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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2-01-04 (화) 20:31 2년전 446  

본문)  마 5:1~12, 신11:26-32, 고전 13:1-13


o 세 분문의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


주현절(主顯節)기가 시작되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께서 본격적인 세상 구원 사역을 시작하신 절기에 접어든 것이다. 예수의 대표적인 메시야 사역들은 통상 세 가지였는데, 가르치는 일, 전파하는 일, 그리고 치유하는 일이었다(마4:23참조). 그런 중에 오늘은 마태가 전하는 주님의 첫 사역으로서의 선포와 가르치시는 일이 소개되고 있다. 흔히 ‘팔복(八福) 선언’, 또는 ‘행복(幸福) 선언’이라고 불리는 내용인데, 그 대상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제자들이었다(1절). 

       

공생애에 접어든 예수께서 자신의 첫 번째 선포의 주제를 ‘복(福)있는 자’에 집중하며 말씀하신 일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그것은 모든 인간들의 기본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본적인 관심사 역시 언제나 ‘복을 받고 싶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예수께서도 인정하셨고, 동시에 그런 무리들의 열망에 대하여 당신이 적절한 답(答)을 주셔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취하셨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일각에서 견지하고 있는 기복주의(祈福主義)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유념(留念)을 하면서도, 그러나 성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 분이시다는 사실에 대하여서도 확실히 인지하고 살아야 되겠다. 복을 외면하고 사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망상(妄想)이다. 복 받고자 열망하는 인간을 탓하면 안 된다. 사실 복은 주려는 신과 받으려는 인간을 하나로 만나고 묶어주는 결정적인 매체가 아니던가-!  


다만 복은 복이되, 어떤 유형(類型)의 복이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제시하시는 복에 대한 말씀들이 새삼 주목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참된 복이요 받으면 삶이 건강해 지고, 하나님과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게 되는 복이기 때문이다(눅2:52절 참조). 마침 요즈음처럼 코로나 전염병에 시달리는 시련기에서는 더욱 복다운 복이 정말 필요하다. 당연히 복 받는 때여야만 하겠지만, 어떤 복일지는 보다 잘 살펴야만 하겠다. 

   

창세기에서 성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상 만민 위한 복의 근원으로 세우시면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서만 체험될 수 있는 ‘복 받은 자의 시대’를 여셨다. 그의 후손인 다윗 왕도 ‘복 있는 자’의 삶은 어떤 삶인지를 깊이 있게 안내해 주었다(시1편). 그런데 구약의 대부분의 복은 대체로 하나님 사랑에 집중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안전과 풍요와 장수 등의 육체적 필요에 집중되는 경향이 컸다. 그리고 지도자 중심의 복의 흐름도 강했다.  


그런데 인간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도 세상을 향한 첫 메시지로 복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주님이 언급하신 복들은 이전의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말씀하신 ‘복 있는 자’들의 모습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고차원적인 성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팔복 선언에는 주님의 존재가 담겨 있고, 그의 오신 목적이 담겨 있으며, 그가 열어주시려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그의 가르침에 순복하고 좇게 되면, 그 사람은 하늘과 땅 모두에서 ‘알짜 복 있는 자’가 되기에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팔복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복이 어떤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 공급되는 지가 밝혀진다. ‘---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3-11절 참조). 이것은 조물주가 주신 복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지를 밝혀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 복을 가진 자의 삶은 어떤 삶이 될 것인지도 이어서 밝혀 주셨다.  


이 점은 진정한 복은 인간의 열망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준비된 마음의 내용에 따라서 주어지고 채워지는 것이며, 또 그런 복을 받은 자의 삶과 뒷모습은 어떤 것인지도 함께 설명하신 것이어서, 인간이 복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고 본다.  그 뿐 아니다. 주님이 선포하신 복들에는 다음의 몇 가지 특성들이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1) 그의 복에는 세상에서의 복만이 목적이 아니다. 천상의 복에 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복이다.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영원에까지 이르러야만 되는 복이다. 하늘과 땅 모두에 유효한 것이어야 한다. 한 때의 충만과 풍성이 금방 쓰레기처럼 되는 세상과 육체적 복들은 절대 하나님의 주시려는 복이 아니다. 그런 복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  


