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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7)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1-10-13 (수) 08:09 2년전 455  

본문)  창 9:1~7, 마 25:14-30, 벧전 4:1-11 


o 본문의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창조절 일곱째 주일이다. 매우 완연한 가을이다. 주변의 수목들의 색깔에도 이미 변화가 왔다. 

어찌 이렇게 기온의 변화와 함께 주변의 환경도 급변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의 여정도 완전 

마찬가지이다. 어제의 싱싱하던 모습에도 이제는 잔주름과 노인의 모습이 완연히 와있다. 이

것마저도 잠시 후를 생각하면, 지금은 여전히 젊은 때이겠지-! 피할 수 없는 삶의 여정이다. 

결국 삶의 순환을 주관하시는 분을 새롭게 올려본다. 대체 그 분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그의 피조물(被造物)된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야할 것인지를 

가이드해 주는 말씀들이다. 여기에서, 오늘의 본문들은 우리의 매우 기초적 이해를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과 허락 없는 인간의 행위는, 결코 행복하거나 안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인식과 함께 이 땅에서의 인간의 제반 삶의 내용들은 반드시 후에 하나님 앞에

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도 우리가 반드시 알고 살기를 바라고 있다. 


구약 창세기 내용은 대홍수 재앙 후, 남은 자로서 새로운 지구촌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막중

한 책무를 부여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축복들을 받았으며, 그런 중

에서도 어떤 금기(禁忌) 사항들도 지침으로 함께 받았는지를 소개한 내용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부여하신 복들이 온전하도록 거기에 따른 주의 사항도 딸려 주시기 때문이다. 


복음서 내용은 ‘달란트 비유’로서, 인간은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을 어떤 자세로 받들어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일깨우신다. 여기에는 그 삶의 내용에 따라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

하고 게으른 종’으로 구분된다. 그 분기점은 자기 주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알고 대비

하였느냐의 여부에서 판가름이 났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극과 극이다. 전자는 주인의 즐거

움과 기업에 참여하게 되지만, 후자는 어둠에 내쫓겨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것이다. 


서신서는 타락한 어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택함 받아 생존하기 위하여 마음의 중심을 어

떻게 잡고 살아야할 것인지를 밝혀준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옛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재현

되어서는 안됨을 강조한다. 방법은 종말에는 정신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고 사는 일이다. 서

로 사랑-서로 대접-서로 봉사의 아름다운 영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런 일련의 행위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자기 과시는 절대 금물이다. 


이제 이런 세 본문 말씀에서 제공한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준수해야할 신앙 윤리와 

거부하고 피하면서 살아야할 금기 사항들도 확인하면서, 우리가 받은 구원의 믿음의 삶이 끝

까지 승리에 이르도록 행진해가자. 


1. 구약 / 창 9 : 1- 7 /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냥 거져 주시는 법은 없다. 반드시 그 복이 진정 받는 자에게나 주시

는 하나님에게나 모두에게 참 복이며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하여서도, 하나님은 그 복에 관련된 

절대 조심해야할 내용들도 함께 주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은 언제나 좋으면서 

도, 책임과 부담을 함께 안고 있음을 본다. 그 점을 알고, 접근하면 이해하기 쉽다. 


1)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 아들들에게 주신 복은, ‘생육(生育)하고 번성(繁盛)하여 땅에 충만(充

滿)해지는 것’이다(1절). 그렇게 생육, 번성, 충만이란 세 지표는 당시 삶의 환경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복들이었다. 그들 여덟 명의 가족들은 이제 새 세상의 모판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은 하늘 백성들이 세상 끝까지 충만하도록 낳고 번성하는 일들에 집중해 살아야만 했다. 


2) 그렇게 되려면, 특별한 지원이 필요했다. 특히 가장 핵심은 바로 먹거리 지원이었다(2-3절)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가족에게 땅의 모든 짐승, 공중의 모든 새, 땅에 기는 모든 것들, 바다

의 모든 물고기-, 이런 육해공(陸海空)의 모든 것들을 그들의 손에 붙여 주셨다. 붙여주셨다는 

것은 그것들이 인간을 두려워하며 결국 지시에 따르는 생명체들로서의 질서를 잡게 하셨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언하셨다. 모든 산 동물들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처럼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 이것은 인간이 육식과 채식을 자유롭게 취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전거(典據)가 되었다. 


