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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1-10-05 (화) 22:59 2년전 458  

본문) 창 8:13~22, 눅17:11-19, 골3:12-17 


o 세 본문 분석(分析)과 이해(理解)


추수(秋收)의 계절이다. 당연히 한 해의 농사에서 땀 흘리며 수고한 이들은 소출(所出)하게 된 

일에 대하여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품을 것이다. 농사지을 땅이 있고, 건강이 있고, 기술도 있

고, 일기도 좋아서 이렇게 수확할 수 있음이 정말 감사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 감사에 더욱 철저하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도 진정 감사에 

매우 민감(敏感)하신 분이시다. 당신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感謝)로 응답하는 자와 그

렇지 않고 외면하는 자를 확실히 구별(久別)하신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면, 누구

나 첫 번째로 훈련 받는 부분이 바로 이 ‘감사하는 일’이다. 그것도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다. 


따라서 믿는 자의 두드러진 표시 중에 하나는 그의 일상 생활에서 꾸준히 ‘감사하다’는 입술

의 언어가 샘솟듯 한다는 점이다. 이제 나 자신부터 확인해보자. 나의 삶과 언어 속에는 이 

감사의 표시가 과연 항상 표출(表出)되고 있는 지 말이다. 만일 감사가 빈곤하거나 메말랐다

면, 그것은 신앙의 기초가 아주 빈곤하다는 방증(傍證)임을 알아야 한다. 본래 믿음과 감사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종에 일란성(一卵性) 쌍둥이와 같은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감사를 생활화 해보라. 감사가 있는 곳은 반드시 미래(未來)가 있다. 감사하면 상대와

의 관계가 단절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기의 호의에 대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신

뢰를 한다. 더 큰 호의를 주기도 하고 받게도 된다. 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미래도 없

고, 관계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감사에는 후회(後悔)라는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오늘은 창조절 여섯째 주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 상호간에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감정과 정서도 창조해 

주셨다. 자기 감정을 부정적으로도 표시할 수 있게도 하셨고, 긍정적으로도 표시할 수 있게도

하셨다. 그 중에서 가장 역동적이요 긍정적 에너지는 역시 진정한 감사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오늘 세 본문의 핵심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란 말씀에 집중된다. 

창세기의 노아는 대홍수 후, 제2의 아담으로 새 인생과 새 역사의 멍에를 매게 되었을 때, 여

호와께 제단을 쌓고 정결 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그러자 그 향기를 제물로 받으신 여

호와는 당신의 세상과 인간을 향한 심판의 기준을 스스로 변경시키신다. 인간의 연약함을 헤

아리셔서, 인간에 대한 당신의 심판의 차원을 긍휼과 자비로 새롭게 설정하셨다(21절). 


복음서의 예수님은 당신의 지시에 순종하다가 치병(治病)을 받게 된 나병환자 열 명 중에서 

유독 한 사람, 곧 사마리아 출신인 치병자가 당신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자, 그에게만 더 큰 

은혜를 베푸신다.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9절). 이 모습을 통하여 주님은 감

사하는 자는 그 누구나 차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확인해주셨다. 


서신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교회 성도들이 품고 살아야할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올렸다. 

전반부는 필요한 덕목(德目)을 제시하면서, 건덕(建德)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모든 덕목들을 온전히 매는 띠로 제시한다(12-14절). 후반부에서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당

부를 세 차례에 걸쳐 반복한다.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어떤 경우에도 하늘 아버지께 감

사하라고 요구한다(15-17절). 이제 세 본문에 담긴 내용들을 보다 세밀히 살펴본다. 


1. 구약 / 창 8:13-22 / 판데믹(pandemic) 시대의 구원의 윤리를 제시한 첫 사건         


본문은 인류사에 나타난 첫 대재앙인 노아 홍수(洪水) 시대를 마감하면서, 노아가 그 이후 시

대를 위한 소명자로서 성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소명의 자리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드린 번제(燔祭)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에게서 세상 심판

을 향한 방법(方法)에 큰 변화로 일어났음도 매우 주목되는 장면이다. 