2) 그가 우리에게 안겨주시려는 복에는 두 가지 차원의 영적 요인들이 담겨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가짐이다(3-6절). 가난한 심령(3절), 애통하는 마음(4절), 온유한 마음(5절), 그리고 의를 구하려는 마음이다(6절). 또 다른 하나는 동료 인간과 이웃을 향한 마음이다(7-10절). 곧 긍휼히 여기는 마음(7절), 청결한 마음(8절), 평화를 이루려는 마음(9절), 그리고 의를 위해 박해도 마지않는 삶(10절)이다. 이 두 차원을 공유한 자들이 복이 있다 하셨다. 


3) 이 복들은 예수님과 무관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인격, 생애, 관심 등 모두에서 그의 영적 가치관 전부를 담아 내셨다. 그러기에 이 팔복은 곧 예수의 삶을 공유할 자들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내용이고, 그들의 제자 될 자들의 자격증과도 같다고 보이는 복들이다. 그런 점에서, 새해를 맞이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더욱 확실히 하여야 하겠다. 육적이고 세속적인 복만을 구하지 말고, 주님의 삶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다.


반면에 구약의 신명기의 복에 관한 계명들은 다른 신들을 따라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여호와의 명령(규례와 법도)을 따르는 일에만 집중해야 됨을 강조한다. 이것은 오직 여호와만이 진정으로 살아계신 신이며, 그러기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제대로 된 복을 베풀어줄 수 있는 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도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자세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본문은 우리에게 더욱 주도적인 삶의 대응을 요구한다. 


서신서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랑장’의 말씀이다. 바울의 증언을 통하여 온 세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한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사랑하는 복이 가장 복 중의 복임을 선포하였다. 모든 삶, 이념, 종족, 문화, 심지어 모든 계명들까지도 일괄 포용할 수 있고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복이 바로 사랑임을 선포하였다. 즉 사랑하는 마음, 인격, 그리고 행동이야말로 진정 복 받는 인생의 표준임을 강조한 것이다. 어찌 보면, 본문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복을 받기를 기대하느냐고 묻는다. 올 새해는 그 복을 향한 행진을 본격화할 때여야 한다.  


1. 복음서 / 마 5:1-12 /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어라 – 복이 들어 가신다’


성육하신 주께서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복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입을 여셨다. 창조주께서 주려고 마련하신 복이 어떤 사람에게 흘러들어갈 것이냐는 점이었다. 그 복은 너무도 귀한 것이어서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별이나 선발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 되신 당신의 제시한 그 영적 영역(가이드 라인)에 들어선 자들에게만 주어질 복들이다. 


여기엔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두 차원의 준비가 제시되었다. 마치 모세의 십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두 줄기를 담았던 틀과도 흡사하다. 이제 예수의 팔복 선언을 확인해 보자. 


1) 복이 있을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이래야만 한다. 

①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3절). 늘 겸손하고 부족한 마음으로 보다 나은 것을 구하는 마음이 절대 필요하다. 하나님은 가난한 인간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가지신 분이시다. 당신이 돕고 은혜를 베풀 것을 먼저 찾으시는 연고이다(시37편,사57:15,습2:3,눅1:46-55참조). 하나님이 배제하시는 최고의 대상은 교만한 자이다. 다만 겸손과 빈 마음의 소유자에겐 천국이 채워진다.  


② 애통(哀痛)해야 한다(4절). 늘 슬퍼하고 울며 지내라는 말씀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부유함으로 채움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남다른 위로(慰勞)가 따른다.  


③ 온유(溫柔)해야 한다(5절).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감사하며 사는 마음에는 복이 온다. 그런 자에게 주어진 복은 세상의 기업들이 공급하는 복들이다. 

④ 의에 목마른 마음이어야 한다(6절). 하나님은 의롭고 공정한 분이시다. 의는 복받을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다. 왜곡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의 희망이 될 자들이다. 배부름을 받게 된다.  


2) 복 받을 사람의 ‘인간을 향한 마음’은 이래야만 한다. 

① 긍휼(矜恤)히 여기는 마음이다(7절).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책망이나 비난하는 자보다는 동정하며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원한다. 이 사람은 긍휼히 여김도 받는다.  

