세상을 이겨낼 분명한 요건들 두 가지를 강조했다.

1) (세례)과 피(십자가)와 성령(진리)이 증언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4-12절 참조)

2)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형제 사랑으로 입증(立證)되어야만 한다(1-3).

 

o 메시지는 분명하다

 

올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분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도전해 오리라.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말자. 바로 마리아와 저 과부의 경우처럼, 우리에게는 마귀와 어둠의 권세를 이겨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기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비록 원수 같은 이들에게도, 우리의 이웃을 향한 행동지침은 사랑의 대응이어야 한다. 진정한 승리의 힘과 지혜는 역시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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