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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2-09-19 (월) 07:54 1년전 344  

본문) 신 30:1~5, 눅 12:22-34, 골 1:3-14


창조절 넷째 주일이다. 이른 추석도 이미 지났고, 밤낮의 시간대가 똑같아지는 추분(秋分)도 지나고 있다. 오곡(五穀) 백과(百果)도 거두면서 한 해의 농사도 뒷정리하는 때에 접어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코로나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힘겨워하는 때, 우리 국내 경제사정도 우려하는 소리가 커져서 걱정이다. 게다가 남북 간의 관계가 점차 긴장 관계가 높아지고, 그에 대한 해법도 여의치 않은 것이 우리의 근심을 깊게 해준다. 

  

이럴 때 맞이한 창조절기에 우리 믿는 자들이 생명과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께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그 길(way)을 찾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 모였다. 창조주 주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요14:5참조). 참고로 지난 셋째 주일에 받았던 말씀을 잠시 되새김해 본다.  


지난 주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문화를 추구하면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려는 인본주의적 인간상에 대응할, 새로운 신본주의적 인간상을 창안하셨음을 보았다. 곧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택하여 세우셔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우선하여 사랑하고 섬기는 새로운 유형의 인류의 출현을 보았다. 그러면서 법보다도 더 우선하고 힘이 있는 믿음에 의해서 복을 받고 구원까지도 받게 되는 길을 그 창조주께서 마련해 주셨음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우리를 어떤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것인가? 우선 전체적으로는 ‘그 하나님이 진정 누구시냐’에 집중한다. 구약의 신명기서는 이 하나님이 지니신 독특한 특성을 소개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품으시려는 분인가를 집중해서 전하려하기 때문이다. 배신(背信)의 몫은 인간에게 있지만, 그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는 오직 기다림과 인내와 자비와 긍휼의 마음뿐이라는 점이 새삼 새롭다. 


이는 실로 ‘주고받는 식의 계산’이 나오지 않은 구도이다. 인간의 일방적인 등 돌림과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와 받아들임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치면 같이 치고, 때리면 같이 때리면 간단한 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대응 방식은 그게 아니란 것이다. 얄팍한 인간의 계산에서 나온 배신과 등 돌림에도 불구하고, 조물주 하나님의 인간 대응은 인내와 용서와 기다림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탈(脫)인간적 구도가 인간 세상에도 있기는 한 건가? 


하나 있다! 바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구도이다. 부모를 향한 어린 자식들은 언제나 계산적이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부모로서 자기에게 무엇을 잘 해주었느냐고 따져 묻는다. 그런 끝에 부모에게 등을 돌리거나 불만하면서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떠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그런 자식에게 여전히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떠나간 자식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긍휼과 사랑으로 기다릴 뿐이다. 


복음서는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부모와 동거하는 자식들이 품어야할 마음과 행동거지가 어떠해야할 것인지를 집중해서 거론한다. 그래서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의심치 말고, 오직 큰 믿음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먼저 구하며 살 것을 권한다. 그러면 그런 자에게는 더하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음을 알린다. 


서신서에서는 그런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과의 이상적(理想的)인 관계가 어떤 구도인지를 골로새 교회의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채워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권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늘 새롭게 성장해 가라고 권고한다. 이런 자녀가 되고, 성도들이 될 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넉넉한 복(福)으로 기리 살게 되리라고 확언해 주신다. 


1. 구약 / 신 30:1-5 / “ 너와 네 자손이 여호와께 돌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켜, 흩으신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경계(警戒)해야 할 마음가짐은, ‘포기하는 마음’, ‘낙담하는 마음’, ‘염려에 빠지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예 단절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마음은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이 갖게 되는 일방적인 것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하나님은 ‘아직 그리고 여전히’, 나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계신데, 정작 자기는 하나님도 자기처럼 마음을 닫으셨다고 간주하여 미리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매우 이색적(異色的)인 주문을 한다. 혹, 자기가 현재 여호와께 저주(咀呪)를 받아서 이방에 포로가 되어 쫓겨나 혹독한 고생을 하고 있더라도, 그 일(자기의 잘못과 하나님의 질책)이 마음에 자책이 되어 기억(記憶)이 나거든, 그 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과 후손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그 말씀을 청종(聽從)해 보라고 권한 것이다(1-2절). 

