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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1-12 (금) 15:02 6년전 1304  

본문) 12:22-32, 37:15-23, 2:11-22

 

지침(指針) :

오늘 세 본문의 핵심 주제는 하나 됨이 분명하다.

그것도 하나 되게 하시는 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 됨이다.

 

때마침, 지금 우리나라와 온 세계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모처럼 남북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이 땅에 하나 됨과 평화의 문이 과연 열릴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민족이나 가정이나 하나 됨의 축복과 힘은 상상을 넘어선다. 하지만 대결과 분열의 비극의 후유증 역시 상상을 넘어선다.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누가 우리를 진정 하나 되게 해줄까? 지금 우리 민족과 교회는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 말씀에 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에스겔서의 전반부의 내용(15-19)은 오늘 말씀을 풀어가는 데 큰 지침이 된다.

선지자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이후(以後)의 이스라엘은 장차 하나로 통일된 이스라엘이 될 것임을 예언한다. 포로 이전(以前)의 이스라엘은 매우 오랫동안 남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힘이 분산되고 정체성도 상실되면서 두 왕국이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 망하게 되는 비운을 경험하였는데-, 이제 곧 펼쳐질 포로 이후의 이스라엘은 서로 하나 된 나라가 되리라는 선포한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놀라운 것은 하나 되게 하고 온전하게 되는 해방 방법이 두 트렉(Track)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소명(召命) 받은 선지자의 사역을 통해서다(16)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또 하나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이다(19)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그런 점에서, 나머지 본문들은 내용 설명의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전자(前者)의 사례는 서신서인 에베소서가 맡고 있고, 후자(後者)의 경우는 복음서가 맡고 있다고 보인다. 어떤 점에서 그런 지, 살펴보자. 그 근원인 복음서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o 복음서의 내용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지난 첫째 주일에 우리는 예수께서 세상 권세를 쥔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통과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 받은 일에 대하여 확인한 바 있었다. 오늘 둘째 주일은 그 하나님의 아들이란 자격 행사, 즉 메시아로서의 권한 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예수를 만나게 된다.

 

이 일은 자연히 그 시작부터 세상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열과 파괴의 세력인 귀신의 권세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자(22), 두 가지 아주 대조적인 반응에 즉각적으로 나왔다.

 

1) 귀신들리지 아니한 일반인들로부터는, ‘다윗의 자손(메시아)이 아니냐’(23)

2) 바리새인들(진짜 귀신들린 자들)로부터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그랬다’(24).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응은 후자(後者)에 집중하셨다. 예수의 반박(反駁)의 논지는 이거였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패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 그 점에서는 사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25-26)

 

그러면서 그들이 예수에게서 보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직접 언급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귀신축출의 능력이 모두 하나님의 성령을 힙 입어서 나온 행위라는 것이다(28).

 

이 점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메시아적 사역들(교육,선포,치유)들이 당신의 독자적인 것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성부와 성령과 하나 되어 행하시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즉 성부와 성령이 성자이신 나사렛 예수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를 모아주시면서 나타나는 열매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인간들에게 안겨 주시는 일임을 강하게 증언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모든 세상 권세를 제압할 수 있는 최강(最强)의 능력자가 될 수가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모든 의로운 세력들의 구심점이 되실 수가 있었다(29-30). 그런 점을 무시하고, 예수의 메시아 사역을 바알세불의 능력을 빌려서 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하나님과 성령에 대한 모독이 분명해서 용서받지 못한 범죄가 아닐 수 없었다(31-32). 결국, 그 비난자들은 자신이 바로 마귀의 하수인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복음서의 초점은 진정한 메시아적 구원과 해방의 힘은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일치와 연합에서 나온 것임을 전하는 데에 있다. 그것도 예수와 함께 할 때 나오는 것임을 밝히려는 데 있다(30). 그렇다. 예수는 우리를 결속하게 하고 하나 되게 하는 결정적인 분이다!

 

o 에스겔서의 후반내용(22-23)은 그 예수를 이미 예고한 곳이다.

