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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0-08-11 (화) 21:16 3년전 810  

본문) 빌 1:3~11, 출 40:17-38, 마 18:15-20

 

오늘은 강림 후 열 한 번째 주일이다. 그 동안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질서(秩序)를 향하는 성령의 계속적인 이끄심이 있었다. 확실히 성령은 혼란과 무질서를 잠재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 세상과 인간의 삶 속에 펼치시기 위하여 일하는 영이시다(창1:2). 따라서 이 성령의 선택 받은 백성들은 새 하늘 새 땅을 열어가기 위하여 의의 행진을 계속하게 된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과 문화를 세워주는 좋은 법이 613가지로 구성된 율법(律法)안에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율법이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법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와 환경의 차이들도 많고, 새 시대와 새 상황마다 대처해야할 법들과 질서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즉 그런 것들까지 성경이 다 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미완(未完)의 몫을 우리 인간에게 바르게 채워줄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제2 보혜사로 오신 성령(聖靈)이시다. 이 성령은 율법의 보완은 물론, 제일 보혜사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넘기신 미완(未完)의 몫까지도 해결하시는 특별한 미션을 안고 오신 분이시다(요14:12-17,26,16:7-14,참조). 그렇다. 성령 안에는 율법과 거기에 담지 못한 더 무한한 삶의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답(答)들이 있다! 그런 성령의 존재와 사역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능성과 온전성과 영원함을 말하게도 된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세 본문에서는 어디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전하는가? 바로 우리 교회공동체의 보전과 운영에 필요한 질서와 품격(品格)을 세우시는 성령을 소개한다. 교회는 본래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머리이며 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의 지체들인 교우들의 거룩한 모임체이기도 하다. 두세 사람만 모여도 작동(作動)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마20:20참조). 

 

그러기에 모든 교회에는 교회로서의 품격과 골격, 필요한 법과 질서가 있게 된다. 총회의 헌법과 제반 법규, 노회와 지교회의 정관과 내규 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즉 교회는 말씀과 성령이라는 소프트웨어(내용)로 존재하지만(요4:23-24), 법과 질서라는 하드웨어(골격)도 갖추어야 된다. 이 둘은 마치 몸을 살리는 피와 뼈와 같은 기능들로서, 교회의 생명을 존속하게 한다. 이 둘이 건강하게 공존해야, 주의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며 하늘 뜻을 펼친다. 

 

요즈음은 많은 이들이 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안에서 무너져 내려서 그럴까? 그것부터 점검하자.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가 섬기는 교회는 어떤가? 나의 교회관과 목회의 행태는 건강한가? 우리가 다시 치유 받아야할 부분은 없는가? 특히 내 믿음의 주도권 측면에서도 묵상해보자. 나는 제대로 된 그 분의 종(從)의 윤리를 좇아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도 인위적(人爲的)이고 편의적인 생활에 빠져서, 고전(苦戰)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내 (교회 목회와) 섬김의 주도권이 진정 하나님에게 있는가, 아니면 그의 종된 나에게 있는가? 그 점도 함께 고려하면서, 나의 신앙(목회)을 점검해 보자. 그것은 교회다운 교회란 본질상 신정(神政)체제가 기본으로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확실히 세워진 교회는 건강하다. 하지만 인간 주장이 강하면 교회는 허약하다. 이번 주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바로 우리 목회와 교회 주도권의 위치를 점검하고 계신다. 

 

오늘의 세 본문 구도를 보자. 구약의 회막(會幕-성막) 세우기는 오늘의 교회 공동체의 모범에 관하여 말한다. 교회가 인간의 입장이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세워질 때,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능력이 잘 나타남을 말한다. 그 면에서 서신서에 나타난 빌립보 교회는 구약의 모범 사례에 가장 부합된 은사와 믿음을 갖춘 교회 공동체이다. 반면에 복음서의 경우는 공동체의 문제를 드러낸다. 아울러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인지도 지침을 제공하면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지침에 맞춰 운영되기를 바라심도 전하신다. 