3) 하지만, 여기에는 절대 지켜야할 금도(禁道)가 하나 있었다. 바로 어떤 고기를 취하더라도 

그 속에 든 피(血)째 먹으면 안 되었다(4절).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부여하실 때에 피에다 생명과 영을 부여하시는 데, 그러기에 창조주에게서 모든 피는 당신께 

속한 것으로 간주하신 것이다. 비록 인간이 그것들의 육체를 고기로 취할지라도, 그 안의 피

는 흘리거나 흙으로 덮어 처리하게 지시하셨다(레17:10-14, 신12:16절 참조). 


☞ 이에 불응하게 되면 보복을 예고하셨다. 피를 취하면, 짐승이면 그 사람의 짐승에게서, 사

람이면 그 사람에게서, 각각  그의 생명을 취하신다고 경고하셨다(5절). 무겁게 들어야 했다. 


4) 그런 피 취득에 대한 엄격한 금지를 하신 하나님의 보다 분명한 이유가 그 다음에 드러나 

있다. 그것은 피흘림의 위험성과 전염성을 차단하려하신 것이다. 곧 짐승의 피라고 피를 자유

롭게 취하게 되면, 그게 사람에게 까지로 옮겨갈 것을 우려하셨음이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체 

의 피 취함에 대한 금지에는,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까지도 죽여 그의 피를 흘리

는 일에 대한 단호한 금지를 담고자 하심에 있었다. 즉 인권을 지키시려는 마음이 있으셨다.


5) 그 주의사항을 전달하신 주님은, 다시금 노아의 가족들을 향하여 축복하셨다.  

☞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7절). 노아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기에 노아 가족들(하나님의 선민들)은 오직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축복을 붙잡

고, 담대히 그 험한 광야와 같은 세상 현장으로 나아가야 했다. 


2. 복음서 / 마 25:14-30 / 어떤 종이냐 -, 착하고 충성되냐, 악하고 게으르냐


여기에서는 그렇게 새로운 삶의 거친 현장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2의 노

아 가족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소명(召命)을 풀어가야 마땅한 지를 

말하려 한다. 자기에게 위임하신 분과의 결산(決算)할 때도 있음을 꼭 기억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소개된 비유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다섯 비유들 중에서 네 번째 것이다. 본문 말씀의 

핵심은 <직업(職業)에 따른 소명론>이다. 마침 이 비유에 소개된 세 명의 종들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부여받은 자들이다. 이는 마치 구약의 노아의 샘-함-야벳, 세 아들들

을 상징한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누구냐가 아니라, 다만 누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에 보다 적합한 인물들이냐에 있다. 


거기에 걸맞는 인물은 누구일까? 하나님은 노아 가족들에게 축복과 자원만 주시는 분이 아니

다. 당신이 부여하신 축복을 성취하고자, 그들 종들이 어떻게 대응(일)하였느냐는 점도 매우 

중요하게 살펴보신다. 이 점에서 진행된 과정과 각자에게 나타난 반응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1) 주인은 타국에 출타하면서 세 명의 종들을 불러서 각자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다(14절). 첫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둘째에게는 금 두 달란트, 셋째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각각 맡겼

다. 분배의 차이는 주인이 본, 세 종들이 가진 역량(力量-재능) 차이 때문이었다(15절). 


2) 그러자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위탁 받은 그 세 종들은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게 되자 

각자의 노력에 대한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로 나타났다. 과연 어

떤 인물이 주인이 바라던,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여 번성하라’에 걸맞는 기준점에

서 살아온 종이었을까? 


하나는 주인으로부터 ‘일을 잘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자들이 나왔다. 첫째와 

둘째 종들이 바로 그런 주인의 칭찬을 받았다. 그들은 주인이 맡긴 것으로 장사를 하면서, 그 

이익금도 각자 두 배씩 거두어서, 주인에게 첫째는 열 달란트를 드렸고 둘째는 네 달란트를 

드렸다(16-17절).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기준점에 적합한 무리들임이 판명난 것이다. 


또 하나는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된 자가 나왔다. 바로 셋째 종

이다. 그는 주인에게서 받았던 그 달란트를 그대로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가 결산할 때에 

그대로 갖다 내어놓았다(19절), 그는 그런 이유를 주인의 탓으로 돌렸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

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주인으로서는 적반하장이었고, 평가 기준점에서 한참 수준 미달의 낙제생에 불과했다.   


