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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후(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송년주일

관리자 2020-12-23 (수) 18:52 3년전 733  

본문) 눅 2:22-35, 출 1:15~2:10, 딤후 1:3-14

 

성탄 후 첫째 주일이다. 2020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송년주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란 미증유의 바이러스 공격으로 온 세계인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몸과 마음이 많이 위축되어 살아왔던 한 해였다. 사망자도 많이 나왔고, 고통당하는 이들도 많았다. 서민들의 경제적 피해와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하나님의 은혜와 돌봄을 구한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라도 송년할 수 있음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삶이 고단하고 힘 겨울수록, 우리는 원망이나 비난과 같은 부정적 영역을 피하고, 감사와 격려와 희망과 같은 긍정적 영역을 우선 취하며 사는 삶을 택하여야 지혜롭다. 원래 사람은 믿는 대로 되는 존재이다. 사도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 물론 부정도 부정을 낳는다. 우리 성도들은 늘 긍정의 앞자리에 굳게 서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어디서 찾는가? 우리는 대체로 돈이나 명예나 지위 등의 세속적 부요에서 복을 찾으려한다. 물론 아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근원적으로 축복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내 마음의 태도에 있다. 어떤 일에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주어진 문제나 과제를 극복해가려는 의지(意志)를 소유하고 사는 일이다. 거기에다 인내심과 분별력과 헌신성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 큰 복을 받은 자이다!

 

마음의 태도가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도 환영 받게 되면서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인물’이 된다. 그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자격이 있기에 복된 것이다(창12:1-2). 이런 사람은 당연히 사람도 따르고 물질도 따라온다. 마침 우리는 금주에 송구영신(送舊迎新)하면서, 새해에 받을 복을 하나님께 구할 것이다. 어떤 복을 구하시려는가? 부디 ‘복 받을 마음과 태도를 갖춘 인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오늘 주시는 세 본문 말씀들은 마침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난 성탄 때 받았던, 요1:13에 소개된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에 해당되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복음서는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뜻밖에 영접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시므온을 그 대상으로 올렸다. 출애굽기는 아기 모세를 바로의 살해지령을 거부하고 살려내는 히브리 산파 두 명-십브라와 부아와 함께, 아기 모세를 살려내는 누이 미리암과 바로의 딸과 엄마인 요게벳을 올렸다. 서신서는 심약한 목회자 니고데모를 돕는 이들인 사도 바울과 그의 가족들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보내신 이들을 위해 큰일을 감당한 존재들이었다. , 

 

이들 모두는 우리처럼 지극히 평범한 신앙인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 즉 카이로스가 임하였을 때, 주님을 만나거나 모세를 살리거나 주의 종들을 돕는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행보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삶도 되돌아보고, 또 미래의 삶의 여정에도 대비하는 귀한 시간을 갖도록 하자. 주의 은혜가 경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만하시길 축원한다. 

 

시므온 / 주의 구원을 보게 된 영광을 누린 노인

본문은 교회사에서 ‘시므온의 고별송’(Nunc Dimittis)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모든 유대의 경건한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므온 역시 평생을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아왔던 이였다. 그는 예루살렘 사람으로서, 의롭고 경건한 자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고대하며 살았던 노인이었는데-, 그런 그 위(upon him)에 성령이 계셨다(25절). 

 

1) 그런 그에게 성령이 감동하시며 말씀하셨다. 실로 놀라운 통고(通告)였다. ‘너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26절). 구체적인 때와 방식은 언급이 없었으나, 시므온은 그런 성령의 고지에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그것은 조상 적부터 고대하며 기도해 온 오실 메시아를 자기 생전에 친히 뵐 것이라는 통보였기에-, 이 얼마나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날따라 성령은 그를 예루살렘 성전에 가게 하셨다(27.상). 성취의 시간 때문이었다. 


2) 거기에서 그는 부모 품에 안겨서 성전에 들어온 아기 예수를 뵙게 된다. 성령이 이 영혼이 열려 있던 시므온을 아기 예수의 성전 첫 공식 방문의 영접자도 올려 세우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열렬히 환영하고 찬양하며 영접하게 하였다. 아기 예수로서는 당신의 아버지 집의 첫 방문이었지만, 이런 시므온과 같은 노인의 영접이 없었다면, 세상 아이들처럼 관례 예식만 치르고 떠날 수 있는 순간이었다.(성경은 또 다른 노파 안나의 영접도 증언한다/36-38절). 