 

그들 두 민족, 두 나라를 하나의 것으로 묶어낼 한 임금이 예고되었는데, 그가 누구인가? 특히 그 임금은 그 백성들이 모든 죄악으로 다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여 구원해 줄 분으로서, 그들의 목자가 되고 하나님이 되실 분이시다(23). 2의 다윗과 같은 임금이 될 분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 임금이 누구며, 이 분열과 대립으로 갈등하며 신음하는 백성을 구원할 목자(牧者)가 누굴까? 특히 그는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세상과 역사까지도 하나 되게 하실 메시아이셔야만 했는데-, 그렇다면 그가 과연 누구이겠는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이시다!

복음서에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치유하신 예수의 모습을 본 무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바로 그 증언(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이 참된 거였다(12:23참조)!

 

예수님이 귀신(鬼神)에게서 무엇을 되찾아 주셨던가? 눈이 있어도 못보고,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인간의 비극을 고쳐 주신 것이었다(12:22). 즉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만들어 주신 일을 하신 것이었다. 볼 것을 보게 하시고, 말할 것을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세워주신 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안겨주시는 일, 바로 이것이 예수 메시아 복음사역의 핵()이다! 그러기에 이 예수를 만나고 그의 영을 받으면, 인간은 참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새 세상의 주역이 되게 된다. 자유와 해방의 영성을 갖고, 온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진정 이런 메시아라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위인일 수 없다. 당연히 같은 차원의 고통을 받고 사는 온 세상 만민들을 위한 메시아도 되셔야 했다. 바로 그런 분이 이 땅에 오셨고 계셨음을 알리고, 또 그가 베푸는 은혜를 모두가 다 받도록 전하고 알려야 하는 일이 바로 복음이었고, 선교(宣敎)였으며, 그가 성령으로 세우신 교회 공동체의 임무였다.

 

o 에베소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예수와 그 복음의 선교자로 소명 받은 바울은 나사렛 예수와 그가 지신 십자가 속에서 비로소 온 세상 만물과 만민이 서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평화하며 서로 하나가 되는 길이 있음을 보았다(14-16).

그는 유대인의 금과옥조인 율법적 세상은 서로를 대립하고 높은 담을 쌓게 하지만, 십자가에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죽임 당하신 예수 안에서는 모든 담을 허물고 서로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평화와 화해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본 것이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본 삶의 모습은 <모퉁이 머릿돌>의 모습이었다(20-22).

그 돌은 서로 다른 양쪽 돌들이 모아지는 정점에 끼어 든 돌로서, 서로를 하나로 잇고 연결하게 하며 소통과 일치로 둘을 하나 되게 하는 돌이다. 그 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하나 되며, 남과 여가 하나 되고, 어른과 아이가 하나 되며, 모든 서로 다른 이질 문화와 세력들이 하나 되는 통합과 화해의 연결고리를 만나게 된다.

 

모든 서로 다른 민족,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인간들을 하나 되게 하는 데에는 이 예수와 십자가 이외에는 달리 방법과 대안이 없음을 바울과 사도들의 견해가 일치한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였기에 그는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통하여, 아니 모퉁이 돌 되신 그의 몸으로 비로소 온 세상을 끌어안으실 수가 있었고, 구세주가 되실 수가 있었다.

 

그 예수가 증거 되었기에, 세상은 그토록 빠르게 그의 복음을 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예수를 자기의 왕과 목자로 영접하며 그의 백성으로 됨을 기뻐할 수 있었다.

 

o 메시지는 분명하다.

 

예수를 인생의 목자로 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하다. 가정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그를 통하여 우리가 볼 것을 보게 되었고 말할 것을 말하게 되는 희년의 은혜를 누리고 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안에서 그 누구와도 하나 되는 일을 기꺼이 할 사람이다.

 

모퉁이 돌 예수의 영성을 보유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더더욱 하나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하나 됨도 견인해야 한다. 평화의 세상이 이 민족과 온 교회 위에 임하도록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먼저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 되는 일에 헌신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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