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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탄 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0-12-22 (화) 12:28 3년전 588  

분문) 요 1:6-18, 사 11:1-9, 히 1:1-12

 

주님의 성탄일이다. 금년 2020의 성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더욱 앞뒤가 꽉 막힌 느낌 속에서 맞이한 성탄절이 되었다. 코로나19 판데믹의 기승 때문이다. 그래도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코로나 백신들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곳곳에서 접종을 하게 되었기에 희망을 갖지만, 그것 역시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서, 지금은 사람 접촉을 삼가며 자가 예방에 힘쓰는 일이 최상으로 보인다. 

 

이런 중에 우리 대부분은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성탄예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강림하신 그리스도 예수께 더욱 몸과 마음을 집중해서 예배해야 하겠다. 본래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날’이잖은가-! 우리는 믿는다. 이 공포의 판데믹19도 전능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분의 뜻과 섭리가 온 세계 안에 충분히 전달된 후에는, 코로나19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리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전능자 하나님의 뜻이 널리 펼쳐지도록 신령과 겸손으로 그 분께 엎드려야 하겠다. 이제 왜 우리는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오신 그리스도께 경배와 영광을 돌려야할 지를 말씀을 통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오늘부터 우리는 성탄절기 12일간을 맞는다. 성자의 계절이 이 성탄절로부터 시작되면서, 부활절기까지 이어진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배우며 그의 백성으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더욱 그는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존재, 삶, 행동, 생애, 교훈 등의 모든 전체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 중에서 첫 절기인 성탄절은 오신 하나님인 성자 자체의 모든 것을 전하는 총론적인 부분이다. 당연히 성자의 본래의 모습을 배우게 된다.  

 

부디 성탄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배워서, 그의 나머지 절기들인, 주현절,사순절,부활절 등에서 만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삶의 발자취를 온전히 따라가자. 성자의 절기에 관한 증언들이기에, 오늘 성탄일부터는 복음서를 중심하여 오신 예수님에 관련된 말씀으로 증언의 문을 열고, 그 근거와 배경으로서의 구약의 말씀을 살피며, 그 메시아 주님이 초대교회 현장에서는 어떤 분으로 증언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는가는 서신서를 통하여 확인해 보려고 한다. 

 

복음서 / 그의 탄생 자체가 영광이요 은혜인 까닭

요한복음의 예수 탄생 증언은 어느 종교의 신들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독특성을 가진다. 또한 다른 복음서들이 예수의 역사를 그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하거나 세례요한의 등장 때부터 시작한 것에 비하여, 요한복음은 예수의 기원을 천지창조 이전인 영원(永遠)에서부터, 곧 하나님의 가장 깊은 본질 자체에 근거를 둔 존재부터 증언하기 때문이다(1:1-2). 

 

1) 무엇보다도 요한복음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창조주이셨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그로인해 창조된 것임을 선언한다. 완전한 창조주 예수를 말한 것이다(1:1-3). 그러기에 오신 메시아 예수는 세상에 대하여 원초적(原初的) 소유권이 있음을 강조하면서(10절), 원주인이신 메시아를 맞이한 그의 세상으로서는 그의 오심이 아주 오랫동안의 어둠과 혼란과 망가진 저주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빛이고 생명이며 은혜임을 말한다(4절), 그뿐 아니다. 자신에게 복낙원을 안겨 줄 원(原)주인을 맞이한 순간이기에 무한한 영광(榮光)이며(14절), ‘은혜 중의 은혜’가 되는 일임을 역설한다(16절). 

 

2) 하지만 세상은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강림을 받아들일 만한 여건이 갖추어 지지 못했다. 오실 메시야 역시 그런 세상의 체질과는 전혀 달라서, 피차 접촉하기에도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배려하여 하나님은 아들의 강림을 위한 선발대로 세례자 요한을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베풀면서 회개와 변화된 삶을 일깨우며 밝아오는 동녘을 대비하게 하셨다. 본문은 세례 요한이 예수의 선발대로서, 오실 메시아에 관련해 증언한 내용들이다. 

 

☞ ‘나는 빛에 대하여 증언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하려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빛은 아니다. 나는 다만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일 뿐이다(7-8절). 나는 6개월 정도로 이 분에 앞서서 왔으나 그래도 ’그가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15/표준새번역)

☞ 요한은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원래 선재(先在)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서 증언한 것이었다.

 

3) 복음서 저자는 오신 메시아 예수님에 대하여 매우 놀라운 증언을 계속한다. 