 

☞ 관록의 신앙인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신앙의 원로들인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원로들이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보지 못하는 식견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 모범과 권면을 할 수 있는 계층이 갖추어진 교회는 복 있는 교회들이다-! 

 

3) 아기 예수의 성전 방문은 주의 율법에 쓴 바, 초태생 남자마다 탄생 후 8일째에 주의 거룩한 자로 성별하는 예전을 헌신례로 할례와 함께 치루기 위함이었다(레12:1-8,민18:15-16참조). 예물은 산비들기(혹 집비들기 둘) 한 쌍을 드렸다(22-23절). 이런 모습은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이가 아니라, 온전케 하러 오신 이임을 처음부터 밝히신 일이었다(마5:17). 

 

4)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므온이 올린 감동적인 찬양은 이렇다 -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군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29-32절,사40:5,52:19).  

 

5) 그들 부모에게 축복을 건넨 시므온은 특히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의 미래에 관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예언적 발언을 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34-35절). 부모는 그의 말들을 놀랍게 여겼다(33절)

 

일련의 여성들 / 모세를 역사의 무대로 끌어 건져 준 헌신자들

본문 출애굽기의 증언을 보면, 모세처럼 여성들의 집중적인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세상에 등장한 인물이 없는 듯하다. 남자로서 태어나 도저히 살 수 없었던 당시의 엄혹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15-17절 참조), 모세만큼 여성들의 압도적인 돌봄과 지킴과 보호망의 혜택을 받은 이가 없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다. 사실 그런 손길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주목할 여인들은 누구였는가? 

① 십브라와 부아 – 이들은 해산 시에, ‘히브리 사내아이는 죽여라’라는 바로의 밀명을 거역하면서, 남아(男兒)들을 살려낸 여인들이었다(15절). 결정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즉 세상의 왕의 명령보다도 그 새 생명을 세상에 보내신 창조주 하나님에 손길을 거역하는 일이 두려워 그 생명들을 못죽인 것이다. 

☞ 후에 그녀들은 바로의 심문에 대하여, 다른 지혜로운 이유를 대면서 위기를 면하였지만(18-19절),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는 복을 내려주셨다(21절). 그런 환경 속에서 모세가 세상에 온 것이다. 

 

② 엄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 –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신생아 중에 남아들은 모두 태어나는 즉시, 나일강에 던져야만 했다(22절). 이런 중에 모세를 생산한 요게벳은 바로의 명령에 저항하며 세 달을 버텼다. 그 후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아기를 담아 나일 강에 띄워 흘려보냈다(갈대-파피루스로서, 노아의 방주 자료로 알려진 것이다/창6:14참조). 그 상자는 어디로 흘러들었나?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던 그 파피루스 배가 지금 이스라엘의 운명을 이끌게 될 모세를 살리기 위하여,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찾아 향하여 들어간 것이다.

 

③ 공주 핫셉슈트(Hatshepsut) - 그곳은 바로의 무남독녀로 알려진 핫셉슈트가 목욕하고 쉬던 구별된 공간이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흘러들어갔다. 아기 모세가 천하의 바로 딸과 극적인 만남을 갖는 순간이었다. 운명이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울고 있는 아기가 있었다. 비록 히브리인의 아기임을 알았으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5-6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망설이던 순간에 뜻밖의 답(答)도 제공되었다. 

 

그때 절호의 순간을 파고든 이가 누이 미리암이었다. 바로의 딸에게 이런 말을 건내면서 말이다.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乳母)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리이까’(7절). 그 말만 들으면, 공주는 너무도 쉽게 한 아이를 구하는 선행을 할 수 있고 양모까지 될 수 있는 놀라운 대안(代案)이었다. 

공주는 바로 그 제의를 허락하였고, 아기는 위기를 벗어나 생명을 안전히 보장받게 된다. 그 바람에 모세는 친모를 유모로 삼아, 고난 받는 히브리인 자녀이면서 동시에 억압하는 애굽 왕궁의 자식으로도 성장하게 되는 기이한 인물이 된다. 

 

☞ 이름도 모세라 했는데, 이는 애굽어로 모(Mo-물)와 세(uses-건짐을 받다)라는 합성어로서, ‘물에서 건짐을 받은 자’란 의미의 이름이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나중에 히브리어로는 모세가 ‘건져내는 자’가 되었다. 결국 모세는 처음에 ‘물에서 끌려 나온 자’였다가, 나중에는 그의 민족과 역사를 ‘끌고 나간 자’가 된 것이다. 진정으로 모세를 돕고 살리는 데에 참여한 여인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였다. 그런 영성을 가진 이들이 제2, 제3의 모세를 살려내고 양육해내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일꾼들이 될 것이다. 

