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성령강림후(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민족화해주일 > 설교자료

본문 바로가기

설교자료 HOME > 원장코너 > 설교자료

성령강림후(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민족화해주일

관리자 2018-06-20 (수) 17:04 5년전 1170  

본문)  살전 5:1-11, 욜 2: 1-11, 막 4: 21-34 /  민족화해주일

 

날씨가 무더워지고 있다. 잘 준비한 음식물이 한순간 부패하여 파리들이 덤비는 계절이 되었다. 음식관리, 몸 관리 잘해야 건강을 유지할 때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큰 위기를 넘긴 듯, 남북이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고, 북미의 관계도 빠르게 따뜻한 분위기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정치 환경, 인권 환경들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고 모든 상황이 다 좋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 안팎의 사정들의 경우는 이전보다 돌아볼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허약한 내부 체질을 가지고서는 바깥으로부터 제공되는 어떤 좋은 선물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하나님의 선물은 그 사람의 준비된 그릇만큼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특히 우리 민족의 영적 도덕적 정신적 환경은 매우 열악(劣惡)하다. 그럴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결코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분명히 하루하루가 종말(終末)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과제(課題)는 이 시대를 대처하는 지금의 우리 삶의 자세와 내용이다. 

 

그 점에서 작가 이회수의 <하악하악>에서의 다음의 글은 매우 의미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腐敗)되는 음식이 있고, 발효(醱酵)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발효되는 인간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愼重)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 삶을 재점검하자. 나는 지금 어느 쪽으로 가는가? 부패 인생인가, 발효 인생인가? 

중요한 것은 지금 철저한 점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한번 잘못 발을 디디게 되면, 도중에서 방향을 바꾸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하늘의 성령을 받은 이들이다. 복음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늘 백성들이 된 자들이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희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주일 우리는 룻과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과 갈라디아 교우들을 통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방 인생에서 중심 인생이 될 수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부패를 극복할 수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받으며 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듣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새 생명을 생산하는 임산부들을 보라. 생산은 그들의 몸이 하지만, 어떤 생명을 생산하게 하느냐는 것은 그 아빠의 몸에서 뿌려진 씨앗이 그 생명체의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 내 안에 어떤 씨앗, 어떤 세계, 어떤 정신, 어떤 이념, 어떤 신앙이 들어와 있느냐가 중요하다. 잘못된 믿음이 들어서면, 그 인생은 잘못되고 불행해진다. 건강한 믿음이 들어서면, 그 인생은 잘되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교육이 중요하고, 건강한 신앙이 중요한 것이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이다. 오늘의 말씀들은 내 영적 생명의 상태를 점검하려 하신다. 마치 우리가 1년에 한 차례 이상 건강검진 하듯, 자동차도 점검을 받듯, 오늘의 말씀들은 우리들의 부패가 아닌 발효 인생을 위해, 말씀의 청진기와 칼을 대고 우리의 영적 상태 점검을 하려고 하신다. 그것도 오늘만이 아니다. 앞으로 몇 주간 계속된다. 그러니 차근차근 겸손하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종합검진을 잘 받아서, 차제에 내 영혼이 병든 부분을 도려내고 온전한 생령체(生靈體)로 재출발하자!  

 

서신서-복음서-구약을 어떻게 보아야하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도들은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받아드린 이래, 성령 충만하여 매우 칭찬 받을만한 믿음의 본보기가 된 이들이었다(살전1:2-11참조). 하지만 그들의 신앙의 열정의 배경은 철저한 재림(再臨) 신앙에 있었다. 대부분 자기 생전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를 기다리는 신앙이 간절했고 뜨거웠다. 그러기에 그들의 관심은 주님의 오시는 때와 시기였다(5:1참조). 그 바람에 신도 중에는 노동도 회피하는 일이나(4:10-11), 죽는 신도들의 구원 문제들 등의 제반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그에 대한 신학적 정리가 필요했다. 

 

바울은 그들의 재림신앙을 존중하고 격려하면서도, 그러나 제대로 기다리고 준비된 신도들이 결국은 오실 주님을 맞이할 것임을 일깨우는 ‘종말(終末)신앙’의 길을 일깨웠다. 다만 주님의 오심은 내 인간의 계획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오실 것임을 일깨우면서, 그 때가 어느 때인지에 불문하고 그 때를 대비하여 성령 받은 이들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기다릴 것인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차원에서 언급했다. 

 

1) 그들의 정체성(正體性)의 확립을 일깨웠다(4-5,8,9-10절). 자신들은 이미 어둠에서 떠난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임을 알아야만 했다(4절). 결코 자고 취하는 밤의 자녀들과는 확연히 결별된 존재들임을 알아야 했다(7절). 자신들은 주님이 십자가의 핏 값으로 사셔서, 당신과 영원히 함께 살도록 선택된 자들임을 알아야 했다(9-10절). 