      

그러면 그 순간부터 ‘그를 향한 여호와의 시간(時間)’이 본격적으로 개시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향한 여호와의 시간은 어떤 내용의 시간을 말하는가? 그 답변은 눅15:11-32에 나온, 돌아온 둘째를 향한 아버지의 대응하시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돌아온 둘째에게, 그의 아버지가 쏟아내신 환대와 영접의 모양새는 가히 상상을 넘어선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3-5절)도 그 내용이 제대로 올라와 있다.  


1) 모세는 죄인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때를 예민하게 거론한다. 그것은 자신의 저주나 고통이 모두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범죄와 악행 때문임을 자각(自覺)하면서 아픔과 후회를 느끼는 마음이 생길 때이다. 그 일은 사실 일종의 그의 잘못을 일깨우면서 그러기에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성령의 손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깨달음을 갖게 된 그는 그 순간을 놓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은총(恩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2) 여기에서 ‘기억이 나거든’이란 원어, ‘수브’는 ‘돌아가다’(3:20), ‘뉘우치다’(렘8:6), ‘원상태로 회복되다’(삿15:19)란 뜻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여기에서의 기억 속에는, 자신의 저주의 상태에 대한 원인에 대한 숙고만이 들어있지 않다. 회개하고 돌아가는 자신을 받아주실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까지 생각하는 일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그런 긍정적 기억에 의지하면서, 믿음을 갖고 취하는 담대한 행동을 보여드리면 된다. 어떠한 담대한 행동인가? 


3) 자신과 자신의 자손이 여호와께 돌아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말씀을 청종(聽從)하는 일이다(2절, 하). 마치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모습을 보이는 일이다(눅15:18-20참조). 그런 간절하고도 진실한 모습이 확인되면, 그 순간부터 그를 받으신 하나님의 환대(歡待)는 놀랍도록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어떤 내용의 환대를 제공하시는가?   


4) 여호와께서도 마음을 돌이키신다. 그의 돌이킴에 보조를 맞추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그 동안 곳곳에 흩으셨던 백성들 중에서 모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그곳은 땅의 맨 끝까지도 찾아서 돌아오도록 모으신다. 거기서부터 다시 이끌어내신다. 어디로 이끄시나? 그들의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다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뿐만 아니다. 돌아온 그들을 그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신다(3-5절)


☞ 사실 유대인 디아수포라의 팔레스틴에로의 귀환의 역사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었다. 

1차는 바사제국의 건립과 함께 시작된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이었다(B.C 537). 2차는 에스라의 인솔이었다(B.C458). 3차는 느헤미야의 인솔이었다(B..C440). 신명기의 본문 내용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는 백성들의 회개의 행진도 함께 담아낸 것이다. 


2. 복음서 / 눅 12:22-34 / “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his kingdom)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된 이들이  특히 조심하여야 할 언행(言行)에 대하여 일깨워주는 말씀들을 담고 있다. 대체 조심해야할 언행들은 어떤 것들인가? 몇 가지가 있다.  


1) 우선은 하나님 앞에서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놓고 염려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는 자기 부모의 면전(面前)에서 자식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놓고 불안해하는 모습과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이다. 그런 모습을 두고 주님은 이렇게 지적하신다.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그런가? 하나님은 까마귀도 먹이고, 백합화도 짜 입히며, 들풀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자기 자녀 된 그들을 굶주리게 하시겠느냐는 이유에서이다(22-28절).  