 

☞ 모두가 모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모세와 같은 인물을 탄생하게 하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게 누군가? 세상의 권세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생명을 살려내려는 강한 영성을 보유한 이들이라면 이런 모세 구하기와 생산해내기의 또 다른 주역들이 되리라고 믿는다. 

 

디모데 도우미들 / 주의 종 목회자를 다시 세우는 사람들

본문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던 디모데를 진심으로 돕는 이들의 따뜻한 모습들이 소개된 곳이다. 젊은 목회자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로서, 에베소 교회를 목양(牧羊)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적잖은 시련들로 고전을 하고 있었다. 그 시련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괴롭혔고, 젊어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오는 미숙과 소심함도 문제가 되었다. 신경이 예민하여 소화불량으로 위통을 겪기도 하였다(딤전5:23). 게다가 그의 믿음의 아버지요 후견자인 사도 바울마저 투옥 되어 있었고, 흩어진 주변의 교회들이 로마정권의 옭죄어 오는 박해의 압박에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이렇듯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들이 그의 초년 목회에 큰 장애들이었다. 바울의 목회서신인 디모데전후서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1) 디모데를 향한 사도 바울의 접근은 그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것들에 대한 고취와 격려였다. 없고 부족한 것을 지적하며 야단치는 어른이 아니라, 그만이 보유하고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기억하며 그것에 물을 주어서, 그것들이 새 힘을 받게 하는 선배의 모습이었다. 그게 무엇이었나?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① 그가 3대에 걸친 신앙 가계의 후손임을 일깨운다. 조상 적부터 주님을 섬겨온 신앙인이었는데, 그것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이어졌고, 디모데는 그런 신앙의 열매였음을 일깨운 것이다(3,5절). 비록 아버지가 헬라인이었으나(행16:1-3), 디모데는 그의 배경에 조상들의 뜨거운 기도의 힘이 있었기에, 교회일꾼이 되기까지 한 것임을 상기시킨 것이다.

 

② 디모데가 양질의 신앙을 보유하고 있음을 축복하고 격려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확인해 주었다(3,5절). 그런 거짓을 모르는 깨끗함은 목회자에게서는 아주 높은 양질(良質)의 품격이다. 목회자도 목회자 나름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기회주의적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 보다는 인간을 더 신경 쓰는 목회를 한다. 하지만 디모데는 그런 류(類)의 목회자가 아니었다. 정직했다! 

 

③ 그가 성직 안수 시에 받았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소명을 재무장시켰다(6-7절). 그때 주셨던 하나님이 안겨주신 마음은 결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이었다. 목회자는 인간이나 상황의 위력에 쫄면 안 된다. 그보다 성령이 주신 능력을 받고 사랑으로 대응하며 엄격한 자기 절제 행위로 사명을 감당하여야함을 일깨워 주었다. 결국 목회자의 밑자리는–바울 당신처럼-‘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일’임을 일깨웠다(롬1:16). 

 

④ 부르심의 소명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그리스도에 의한 것임을 재확인 시켰다. 주님은 성육을 통하여 사망도 폐하시고 복음으로 영생에 이를 것을 드러내셨음을 상기시켰다(9-10절). 목회자는 당연히 고난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며, 주의 말씀으로 거짓 교사들의 잘못도 분별해내며, 주의 믿음과 사랑으로 받은 말씀을 지켜야함을 강조했다(12-13절).  

☞ 바울은 마치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며 돌보고 양육하셨듯이,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를 돌보고 후원하는 일에 기도와 마음을 집중했다. 주의 종이나 일꾼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많은 기도와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이들이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 목회자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어야할 이유이다. 건강한 목자는 뭇 생명들과 교회를 건강하게 살려내지 아니한가!

 

결론이다

한해를 보낸다. 부디 활기차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세말(歲末)이기를 축원한다. 주님의 은혜로 가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위하여 내가 쓰임 받아 살아온 삶이라면, 그보다 더 감사할 것이 무언가!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쓰임 받고 필요한 존재로 살고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나님 사랑과 생명 사랑에 더 매진하는 새해가 되도록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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