3) 주인의 종들에 대한 최종 선고가 떨어졌다. 착하고 충성된 두 종들에게는 보다 많은 몫이 

주어지고, 주인의 식탁 친교에 참여하면서 주인의 즐거움도 함께 나누게 되는 영광을 입게 되

었다. 그러면서 부실한 종의 몫까지 인수받게 되기도 하였다(21,23,28-29절,계2:26-28참조). 

반면에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는 ‘무익(無益)한 종’이라는 오명(汚名)까지 받으면서, 가진 것도 

몰수되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후회 속에 살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30절). 


☞ 결국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나? 


1) 인생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다. 보내신 조물주의 것이다. 그의 뜻과 소원을 담고 살게 된 

존재이다. 따라서 각자는 자신의 삶이 위탁(委託)받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신 안에 부여된 

재능과 역량과 은사들을 적극 활용하여서,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러

야 한다. 분량의 다소(多少)에 매이지 말라.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

한 달란트는 주셨다. 그것을 빛나게만 하면, 그 누구나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 


2) 비참해질 인생들은 누구인가? 자기의 구원이나 영위만 생각하고, 자기 주인의 일을 생각하

지 아니한 체, 자신에게 부여된 은사와 재능을 활용하지 않아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늘 탓만 한다. 조상 탓, 신세 탓, 하나님 탓, 환경 탓만 하다 

인생을 허비하고 만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나 자원들이 그에게서 묵혀져서 

빛바랜 것이 될 뿐이다. 그 대가(代價)는 어두움과 영원한 후회만 주어질 뿐이다.  


3)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라.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리로 나아가라. 


3. 서신서 / 벧전 4: 1-11 / 시련 중에도, 서로 사랑-서로 대접-서로 봉사하라         


본문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려고 하는 노아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마귀와 

세상의 어둠의 권세들은 그런 그의 영적 행보를 끊임없이 훼방하려고 숱한 고난과 시련을 안

겨주는 현실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그런 도전과 역경을 극복할 대안이 무엇인가? 본문은 바로 

그 방안들을 제시한다. 개인적인 방안과 교회 공동체적 방안 양 측면을 함께 제시하여 준다. 


1) 개인적(個人的)인 측면은 이렇다. 육체적인 고난과 시련들이 계속 이어지는 일이다(1절). 괴

로운 일이다. 그것은 이전의 몸담고 지내던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일, 그로 인한 각 가지 

공동체나 가족들이나 친구들로부터의 배제 당함, 고립됨, 또는 공사간의 신앙관에서나 가치관

의 차이에서 오는 비타협적 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종 불이익과 힘든 경우일 수 있다(4절). 

예전의 자신은 음란-정욕-만취-방탕-향락-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인들의 풍속을 쫓아 살다가, 

지금은 주의 복음을 만나서 그곳을 완전히 떠나왔기 때문이다(3절 참조). 어떻게 해야 하나?  


2) 이 일은 보다 차원 높은 영적 안목으로 과감히 맞서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자신은 다시 

옛 것에로(육체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 존재임을 자인하고(2절), 영으로도 하나님을 따라 살

게 되었으니(6절), 이제는 자신에게 그런 육체적 삶의 포기에 따른 사탄의 공세로 인한 고난

과 시련을, 아예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으로부터 이미 당하셨고 이겨내신 것이라고 규정하고 수 

용하라는 것이다. 그 대가는 죄에서의 해방과 죄 굴레에서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1절). 


3) 정신을 차려 근신하여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적 대응도 제시되었다(7절). 이는 개인들이 겪

는 영적 시련들과 고난을 위로하고 포용해 줄 큰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대략 세 가지의 

구체적인 영적 결속들이 제시되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이는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다(8절). 둘째는 순수하게 서로 대접하는 일이다(9절). 이웃 사랑의 큰 다리가 되기 때

문이다. 셋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은혜로 서로 봉사하는 일이다(10절). 다

만, 이런 일들은 절대 자신의 것인양 내세우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때문에 하게 된 모양세가 절대 필요하다(11절). 그것은 오직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다.   


☞ 여기에서, 생육과 번성이 가능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등장하는 세상이 가능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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