 

구약을 보자

본문은 출애굽 후 둘째 해의 첫째 달 초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거처(居處)를 인간 세상 안에도 마련하고자 하셨다. 특히 출애굽 후 가나안으로 가는 거친 광야 생활에 들어선 당신의 백성들을 직접 돌보고자 하셨다. 그래서 여호와는 당신의 종인 모세를 앞세워 성막(聖幕) 곧 회막(會幕)을 세워서 자신의 지상의 거처를 마련하신다(2,17절). 이 성막 건립으로 이스라엘은 확고한 신정(神政)체제 하에 들면서, 40년 여정의 광야교회 체제에 접어들게 된다(행7:38참조). 본문은 그 건립 과정과 그 주요한 의미를 상세히 전한다. 

 

1)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종과 그의 백성들 모두는 하나님의 친 정치(다스리심)에 따라 행하는 무리임을 강조한다. 곧 이스라엘의 회막이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치(政治)에 따라서, 실천하기 위하여 모인 집단임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실천될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 하지만 그런 기초적인 믿음과 순종의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면, 결코 그런 귀한 은혜를 기대할 수가 없다. 

 

2) 본문에는 가장 ‘후렴’처럼 반복되어 소개된 내용이 있다. 바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였다. 무려 7번이나 계속 강조된 표현이었다(19,21,23,25,27,29,32절). 그 회막은 전적으로, 인간의 솜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만 제작된 것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 회막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였다. 인간들은 그곳이 하나님께서 거처(居處)삼기에 온전하도록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 참고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막을 세우면서 수행했던 업무들을 살펴본다.  

① 받침들을 놓고, 그 널빤지를 세우고 그 띠를 띠우며 그 기둥들을 세우고, 그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18-19절). 

②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그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려 그 증거궤를 가리었다(20-21절). 

③ 성막 북쪽으로 휘장 밖에 상을 놓고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였다(22-23절). 

④ 성막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하고 등잔대에 불을 켜 두었다(24-25절). 

⑤ 금 향단을 회막 안 휘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살랐다(26-27절). 

⑥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게를 그 위에 드렸다(29절). 

⑦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는다.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다(29-32절). 

 

3) 성막과 제단 주위의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며, 모세가 역사를 마치자(33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셨다(34-38절). 여호와께서 충만한 영광(榮光)중에 그곳에 임재(臨齋)하신 것이다. 두 가지로 보여 주셨는데, 하나는 구름 기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불기둥이었다. 그 바람에 회막은 그의 영광(榮光)으로 가득했다. 모세는 물론, 그 어떤 인간도 그 여호와의 처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34-35절).  

 

4)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신비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면서, 광야가 주는 낮의 열사(熱砂)의 공격과 밤중의 냉한(冷寒)이 협공을 견디어내면서, 그들의 험난한 행진을 이끄시기 시작하셨다(사4:5-6). 또한 그들이 가야할 곳과 쉴 곳도 친히 인도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들이 움직이는 대로 백성들도 함께 움직였다.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정치 하(下)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임재하시는 하나님,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은 믿고 좇는 백성이 된 것이다. 역사상 ’가장 선한 목자’의 돌봄을 그들의 40년 광야 교회생활에서 맛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게 그들을 ‘자식’이라 부른 이유이다(사1:2). 

 

☞ 이 모습은 무엇을 보여주신 장면일까? 불과 구름기둥 속에서 탄생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 값으로 태어난 교회 공동체는 모두가 그 탄생과 소속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명심하고, 그의 ‘자식(子息)답게’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는 일을 제일 의(義)로 삼고 살아야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서신서를 보자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에 나오는 빌립보 교회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회막 공동체의 특성과 매우 닮은 그리스도 교회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아름다운 신앙에 대한 생생한 모습은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보낸 옥중(獄中)서신의 내용 속에 가득히 담겨 있다. 

 

1)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 땅에 전도하여 세운 최초의 교회였다(행16:11-15참조). 그의 2차 전도여행 중에(A.D49-50)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얻어낸 최초의 전도 열매였다. 그곳에서 바울은 루디아와 감옥을 지키는 간수 가족 등을 비롯하여 소수의 주의 백성을 얻어냈으나, 그 현장 종교세력의 강력한 반발 등으로 오래 있지 못하고 결국 떠나게 된 곳이었다. 

