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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8-05-30 (수) 12:25 5년전 1216  

본문)  갈 6:1-10, 미 7:18-20, 요 7:53-8:11

 

성령은 사람을 올바르게 세워주시려고 오신 하나님의 영이시다고 앞서 밝힌 바가 있는데, 그렇다면 성령 받은 사람의 교회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성령 받은 이들은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모이게 되고, 그것도 평생을 그 교회에서 신도들과 함께 하나님과 서로를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올바른 교회 생활이야말로 성령 받은 이들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교회 현장은 모든 신도들의 기본 모습이 노정(露呈)되는 곳이다. 신도는 누구나 매 주간에 한번 이상을 정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삶에 애환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일을 평생 지속한다. 이런 교회 공동체 중심의 삶의 행태는 성령 받아 하늘 백성이 된 이들일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자기 노출도 자연히 피할 수 없다. 실로 자기 친 가족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경이적(驚異的)인 행보랄 수 있다. 

 

문제는 그 건강성과 생명력의 여부이다. 교회생활 문화와 전통이 얼마나 건강하고 하늘 맛을 보도록 형성되었느냐는 점은 모든 신도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생활 자체가 신도들 개인에게는 물론, 가정과 직장과 평생의 삶에게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모든 신도들이 자기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만 할 이유이다. 그렇다면 기본이 잘 갖추어진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마침 오늘의 갈라디아서는 성숙한 신도들의 교회생활을 위한 매우 중요한 지침(指針)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의 대상을 교회의 ‘신령(神靈)한 신도들’로 규정하고 있다(1절 참조). ‘신령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그 영의 지도 아래 있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성령 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울이 성령 받은 이들을 이렇게 지목(指目)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그들이 교회의 미래와 복음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교회는 성령 받지 못한 초(初)신자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곳이 아니라, 성령 받은 사람들에 행태와 행보에 의해서 그 운명이 결정짓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교회는 신령한 자들이 교회의 미래와 발전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경계선상(境界線上)에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영적 책임을 다할 때 교회가 발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바로 이들 때문에 교회가 퇴락하기도 한다. 당시의 갈라디아 교회도 그런 위기의 조짐이 엿보인 듯하다. 따라서 사도는 바로 그런 경고의 간절한 심정을 담아서 목회서신을 띄운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신도들의 교회 생활의 최상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데에 두었다고 본다(2절), 그것은 혹이라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법과 맞서는 그 어떠한 ‘인간의 법이나 의지를 성취하려는’ 탐욕적이거나 세속적 욕망을 극도로 경계한 데에서 나온 요구였다! 이런 지침은 지금의 다수의 한국교회가 주의 법을 외면하고 인간의 뜻을 성취하려는 비(非)신령한 위선적(僞善的) 행위를 자행하므로서 벼랑에 떨어진 치명적인 현상에서 보면, 더욱 간절한 성령의 요구의 말씀으로 들린다! 

 

그러면, 신령한 자들이 교회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법(法)을 성취하는 모습들은 진정 어떤 것들인가? 대략 네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다고 보인다. 특히 오늘의 경우는 구약이나 복음서들이 독립적 위치에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 법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자료(資料)들로 제시하는 수준으로 보면 좋겠다.  

 

1)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재판관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신도들을 섬겨야 한다(1-5절 참조). 이런 의식은 신도들 중에서 누군가 범죄(犯罪)하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사례가 발생할 때에라도, 품어야할 마음이다. 범법자에게는 문제 해결을 돕고자하는 온유한 마음을 가진 이웃으로 나아가야 하며, 참여하는 자신도 자신을 성찰할 기회로 삼아야 하고, 또 자신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겸손히 임해야 한다. 마치 상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내세우듯 하는 심정으로 임하여야 한다. 

☞ 바로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참고할 자료들이 미가서와 요한복음 본문 내용들이다! 

 

☞ 미가 내용은 우리의 범죄를 다루시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인데, 이 마음은 곧 신령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범죄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 품어야할 바로 그 마음으로서, 이 내용을 범죄자에게도 알리고 받아들여서 회개에 이르도록 제시할 사죄를 위한 자료이다

☞ 이 은혜로운 내용(7:18-20)을 우리 모두 함께 다시 읽으며, 가슴에 새겨 두자.

 

☞ 요한복음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이야기도 범죄자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지혜롭고 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자칫하면 간음한 여인을 돌맹이로 쳐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의 심판자적 입장에 신령한 자들이 빠져들지 아니하도록 경고 받게 하는 매우 좋은 사례들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님은 결코 범죄를 옹호하지 않으신다. 범죄자는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하고 죄악도 청산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심판의 원칙은 분명했다. 죄에 대한 판결과 그 집행은 반드시 판결할만한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7절)-"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자격도 없는 자에 의하여 심판 받는 것은 사실상 무효란 것이다. 

 

예수의 이런 엄격한 원칙 제시는 결국 개념 없는 정죄자들을 부끄럽게 하였고, 간음했던 여자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예수께서 그 현장에서 취하려던 최상의 선택과 가치는 그를 죽여서가 아니라 살려서, 그 범죄로부터 떠나게 하고, 완전히 새 출발하게 하여 그가 구원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다(10-11절)! 이게 바로 주님이 제시하신 ‘그리스도의 법’의 실체(實體)이기도 하다. 

 

2)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존중과 협력을 견지하는 일이다(6절,고전9:4-14참조)

나의 영적 목자를 협력하고 존중하는 일은 성령 받은 자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지혜요 의무라는 사실도 명심하자. 목자와 불편하면, 내 신앙도 병들 수밖에 없다!

 

3)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에 따라, 육체의 욕망을 거부하고 성령으로부터 얻을 영생(永生)을 위하여, 성령의 깨우치심과 뜻을 따르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7-8절). 교회를 내 뜻과 계획을 펼치는 곳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 전체의 복이 되는 현장이 되게 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 

 

4) 이 모든 일은 묵묵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임해야한다(9-10절). 낙심도 포기도 조급도 금물이다. 농사에는 반드시 때가 있듯이, 생명을 구하는 성령의 일에는 더더욱 기다림이 절대 필요하다. 오랜 기다림은 그만큼의 추수의 큰 기쁨과 감동을 얻게 한다. 

 

결론은 이렇다

 

교회 생활은 성령 받은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험하며 실천하며 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다. 그러기에, 내가 섬기는 교회 현장은 언제나 성령이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법이 실현되는 곳이 되도록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원의 물결이 교회의 담을 넘어 세상에까지 흘러 들어가게 해야만 한다. 이것이 세상을 위한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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