① 이 메시아는 이미 자기 땅에 오셨음을 밝힌다. 자기가 일찍이 창조하신 그 땅에 친히 오셨다는 것이다. 오셔서 이미 사람들 속에 계시고, 사람들에게 참 빛(true Ligjt)을 발산하고 계심을 밝혔다(9-11절). 

☞ 오셔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계심을 전했다!

 

② 특히 이 메시야는 성령으로 잉태하여(마1:20,눅1:35) 인간의 옷을 입고오신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곧 성육(成肉)하신 하나님이심을 선언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인간이면서도 우리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참 아들(독생자)만이 보유하신 그 영광의 빛을 발산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은혜(恩惠)와 진리(眞理)가 충만함을 증언했다(14절). 그러기에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로부터 끊임없이 샘솟는 은혜를 받게 됨도 강조한다(16절).  

 

☞ 이런 증언은 우리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론(神論)의 핵심 근거가 된다. 그러면서 이런 은혜와 진리를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 발산(發散)하고 제공(提供)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기존의 율법을 전한 모세와는 아주 다르게 그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 것이 된다(17절). 

 

☞ 신(神)이 인간(육신)이 되어 세상에 내려와서,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구원을 이루실 수 있다는 사상은 당시의 세계 종교사상의 영역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어서, 매우 거리낌과 비웃음이 된 일이었다. 모든 종교에서의 신과 인간은 도저히 함께 하지 못하는 거리가 엄존하지 않은가! 하지만, 기독교회는 이 성육신(화육신) 교리를 전체 기독교의 구원 신학의 핵심으로 믿고 전심을 다해 증언해오고 있다-! ‘임마누엘 신앙’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 보이는 하나님, 만지는 하나님, 우리의 애환과 부족함에 공감하시면서 대신 멍에를 지어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그 인간의 최대 멍에인 죄악을 처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저 십자가에다 죄 값으로 대신하여 죽게 하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통하여 그의 은혜와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을 복음서 저자는 집중하며 소개한다. 그렇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참 모습을 계시하셨다.(18절,20:28,요일5:20참조) 

 

☞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14절의 선언을 가슴에 담고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 성육신 선포는 2세기에 번성했던 기독교 최대의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의 육악영선(肉惡靈善)론을 극복하게 한 말씀도 되었다. 그들은 ‘영만 구원받으면, 결국 썩어질 육체는 어쨌든 괜찮다’라는 완전 헬라계 이원론으로 교회를 어지럽혔는데-, 이 성육신의 일원론 신학으로 그 교묘한 함정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담을 그릇도 건강해야 마땅하잖은가! 

 

☞ 육신은 허무하고 부패하기 쉬운 연약한 질그릇이다(고후4:7참조). 그러기에 더욱 조심해야한다. 돌봄이 필요하고 가치가 중요하며 그 담긴 내용이 더더욱 중요하다. 육신이 취할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무엇인가? 영원자의 영광과 그 생명과 그 말씀을 담고 살면 안전이 보장된다. 사실, 차원이 다른 거룩과 속물(俗物)이 하나 되기가 불가했다. 하지만 영광과 은혜의 주께서 인간되어 오시고 인간 안에 사시면서부터, 그것이 가능해졌다. 바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4) 하지만 메시아의 그러한 은혜로운 강림에도 당시의 삶의 현장은 너무 막혀있었다. 주님이 빛을 비추고 구원의 싸인(sign)들을 계속 발산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반응들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고, 영접(迎接)하지도 아니하였다(10-11절). 

 

☞ 그럼에도 이 세상은 제 주인의 거룩한 움직임과 성령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지각이 변동되기 시작했고, 그의 말씀을 듣고 좇으며 복종하는 무리들에 생겨나며, 세상의 질서도 재편되면서 의와 진리와 사랑을 삶의 최상위 가치로 간주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등장하였다. 비록 제일 아담의 혈통이나 육정으로는 그런 변화가 불가능한 일들인데도, 제이 아담인 예수에게서 품어나는 은혜와 진리를 온 몸으로 받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 절망적인 세상도 점차 변화와 구원의 새 옷을 입기 시작했다(12-13절).

 

예언서 / 오실 메시아가 여실 세상 – 공의(公義)와 평화(平和)의 세계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펼치실 세상은 어떤 내용의 세상일까? 그 점에서 본 예언서는 비록 700여전 전부터 예언된 내용이었으나, 결국은 예수로 인하여 성취될 세상을 미리 증언하였다. 