②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8절). 마음이 깨끗하고 편견이나 왜곡된 시선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이들이 환영을 받는다. 이들은 하나님을 뵙는 은혜를 입게 된다. 


③ 평화를 짓는 자이다(9절). 세상은 사소한 일이나 지엽적인 일들로 불화와 싸움과 등돌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서로의 화목과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는 드물다. 예수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란 명예를 얻게 된다.

④ 의 때문에 박해 받는 이들이다. 세상은 예와 아니요를 바르게 하고 사는 이들이 드물다. 동시에 의와 빛을 미워하는 자들의 공세도 크다. 그러기에 천국이란 특별한 선물이 따른다. 


2) 예수님은 그 박해의 요인이 되는 의(義)의 자리에다 당신을 내세우셨다(11절). 의와 빛 되신 당신도 악한 자들에게서 미움과 박해와 모함과 악독의 매도를 당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고난자들에게 특별 당부하신다. 하늘의 큰 상(賞)이 주어질 터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예전의 거의 모든 선지자들도 그런 일로 이미 상을 받았음을 근거로 제시하셨다. 


2. 구약 / 신 11:26-32 /  “ 복 받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주로 떨어지는 길도 있다 ”


가나안에 들어설 백성들에게 모세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두 가지 상반된 길들을 보게 한다. 복에 이르는 길과 저주를 받게 되는 길이었다. 이 문제는 나중 28-30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재론되는데, 이는 그만큼 이 두 가지 길에 대처하는 백성들의 의식을 깨워주고자 함이었다.    


1) 복(福)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명령하고 내리신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에 순종하는 일이다(27, 32절). 그리심의 반열이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여호와께서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을 상속하여 그 땅을 차지하고 주인이 되어 거주하게 되리라고 예고하셨다(31절).


2) 저주(咀呪)를 받는 길은 어디인가? 주신 여호와의 명령의 길을 듣지 아니하고 떠나서 본래 알지도 못하는 엉뚱한 신들을 따라가는 일이다(28절). 에발 산의 반열에 선 것이다(29-30절).


☞결국 생명과 빛 되신 여호와에게 순복이냐 불복이냐에 따라서, 복과 저주의 삶이 결정된다. 


3. 서신서 / 고전 13: 1-13 /  “ 사랑 없는 삶으로, 복 받은 인생을 논하려 하지 말라 ”


이방인의 사도요 전 세계 만민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선교자 바울은 그의 구원의 복음의 정점에다 사랑을 올려놓았다. 즉 모든 인간의 재능들의 가치와 무가치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신적(최후의) 자리에 사랑(love)이 있음을 공포한 것이다. 즉 그는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고 또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사랑임을 공언한 것이다. 이런 논리와 시각 때문에, 그는 단호히 선포한다. -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2절).   


1) 사랑이 단연코 최우위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울이 동원한 영적 가치들은 무엇이었는가? 내용을 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가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영성들이다. 곧 방언-천사의 말(1절), 예언의 능력에 따른 모든 비밀과 지식-산을 옮길만한 믿음(2절), 전 재산을 통한 구제 행위-몸을 사르게 할 순교(3절) 등등이다. 이런 놀라운 것들도 사랑이 그 속에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2) 바울은 사랑이 가진 성격과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4-6절). 사랑이 있으면, 오래 참는다, 온유하다, 시기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무례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성내지 않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모든 것을 참는다, 믿는다, 바라며 견딘다. 나는 어떠한가?   


3) 그러면서 사랑이 왜 ‘최고의 영성이며 복중의 복’인지를 정의한다(8-13절). 그 이유는 사랑은 도중에 사라질 다른 것들과는 달리, 끝까지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폐할 수 없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바울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절).   


o 올 해의 출발을 무엇으로 시작하려는가? 사랑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더욱 강화되는 새해여야만 한다. 우리 성도들은 근본 영원에 잇대어 사는 자들인데, 땅의 일시적인 것들에 집중하지 말고, 영원한 가치와 보물을 담아내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홀로 있지 않다. 모든 것 속에 들어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전념할 때, 우리는 예상치 않은 모든 필요들도 필히 얻게 것이다. 사랑을 삶의 주제로 삼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복이 채워지는 감동의 새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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