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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8-03 (금) 15:06 5년전 1166  

본문)  행 3 : 1-10, 겔 47 : 1-12, 막 1 : 29-39 

 

뜨거운 열기가 온 나라를 덮고 있다. 기후의 온난화 현상이 깊어지면서 세상은 예기치 않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의 더위도 능가할 정도의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여름을 길게 맞이하고 있는가 하면, 이웃 나라들은 태풍과 홍수로 인한 극심한 물난리를 겪으며 수많은 생명들이 사망하고 있다. 유럽 대륙도 그 어느 때보다도 비가오지 않는 여름을 맞이하면서, 더위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중에 그리스엔 대형 여름 산불을 맞이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올 여름은 기상문제로 인한, 삶의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뭔가 생태계의 이상(異常)으로 나타난 현상인데도,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지구촌의 농작물들이 위기이다. 가뭄과 더위에 우리의 먹거리들 생산량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물의 위기가 곧 생명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의 징벌로 이스라엘이 3년 6개월 동안을 가뭄과 기근으로 온 땅이 고생한 일들이 예삿일처럼 생각되지 아니한다. 그러면 이런 각박하고 삭막한 계절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마음과 시선을 어디에다 두고 살아야하는지, 그 생명(生命)의 길을 보여준다. 그것은 아무리 가물어도 결코 마르지 아니한 생명의 원천(源泉)이 우리 곁에 있음을 제시하며, 그곳에서 베푸는 신비한 돌봄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며 살도록 우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덥고 목마를수록 물의 원천을 찾는다. 요즈음은 계곡에 인기다. 그곳엔 더위를 식힐뿐더러,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원천수들이 여전히 풍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고통의 시절일수록, 원천수를 찾아야 하고 확보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생은 안전하고 편안해진다. 문제는 그 원천수가 과연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점이다. 원천수라고 해서, 꼭 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은 우리에게 그 은혜로운 원천수인 생명의 세계로 초대한다. 

 

서신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그 복음을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생생히 보여 주신 곳이다. 특히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어떤 선물을 안겨 주시는 지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다. 

 

본문에는 당시의 예루살렘에서 가장 불행했던 인물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이며, 평생을 구걸(求乞)하며 살아 온 사람이다. 그 구걸도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매일 거들어 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와서,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구걸행각을 해왔다(2절). 그러기 얼마나 불행한 인생과 인격이었겠나-!

 

그의 유일한 소망(所望)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자기도 비장애인처럼, 일어나 걷는 것이었을까? 남처럼 결혼도해서 살아보고, 부자로 살아보는 일이었을까? 아니다. 그런 수준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날그날 구걸로라도 일용한 양식을 확보하고 사는 일이 전부였을 것이다. 게다가 전능하신 분이 그런 자신을 통하여 ‘기이(奇異)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행하시려고(시24:19참조) 그런 삶의 질곡(桎梏)을 통과하도록 하셨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한 체,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과 시선은 언제나 사람들의 동정하는 손길이었고, 그들의 손에서 떨어지는 동전이었다. 물질이 자신을 살린다는 믿음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죽은 자를 살리시고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 주의 영이 그를 찾아오셨다. 그것도 그의 영을 받은 사도들인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찾아오셨다. 오후 3시 기도 시간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려는 사도들을 향해 그가 구걸하자, 사도와 함께 하신 주의 성령이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다. 다음과 같은 몇 마디의 짧은 대화를 통해, 세상 변혁의 대역사에 쓰임 받는 놀라운 인물로 세워 주신 것이다. 

 

-‘우리를 보라’(4절) 

-그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네가 구하는) 은과 끔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6절)하고,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   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래서 ‘모두가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는 일’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생하였다(7-10절). 

 

이 사건이 안겨 준 가치(價値)와 의미는 무엇인가? 좁게는 한 인간의 구원 사건이다. 그러나 그 의미와 가치는 글로벌(Global)하고 우주적(Universal)이다. 왜 그런가? 이 사건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본래 ‘돈(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는 새로운 가치를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령은 가장 비천한 자를 들어서 오만했던 낡은 세력들인 전 예루살렘을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면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예수께로 돌아와 온 세계에 교회 시대를 열게 하였고, 예수야말로 전 세계의 살림의 주(主)이심을 죄인들이 믿게 하고 전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성부 하나님이 빼앗긴 땅(이스라엘)과 상심(傷心)한 영혼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생명을 선사할 것인지를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미리 예고하신 말씀이다. 