 

당시의 유다 왕국은 신흥 제국인 앗수르의 발흥과 남부의 제국 애굽과 지중해변의 블레셋과의 역학관계에서 그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고 우왕좌왕하던 형국이었다. 그 시대에 선지자로 부름 받은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오실 메시야로 인하여 펼쳐질 세상은 실로, 경이롭고 황홀하며 빼어난 새 세상이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열어주실 그 세상을 바라보며, 강대국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역설할 수 있었다. 주요 내용을 보자.

 

1) 오실 메시아의 계보가 예고되고 있었다(1절). 놀랍게도 다윗의 줄기(후손)이 아니라, 그 아버지인 이새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 예고되었다. 이는 다윗 가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의 표시이지만, 그렇다고 그 집안 계보를 벗어난 것은 아님을 그런 식으로 표시하였다. 

 

2) 어떤 분으로 오실 것인가?(2절). 여호와의 영(성령)이 그의 위에 임하셔서 오실 분임을 예고하신 내용이다. 성부 하나님이 보내시고, 성령의 임재와 동행으로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이심을 예고하신 것이다. 이 부분은 바로 요1:14의 내용과 부합된 것으로서, 사11:2의 예언이 요1:14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강림하심으로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은 어떤 영인가? 그 특성도 명기(明記)하였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counsel)과 재능의 영이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었다. 요한이 증언한 ‘그의 영광, 특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은 모두 이 함께 하신 성령으로 예수께서 사역한 결과물로 보인다.

 

3) 그의 통치의 내용도 예고되었다(3-5절). 여호와 공경을 기본하되, 눈에 보이고 귀로 듣는대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대신 오직 의와 정직을 바탕으로 그의 입의 막대기와 입술의 기운으로 온 세상을 차별 없이 판단하고 심판하실 것이다. 공의와 자비의 띠는 풀지 않으실 것이다. 

 

4) 그의 통치의 성격과 그 결과로 인하여 펼쳐질 세상도 예고하였다(6-8절). 곧 평화(平和)의 세상이다. 그 바람에 세상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들 사이에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이리가 양과, 표범이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어울리고, 암소와 곰과 함께 먹고, 그 새끼들도 함께 놀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고, 유아들이 독사와도 장난하며 어울리는 평화의 놀라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일반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세상은 차별과 억압과 독점과 배제와 다툼이 난무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해 진 곳이라면, 그런 세상은 가능해진다(9절). 주의 거룩함이 드높여지는 곳에는 해 됨이나 상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일까? 바로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기 위하여 모인 교회(敎會) 공동체이다. 교회는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를 모시고, 그의 꿈인 모든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사랑하며 살기 위해 모여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성탄에는 그런 주의 뜻을 되새기는 우리 모두가 되자. 

 

서신서 / 예수 외의 더 이상의 말씀은 없다

초대교회 안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배교(背敎)가 심심찮았다. 오직 예수만 구세주이시다는 믿음을 보유한 이방인 그리스도인과는 달리, 유대계는 예수를 상대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구약 율법과 예언의 영향이 컸다. 그 점에서 히브리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그 어떤 선지자와 모세나 그들이 흠모하던 그 어떤 하늘의 천사들보다도 크신 분임을 강조했다. 아니, 오직 예수만이 온전한 계시자이며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분임을 강변했다. 

1) 하나님은 옛적에는 그런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제 마지막인 말세에서는 오직 아들을 통하여서만 자신에게 말씀하셨음을 힘써 강조한다(1-2절). 이 이유는 오신 예수가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면. 다 이해가 될 사안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인 예수는 누구인가? 히브리 기자는 여섯 가지로 이 연유를 증언했다. 

 

2) 만유의 상속과 관리자로 세우심을 받은 분이기 때문이다(2절,중). 그로 인해 세상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이다(2절,하,요1:10).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기 때문이다(3절,상).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죄를 씻어내는 일도 하시며,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이다(3절.하). 그는 그 어떤 천사보다 뛰어나시고 더욱 아름다운 이름인 ‘하나님의 아들’이란 이름을 얻으신 분이기 때문이다(5,8-9절).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는 달리 그의 연대는 다함이 없이 영원무궁하기 때문이다(11-12절). 

 

결론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이외의 다른 대상을 찾아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안 된다. 성탄하신 주님만이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말씀이다. 이 구세주 예수께 몸과 마음을 집중해야만 우리가 살게 된다. 그에게서 나오는 은혜와 진리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동시에 그가 꿈꾸던 세상,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고 평화와 평등의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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