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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0)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7-27 (금) 08:41 5년전 1261  

본문)  행 8: 4-13, 사 29: 13-24, 막 1: 21-28 

 

지난 주간(23일), 한 별이 떨어졌다. 아니, 한 별이 떴다. 진보 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자신이 범한 과오에 대한 책임으로 그의 생명을 스스로 단절(斷切)시킨 일로 인하여 우리 곁을 떠났는데-, 알고 보니 그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음을 본 것이다. 

 

그가 선택한 죽음의 방법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서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피할 수 없었다. 왠지 그의 죽음은 살아남아 있는 자들의 삶의 가치(價値)와 책임(責任)을 동시에 묻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네가 계속 살아 있는 이유에 대한 답을 달라’는 것이다. 매우 긴장된다. 

 

그는 자신이 평생 추구해 온 정의(正義)란 가치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범했던 행위를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는 이번 자기의 불법 문제가 드러나게 될 것이 예상되자, 그 일로 인하여 파생될 모든 일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동시에 안고, 남은 자들을 보호하고자 하여, 그런 극단적인 방안을 선택하였다고 보인다. 

 

한편 그를 보내는 국민들이 이토록 그런 그를 애도(哀悼)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생 보여 준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하여 투쟁하면서, 힘 있는 자들의 불의(不義)에는 무섭게 질타해 온 그의 메시아적 행보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 그는 우리 정치사에 큰 별이었고 빛이었다. 

 

그 바람에, 우리 양식 있는 국민들은 다 공감했을 것이다. ‘정작 죽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죽었다’ ‘가짜들은 남고 진짜가 사라졌다’. 그렇다-! 그런 판단도 맞다. 

 

하지만, 이 진짜의 가치 있는 죽음 때문에, 살아남은 가짜들의 회개와 변화가 또한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아닌가! 의로운 진짜 인간 예수가 죽어, 가짜 인생인 우리가 뒤늦게 정신 들어 살아났기 때문이다. 참,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방법은 어찌 그리 기묘(奇妙)한가!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위협하는 세력을 보는 눈이 바꾸어져야 한다. 육신의 질병들만 내 삶을 황패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삶을 타락시키고 황패(荒敗)하게 하는 거짓 세력들이 더 무서운 공적(公敵)임을 보아야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믿음, 거짓 정보, 가짜 뉴스 등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의 삶과 가정과 모든 관계들이 파괴당하면서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몸의 질병들도 대부분 거기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그런 잘못된 것에 우리가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 살게 되면, 우리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장애(障碍) 인생으로 살다 비참하게 가게 된다. 얼마나 억울한가―! 

 

여러분은 <가짜 뉴스>란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가짜 뉴스 신자들이 생각밖에 많다. 그것도 (큰)교회 신자들에게 더욱 많다. 그것은 ‘극 보수 마귀의 영’을 받은 그 교회 목회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일명, <태극기 부대>가 되어 모든 정규 뉴스와는 반대되는 주장만 하고 산다. 그들 대부분은 노년층인데, 이들은 그들 만에게 공급되는 <유튜브>상의 가짜와 편향된 영상 뉴스만을 듣고 확신을 가지고, 현 정부와 정책에 사사건건 대결구도를 이루고 적개심을 품어내며 살고 있다. 

 

그 바람에, 그들 가정생활이 문제다. 젊은 자식들과도 이견(異見)차이가 커서, 서로 불화하며 고립되어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가짜 뉴스에 중독(中毒)되어 빠져 나오지 못한 체 산다. 병 치고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영향력(影響力) 차원에서 구분해 볼 수 있어야 하겠다. 그 영향력이 그 개인과 가족 차원에 국한되는 경우와, 사회와 이웃들 모두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구별해야 한다. 그 중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몫을 맡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마6:33), 집단적(集團的)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들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지도자들이 잘못에 빠져 든 경우이다. 잘못된 철학, 그릇된 편견, 오해로 인한 왜곡, 어긋한 환상, 잘못된 배경 등에 빠져 살아온 사람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가 되면,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는 정말 무섭다. 수많은 독재자나 정치인들이 그런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는 우리 교단의 100회 총회장으로서 그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깊이 참여하여, 불량한 대통령 한 사람이 어디까지 그 영향력을 못되게 행사할 수 있는 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만일 백성들의 촛불 혁명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깨우지 아니하셨다면, 지금의 우리나라와 백성들의 상황은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하면, 정말 가슴 쓸어내리게 된다. 너무도 끔찍했을 것이니까!