 

하지만 떠나간 사도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기도와 후원의 손길은 뜨거웠다(5절). 타 지역에서 투옥된 바울을 기억하며 재정을 후원하고, 에바브라디도를 보내어 바울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바울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교회였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바울은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 형편을 알리고 후원에 감사하며, 그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들은 진정 고난 중에서 함께 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함을 보여 준 동지들이었다(7절). 그들의 이 모습은 고난 중에서 예수와 함께 하였던 제자들과도 흡사했다(눅22:28참조). 

 

2) 하나님을 증인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 빌립보 교우들을 위해 올린 사도 바울의 기도제목들을 보자. 그들이 받을 축복들이 가득 담겨 있다(8-11절) :

①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총명(depth of insight)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하소서(9절).

②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分別)하며 신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게 하소서(10절)

☞ 사실, 그들에게는 유대의 할례 파 등의 거짓 교사들의 유혹이 계속 있었다(빌3장 참조)

③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소서(11절).  

☞ 바울은 후에 2번에 걸쳐 그들을 찾기도 했다(행20:1,20:2-6참조).

 

☞ 교회의 이런 모습은 그들이 성령의 증인인 사도 바울과 흔들림 없이 일치(一致)의 길을 걷고 있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동시에 사도의 기도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영적 자원들은 모세의 회막 공동체와 지상의 교회들이 그 정체성을 온전히 보전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자원들이기도 하다. 그러면 혹 교회의 이런 질서가 도전받아 큰 위기를 맞이하면 어떠해야 하나? 

 

복음서를 보자

비록 복음서 안에 있기는 하지만, 본문은 후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문제와 그 대책을 담았다. 곧 교회에 등장한 범죄자의 처리 문제이다. 그 범죄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묵과하고 지낼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누룩의 번짐도 막아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교회의 신정 질서를 보전하고,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때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복 빌었던 그 영적인 풍성한 자원들이 총동원되어 빛을 발해야할 시점이었다. 그게 무엇인가?

 

☞ 교회가 범죄자를 상대할 때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다. 바로 끝없이 용서할 자세를 가지고 임하는 일이다(마15:21-35, 5:24, 6:12참조). 문제접근은 그 후에 나가야한다.

 

1) 먼저 일대 일 접촉을 한다. 그 당사자와만 상대하고 권고하라(15절). 들으면 그를 얻는다. 

2) 고집 부리고 듣지 않으면, 증인이 될 만한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그를 접촉한다(16절). 확증을 잡아 부정하지 못하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3) 더 고집하여 비상한 경우가 발생하면, 교회에 보고하고, 교회 차원에서 말하게 한다(17절).  

4) 그런데도 끝내 거부하면, 교회는 그를 이방인과 세리(죄인)처럼 간주하여 축출(逐出)한다. 

 

5) 주님은 교회가 취한 그런 질서에 대하여 승인(承認)하신다. 그런 처리 행위에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보유하기를 원하던, 사랑과 지식과 통찰력과 보다 선한 것에 대한 분별력과 신실함이 녹여 들어 있던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런 조치에는 인위적인 정죄나 부작용에 따른 영적 후유증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빌1:9-10절). 오히려 그런 징벌의 절치를 통하여, 교우들로 하여금 교회의 거룩한 권위를 존중하며 복종함을 배우게 해주기 때문이다. 

 

6)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당신의 말씀의 따라 행동하고 처리하는 교회의 모든 행위를 승인하셨다(19절, 마16:19절 참조).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하나님이 뜻과 마음을 분별하고 소유하기 위하여, 사전에 함께 모여서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일이다(19-20절). 개별적 행동보다는 함께하는 행동의 가치를 더 귀하게 보신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에서 ‘두 사람이 함께 앉아서 율법을 연구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전통적 교훈과도 일치한 입장이었다. 

 

결론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일을 제일의 의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오시고,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성숙해지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을 향한 사랑도 폭넓은 지식과 깊은 통찰력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발흥하는 주변의 어둠의 권세들에 대처하기 위하여서도, 선악에 대한 분별력을 키우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대비해야겠다. 

건강하고 힘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일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며 그의 의(義)의 실현을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겸손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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