☞ 특히 이 장면은 지난 2년간의 우리 지구촌에 불어 닥친 코로나19란 살인적 판데믹의 위협 

속에서 두려워하며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의 처신에도, 커다란 경종(警鐘)을 주

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건으로도 읽혀질 수 있는 내용으로도 보인다. 세상의 처방인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세에 진정 무엇이 필요한 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 홍수 기간은 만 1년 10일간이었다. 노아 나이 600세 둘째 달 17일에 시작하여 601세 둘째 

달 27일에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의 온 지구촌은 이 대홍수로 완벽히 멸절(滅絶)당하는 재앙

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오직 남은 자(Remnant)는 노아와 그의 가족 8명이었다(16절-노아 부부/세 아들 부부들). 

그리고 그들이 미래를 위한 씨종자로 삼기 위하여, 방주에 데리고 갔던 살아있는 생물들인 

새-가축-땅의 기는 모든 생명체들이 있었다(17절). 


3) 대홍수 기간에 그들을 생존하게 한 공간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만들었던 방주(方舟-ark)

였는데, 그들은 홍수가 그친 것을 비들기를 통하여 확인하고도, 스스로 하선(下船)하지 아니하

고 57일 간을 방주에서 더 머물렀다. 그것은 그들에게 승선(乘船)을 명령하셨던 하나님의 하

선의 명령이 떨어지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모습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런  

순종의 모습은 답답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미래를 위한 영적인 준비였기 때문이다. 


4) 드디어 여호와의 하선 명령이 떨어졌다. 그 지시에는 여호와의 세상의 향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생명체들도 다 이

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리라’(15-17절). 


5) 그 지시에 따라 다시 세상의 땅을 밟은 노아와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그들이 

본 그 세상과 땅의 모습은 비옥(肥沃)한 곳이 아니었다. 황량하고 참담한 광야와 였을 것이다.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하고 힘겹게 만 보이는 현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일한 복음(福音)이 있었다. 하선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었다. 첫 조상 아담에게 내려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 17절)는 

그 말씀이 유일한 희망이며 그들이 붙잡고 매달려 살아가야 할 구원의 생명줄이었다. 


6) 지혜와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없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통해서 온다. 

노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것인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다. 약속하신 하나님과

의 철저한 관계를 강화시키는 일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첫 작업으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짐승과 새 중에서 가장 정결한 제물을 취하여 번제

(燔祭)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20절). 노아의 그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7) 생존한 인간의 마지막 불씨였던 노아와 그 가족을 보전하고 그의 씨앗들이 번성하며 창대

해지는 일에는 하나님 자신의 각오와 협력이 선행(先行)되어야 함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다짐

하고 나오신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개선될 여지가 없기에, 창조주이시

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자신이 먼저 인간을 상대하시는 방향을 바꾸기로 다짐하셨다. 


8) 어떤 변화를 택하셨나? 그 동안에는 키 큰 어른에게 아이가 자기를 받아달라고 두 손을 벌

리고 매달리는 유형을 견지하셨다면, 이제는 키 큰 어른이 아이의 편의를 위하여 스스로 아이 

앞에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서 아이로 하여금 편하게 어른을 마주보게 하는 방식으로, 하

나님께서 인간들을 상대하시려 한 것이다. 이런 하나님 자신의 입장 변화는 인간 편으로서는 

진정한 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긍휼과 자비로 상대하시는 어버이가 되셨기 때문이다. 


☞ 이 점은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지시하신 연유이기도 하다.(마6:9참조). 

☞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정성을 다한 헌신과 기도가 종종 얼마

나 큰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올 수도 있는 지로 생각하게 하는 대목도 된다. 