 

그런데 오늘 정작 말하려는 지도자는 꼭 세상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만은 아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의 각 분야에서나 소속원들에게나 주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들이다.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을 보면, 이런 부정적 영향력들이 처처(處處)에 만연해 있으면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심대한 피해들을 입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 가해(加害)의 주체는 집권 고위층이기도 하고(이사야), 그 지역 사회 공동체의 여론주도 층(層)이기도 하며(서신서), 심지어는 예배 공동체인 회당의 고참(古參) 멤버도 포함되었음을 보여 준다(복음서). 그래서 그들은 그곳 공동체의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자기들이 마치 진짜 주인인양, 그릇된 철학과 거짓된 환상과 실패를 불러오는 주장(主張) 따위로 주변 사람들을 농락(籠絡)하다가 나중에는 그들 모두를 지옥(地獄)가게 만든다. 그런 곳에는 지혜자의 지혜나, 명철자의 총명도 전혀 힘을 내지 못하고 만다(사29:14.b).

 

그렇다면 이런 모순된 인간사를 극복(克服)할 길은 무엇일까? 누가 가짜 세력을 물리치고 진짜들이 주도하는 참된 세상을 열어줄 수 있을까? 그 점에서 성경은 우리 인간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答)을 준다. 답은 이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아무리 특출한 존재라도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인간은 스스로의 죄성(罪性)과 역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충만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 얽힘을 풀어주신다! 그 방법은 당신의 영을 받아, 당신의 마음과 말씀에 붙들려 있는 자들을 앞세워 그 일을 해 내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사29:14.a)

 

서신서(사도행전)의 상황을 보자

 

예수님의 예고대로(행1:8참조), 저주의 땅인 사마리아 성에도 복음이 들어갔다. 주의 성령이 집사 빌립을 앞세웠다(5절). 그의 복음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였고, 인간의 이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전했다(12절). 그러자 그 땅 사마리아는 변화의 큰 물결에 빠져 든다.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고, 많은 중풍병자가 낫고, 못 걷던 이들이 일어나는 등의 잇단 하나님 나라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그들은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눈이 뜨기 시작했다. 정말 ‘큰 기쁨’이 성에 가득했다(6-8절). 

 

그로 인하여 그 성이 받은 가장 큰 성령의 선물은, 그곳에서 지배 세력의 교체(交替)가 이루어진 일이다. 오랜 세월 그 주민(住民)들을 지배해 온 가짜 세력이 무너지면서, 세상의 참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주인으로 영접된 일이다. 

 

‘세바스테’라는 이름의 그 성은 본래 유대교와 기독교의 혼합종교의 본산이었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 시몬이라는 마술사(魔術師)가 그 지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그곳의 교주(敎主)가 되어 그들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을 강고(强固)하게 지배해 왔었다(9-11절). 그런 그곳이 성령과 성령의 사람의 선교로 새 주인이 드러서신 것이다. 우리도 이제 이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성령님을 꼭 만나야 한다! 

 

구약(이사야서)의 상황도 보자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패망하게 된 연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혀주는 곳이다. 유다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당시 왕국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주변의 강대국인 애굽이나 바벨론에게 매달리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여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인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따돌리며 외면했다(13,15-16절). 이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진흙 그릇임을 잊고 살았음을 보여 준 패역 행위였고, 주인 없이 종들만으로 위기를 모면(謀免)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 바람에, 결국 힘없는 백성들은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하여 처참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회복(回復)도, 유다인 스스로의 각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돌려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의 몫이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못 듣는 자를 듣게 하시고, 맹인을 보게 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기쁨을 더해주시고, 가난한 자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시며, 마음이 혼미한 자들을 총명하게 하시고, 원망자들도 교훈을 받게 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18-19,24절). 그것도 누구를 통하여 그런 기이한 일을 하셨는가? 바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하셨다. 오늘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님를 통하여 그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보여 준다. 

 

복음서의 상황도 보자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거기 모인 뭇 사람들이 예수의 권위 있는 교훈에 크게 놀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를 큰 두려움으로 만난 더러운 귀신(鬼神)들린 자가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소리 질렀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절). 우리도 함께 그의 외침을 나누어 보자!!

 

결국 그 귀신은 예수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절)는 준엄한 명령을 듣고 그 사람에게서 떠난다. 그 바람에 그 당사자는 물론, 가버나움 회당이 귀신의 오랜 장난에서 해방되고 정상화(正常化)된다. 그것은 그 귀신이 그 회당의 오랜 멤버였던 사람을 언젠가부터 사로잡아 그를 앞세워, 기득권을 행사하며 회당 운명 및 경영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 회당의 암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모습은 마치 사마리아 성을 지배해왔던 마술사 시몬의 입장과 유사했다. 우리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듣는 것이 습관이 되면, 누구든 그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사29:14). 

 

이제 우리는 주변에 범람하고 있는 숱한 거짓과 가짜 세력들이 우리나라와 우리의 교회와 가정 공동체의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도록 대비해야 한다. 거짓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짓 세력들에 강하게 맞서야 한다. 이런 일은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우리들이 반드시 감당해야할 몫이다. 우리부터 깨어 살고 바르게 살자.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기이하고 또 기이한 일들도 행하는 교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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