 

2) 그런 변화 받은 자들의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에 관하여 집중하여 제기하였다. 신도는 세상에서 빛이나 낮에 속하기에, 그 모습이 공개되고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비유에서도 밝혔거나와, 숨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이 어두운 세상에 노출된 삶의 살게 된 존재들이 바로 예수의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다(막4:21-22참조). 사도 바울은 종말 신앙을 사는 이들이 취할 신앙의 덕목을 몇 가지 제시했다. 

 

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서 살아야 한다(6,8절). 영어 성경은 보다 실감나게 전한다.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 우리에게 잠을 깨기 위하여 대기시키는 ’아람‘ 시계처럼, 우리는 항상 경고 음성에 귀를 열어두고 살아야 하고, 또 자기 조절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됨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부족하면 최후 심판에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다 빼앗기도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 없는 자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배제되고 만다(막4:24-25참조). 

 

② 가슴에는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채우고, 머리(의식)에는 구원의 소망으로 채워진 자들로 살아가야 한다(8절). 믿음-사랑-소망의 영적 보폭(步幅)를 유지하고 보전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③ 신도들 사이의 아름답고 성숙한 관계 유지도 관건이다. 믿음 생활은 독자적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피차 격려(激勵)하고 응원해 주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11절). 비난이나 조롱은 절대 금물이다. 상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대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상대를 훌륭히 세워주려는 마음과 협력의 자세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좁은 길인 종말의 시대에 승리하면서 발효 인생으로 나가게 된다

 

이상 세 가지 차원의 종말 신앙을 승리하게 하는 영적 요인들은 우리에게는 결코 낯선 것들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되어 우리 영혼 속에 떨어진 것들이고,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미 많이 자라기도 한 것들이다(막4:28참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자라는 그 열매들이 어느 정도 자랐느냐는 점이다. 싹의 수준인가, 이삭 수준인가, 아니면 곡식 수준인가? 그래서 추수할 때만큼 되었는가 이다! 

 

아니면 혹, 아예 전혀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확인해보아야 한다. 이 확인은 나에게서 믿음으로 변화된 행위가 전혀 드러나지 아니한 체-, 오랜 세월 교회생활하고 지내고 있는 지에서 확인될 수 있다. 그 상태라면 매우 심각하다. 내 신앙이 죽은 씨앗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자라는 나라여서, 처음엔 저 가장 적은 씨앗인 겨자씨처럼 작지만, 일단 내 영혼과 마음에 그 씨앗이 떨어지면, 반드시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는가?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정도까지 자란다(막4:30-32참조). 거기에 맞춰 내 신앙을 점검하자. 

 

앞에서 바울 사도가 제시한 종말신앙을 위한 지침들로 점검하자. 거기에서 감사할 수 없으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임할 주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주의 오심의 직격탄을 만나게 되리라. 

 

3) 명심(銘心)하자.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이 재림 신앙을 외면하면 안 된다. 오늘 본문들의 나머지 부분들은 주의 오심에 대한 두 가지 대조적인 밑그림들을 제공한다. 

 

① 어둠과 죄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는 그 ‘멸망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임산부에게 임하는 해산의 고통같이, 피할 수 없이 맞이하게 된다(살전5:2-3), 그러면 과연 그 날은 어떤 날일까? 그 날, 곧 여호와의 심판(審判)의 날의 참상(慘狀)에 대하여서는 구약의 요엘 예언서 본문이 전체를 할애하면서, 힘써 전하고 있다. 그 날의 참상과 두려움에 대한 증언을 2-3,7-11절까지를 함께 읽으며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가자. 

 

② 하지만, 반가워하시라. 그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전혀 다르게 맞이하는 무리들도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배척이 아니라 영접으로, 버림이 아니라 들림으로, 멸망이 아니라 구원으로 맞는 주인공들이 있다. 그 영광의 주인공들은 누군가? 바로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빛과 낮의 자녀들로 사는 자’들이다! 살전5:4을 함께 읽고 확인하자. 

 

③ 결국, 주의 심판의 날은 마냥 무섭고 저주의 날만은 아니다. 우리가 오늘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어떻게 살려내고 키우며 사느냐에 따라, 종말 신앙을 깨어서 보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의 그 날을 모두를 빼앗기는 날이 아닌,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들을 다 보상(報償) 받는 기쁨의 날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재림 신앙을 꼭 가슴에 품고 살되, 그 때를 구원과 환희의 날로 맞이하고자, 깨어 있는 종말 신앙인으로 살아가자. 이들이 이 세상과 새 세계에서도 주인공이 된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