2. 복음서 / 눅17:11-19 /  은혜 받은 자가 반드시 넘어야만 할 산


본문 역시 성자(聖子)이신 예수께서 어떤 사람을 더욱 마음에 두시고 사랑하시며 복을 주시는 

지를 잘 소개한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던 나병환자 열 명 중

에서 유독 돌아와 엎드려 감사하는 사람 하나를 지목하면서, 그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

별한 보너스 선물을 안겨주시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1) 본문의 나병환자 치유 사건은 십자가의 대업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께서, 매우 미묘한 지역을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곳

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위치한 경계(境界)지역이었기 때문이다. 


2) 그곳의 한 마음에서 예수님은 일련의 다양한 나병환자들을 만나신다. 모두가 열 명이었는

데, 그들은 놀랍게도 양쪽 지역인 유대인과 이방인(사마리아)인 출신들로 그곳에서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건강하다면 절대 불가능한 모습이었으나, 나병이라는 무서운 질병 

앞에서 그들은 함께 사회로부터 격리된 처지에서 있었기에 동병상린(同病相燐)하며 함께 지내

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예수께서 멀리서나마 보였다. 예수를 알아본 그들은 일시에 외쳤

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절). 


3) 예수께서는 자신들을 불쌍히(긍휼히) 여겨달라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아니하셨다. 주님 

마음에는 이미,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후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동정하는 마음이 있으셨

기 때문이었다(창8:21참조). 그러기에 망설임 없이 응답하시며 지시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

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 이 말씀에는 이미 치료하시는 예수의 능력이 그들에게 전해졌음

을 뜻한다. 그러기에 그들이 믿음으로 그 말씀에 응답만하면, 그들은 반드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려고 가기 시작했다(레14:1-9 참조). 


4)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 모두가 일시에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14절,하). 하지만 차별은 

그들 은혜 받은 자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며 감사를 드린 것이다. 나머지 아홉 명은 모두 자

기 갈 길을 갔는데에도 말이다. 그들 아홉은 고쳐달라는 데에는 소리를 높혔으나, 고침 받고

서는 침묵했다. 하지만 이 한 사람만은 고침 받은 후에도 여전히 큰 소리로 찬송과 감사로 표

시한 것이다.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 그렇게 했다. 그러니 어찌 그 모습을 접한 

예수께서 이 두드러진 영적 차이에 대하여 외면하실 수 있겠는가! 


5) 주님은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른 다수의 유대인들의 행방을 물으시면서, 동시에 담대

히 받은 은혜에 소신 있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찾아와 감사하는 그에게 큰 축복을 선사하

셨다 -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救援)하였으니라’(18-19절). 이게 무슨 축복인가?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육체의 치유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취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은혜 받았다고 누구나 구원까지 받은 것은 아니다. 은혜 받은 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한

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에까지 나아가야 된다. 이 사건은 바로 그 점을 일깨운다. 


3. 서신서 / 골 3:12-17 / 결론 - 긍휼과 자비를 바탕 삼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


본문은 하나님에게서 선택을 받아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구체

적인 삶의 행동들이 무엇인지를 바울 사도를 통하여 제시된 내용이다. 이 내용들은 교회 공동

체에 덕(德)을 세우기 위하여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영적 목록들이기도 하다(12-14절).  


1) 제일 먼저 거론된 내용이 바로 긍휼(矜恤)과 자비(慈悲)의 마음이다(12절). 이는 앞에서 성

부와 성자의 품성과 일치한 내용들이다(창8:21,요17:13참조). 이 마음을 품으면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기에, 이웃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게 된다. 나머지도 보자. 겸손-온유-오래 참음(인내

)-서로 용납-피차 용서-그리고 사랑이다. 이 사랑은 아가폐로서, 교회를 하나로 묶어준다. 


2) 감사(感謝)하는 삶이다. 노아의 충성과 사마리아인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사는 일이다

(15-17절).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에, 반드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

다(15절). 그리고 주님의 풍성한 말씀 안에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와 노래를 부르며 감

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16절). 결국, 우리는 무슨 말이든 다 주 예수

의 이름으로 하고, 주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17절). 감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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