2) 그러면 어떤 마음과 언행을 가져야 하나? 의식주는 아예 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근심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구함은 자녀 된 믿는 자의 몫이 아니라 불신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이미 그들에게 있어야할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30절). 그 보다는 우선(于先) 구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하늘 아버지의 나라(Kingdom)이다. 그의 통치(統治)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힘써 구하는 일이다. 


3) 이게 바로 자녀들이 마땅히 구할 일이다. 결국 자녀들은 아버지의 것을 먼저 구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알아서 챙겨주시는 일을 도맡으신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역할 분담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셨다. ‘무서워 말라. 아버지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땅에 쌓아둘 것들보다는 도둑이나 좀도 없는 하늘에 둘 구제의 배낭을 만들라’고 권하신다. 이것은 마음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두고 살라고 권고하신 것이다(31-34절 참조).  


3. 서신서 / 골1:3-14 /  “너희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고 있다. 골로새는 에베소로부터 동쪽으로 약 180km 지점에 위치하면서 소아시아의 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있었는데도, 바울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베소에서 개척 목회하던 바울로부터 전도 받았던 골로새 출신인 에바브라(?)를 통하여 그 교회가 개척되어, 좋은 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이는 에바브라가 바울의 충성된 동역자로서 교회를 잘 섬긴 까닭이었다(7-8절). 

 

물론 그 교회 역시 영적 환경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거짓 종교의 출현이 있었고, ‘철학’을 내세우거나(3:8) 천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의 이단적 요소들도 있어서, 교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 종교와 이방 종교 사이의 혼합 종교현상도 보였다. 그럼에도 바울의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 편지(옥중서신)의 내용을 보면, 그들의 신앙상황은 무척 매혹적(魅惑的)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면에서 그랬는가? 


1) 그들은 에바브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 부터 그 말씀을 은혜로 받았고, 깨달음도 컸고 응답도 강했다. 곧 그들은 복음을 통해 영접한 예수를 향한 믿음이 강했고, 함께 믿는 동료 성도들을 향한 사랑도 뜨거웠으며, 자신들의 소망을 세상이나 인간이 아닌 하늘에 쌓아 두고 살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매우 진지하고 신실하였기에, 그들의 믿음의 영향력도 주변(온 천하)에 널리 끼칠 정도였다(4-6절).    


2) 사도 바울로서는 그런 소식을 듣게 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분되고 감사한지-, 그들을 축복하고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들을 그토록 잘 가르친 신실한 동역자 에바브라의 수고와 헌신을 격려하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7-8절). 


3) 아울러 사도는 그들 소식을 듣게 된 날부터 그들을 위한 기도를 쉴 수가 없었다. 너무 소중한 그들의 믿음의 소식들이기에, 어떤 외세와 거짓 세력들의 공세로부터도 의연하게 자신을 지켜내고 든든히 자라가기를 소망하면서, 다음의 당신의 기도제목들을 전하였다.  


-‘그들’안에 하나님을 아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가득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만 채우게 해 달라(9절).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무리들이 되고,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알도록 자라게 해 달라(10절). 영광의 힘과 능력을 부어주셔서, 기쁨으로 모든 고난이나 역경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게 해 달라(11절). 자신들도 골로새 성도들의 그런 빛된 모습을 보면서 하늘 아버지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해 달라(12절)


4) 끝으로 사도는 주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자신들을 건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시고, 그 아들로 인하여 자신들(모두)이 속량함을 얻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13-14절).  

 

o 이제 우리 모두 긍휼과 자비가 무한하신 하늘 아버지께 마음을 활짝 열자. 그리고 그에게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신뢰와 충성의 마음을 전해 드리자.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가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이상적 구도를 우리도 늘 견지하며 살아가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일에 힘쓰고, 그의 뜻이 이 땅위에서 실현되기만을 전력하며, 주의 능력과 지혜가 내 안에 가득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갈수록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러게 되면, 우리의 모든 필요들은 그 분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넘치도록 공급받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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