 

선지자는 환상 속에서 포로 된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운명의 기적적인 회복의 변화가 임할 것임을 본다.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은 성전(聖殿)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샘물과의 놀라운 접촉으로 인한 것이었다(1절).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어서, 모든 생명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회생(回生)시키는 은혜의 샘물이 솟아나온 것을 미리 본 것이다. 그 환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만물을 회복시키고 풍요롭게 했다. 

 

1) 문지방을 넘어 흘러나온 성전의 물은 4단계로 그 수심(水心)의 깊이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접속한 모든 생명의 회복의 대상을 온 지구촌 에까지로 하였다(1-5절참조). 

이는 행1:8의 말씀을 예고한 내용으로 보인다. 주의 성령이 이 메마른 땅에 임하실 때, 그 구원의 물길이 예루살렘(1단계)에서 유대(2단계)로, 사마리아(3단계)와, 온 세상 땅 끝(4단계)에까지로 깊어지고 확대되리라는 점을 예고하신 것으로 보인다. 

 

2) 그 강물은 세 가지 특성(特性)들을 갖고 있다. 낮은 곳을 향(向)함과 치유(治癒)와 번성(繁盛)케 함이다. 그래서 온 세상의 상황과 질을 변화시킨다. 그 물이 찾는 곳은 나무 한 구루 없는 척박한 사막지대와 같은 땅인 실낙원(失樂園)이다(8절). 저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처럼, 버려진 곳, 채워야만 살 곳, 도와주지 않으면 못살 곳들을 향한다. 그러나 일단 그 생명수가 유입(流入)되게 되면, 그곳은 그때부터 복낙원(復樂園)을 이룬다(9-12절). 수치의 시대를 끝내고, 영광의 주역으로 사는 시대를 맛보게 된다. 다시 확인하자. 그리고 우리는 이미 ‘저 거지의 변화’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3) 그렇다면, 그렇게 만물을 회복시키고 살리시는 주체는 진정 누구일까? 사도들이 외쳤고 본인도 스스로를 선포하셨던(행3:6), 나사렛 예수이시다! 그는 친히 이렇게 외친 바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령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生水)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참조). 

 

복음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그 구원자요 회복시키는 능력자가 왜 예수이신지를 친히 보여주신 장면을 전한 곳이다. 열병(熱病)으로 죽어가는 시몬의 장모의 처지는 당시에도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이었다. 노인이자 여자이자 나쁜 질병까지 얻어 모두에게도 부담되는 인물의 표상(表象)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곳에 예수가 방문하셨고, 그 여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30-31절). 

그러자 그 여자에게 저 앉은뱅이에게 임하였던 그 역사가 발생하였다. 일어나 예수님 일행을 섬기는 그 일을 수행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수종들다’는 말은 섬김이요 따름을 말한다(15:41참조). 그녀의 일생이 예수의 사역을 돕고 협력하는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변화되었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은 시몬의 장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를 찾아 온 각종 낮은 자들과 고통하는 자들을 모두 온전하게 하셨다. 예수를 만난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복낙원 인생을 향유하게 되었음을 말한다(32-34절 참조). 참 놀라운 복음이다!

 

주님은 사실 움직이는 성전(聖殿)이셨다. 주님의 이런 사역은 그의 끊임없는 기도(祈禱)와 함께, 찾아가는 전도(傳道) 사역을 통하여 쉼 없이 펼쳐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하늘나라가 이 땅, 모두에게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결론은 이렇다

 

이런 풍요롭고 놀라운 주님을 만난 우리의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실낙원 인생인가, 이미 복낙원 인생인가? 실낙원 인생이라면 이제 내가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복낙원 인생이 되었다면 이제 나는 어떤 삶으로 나아가야 마땅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안이하게 살면 다 잃게 된다. 우리는 소명을 좇아 사는 인생이다. 생명의 젖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사는 인생들이다. 만일 우리가 아직 받고만 지내는 인생이라면, 저 에스겔의 증언에서 유달리 부정적으로 돋보였던 모습인,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되었던 그 진뻘과 개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겔47:11 참조). 

 

예수의 이름은 이미 나를 살릴 뿐 아니라, 저주 받은 모든 영역과 생명들도 살린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원천을 마시고 산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에게 와 있는 성령과 예수의 이름의 생수를 저 목마른 인생들에게 흘러가도록 전하고 맛보게 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목마른 자가 아니라, 원천수를 공급하는 자로 풍요로운 자로 살아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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