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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0-03-11 (수) 12:19 4년전 897  

본문) 요 18:28-40, 사 60: 9-14, 빌 3:17-4: 1

 

사순절 셋째 주일이다. 이 때 우리 주이신 예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는 제자들의 배신과 외면의 시선에서도 떠나고 동족인 유대인 모든 집단들의 배척과 증오의 물결에서도 밀려난 채, 이제는 오직 당신 홀로 당신의 존재(存在)와 행위(行爲)의 정당성과 메시아 되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당시의 세계인의 대표가 되어 그를 심문하게 된 로마의 재판관 빌라도 총독(總督)앞에 피고인(被告人)되어 외로이 홀로 서셨다. 

 

실로 역사적(歷史的) 재판이 개정(開廷)되었다. 인류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피고가 되고, 가장 존귀하신 분이 범죄 투성이인 존재로부터 심문을 당하는 피고인인 되었으며, 그래서 심판과 정죄를 행사해야 할 분이 도리어 심판을 당하게 되는 그 자리, 무엇보다도 그 누구도 그의 존재와 세계를 품을 수 없이 크신 분이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던 편협한 존재에게서 운명의 선고(宣告)를 받아야 되는-, 실로 모순된 역사의 한복판에 그 분이 서신 것이었다. 

 

피고인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에게 그렇게 밀려온 물결의 의미를 알고 계셨다. 피할 수도 없고 또 감당하여 다음 세상을 열어주셔야만 되는 과정임도 깊이 알고 계셨다. 무엇보다도 당신을 향한 재판의 결론은 십자가와 고통스런 죽음임도 잘 알고 계셨다. 당신을 처형할 권세도 오직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부여된 것임도 잘 알고 계셨다. 그 마음으로 거기에 계셨다! 

 

그 바람에 빌라도의 관정(官庭)의 모양새는 땅의 왕이 하늘의 왕을 심문하는 모습이 되었다. 왕(王)들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없었다. 서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차원이 완전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만 하늘의 왕은 무엇을 원하고, 땅의 왕도 무엇을 원하는지 만은 뚜렷이 보여준 한 판이었다. 그래도 그 법정의 심판할 법과 주역은 세상 법이었고 인간이었다. 드디어 재판관인 빌라도의 최대의 관심사가 그의 심문 첫 일성에서 잘 드러났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절). 빌라도는 왜 예수께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빌라도는 철저한 정치인(政治人)이었다. 자기가 다스리는 그곳 팔레스틴의 지역의 치안이 안정되게 유지되는 일이 최고의 관심사였다. 그러기에 그 어떤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는 인물의 등장은 절대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로마 정권은 자기들 치하에 있는 식민지 백성들 중에,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이 체포되면, 가차 없이 십자가에 공개 처형했다. 십자가 처형이야말로 가장 무섭고 두렵고 잔인하여, 반란자들을 진압(鎭壓)하는 데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예수의 대적자들도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펼치시면서 보여주신 모든 행위들(제자 기르고-가르치고-선포하고-치유하신 일들)을 하나님의 인간구원 행위로 보지 않고 자기 유대교를 향한 배교 행위로 보았고, 그의 모든 선교적 행위를 정치적 행동으로 규정하였으며, 그런 일들로 예수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는 위장된 메시아(왕)라고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세력이 커진 예수를 그대로 두면, 결국 로마 정권의 개입을 불러와 나라와 종교의 온 체제에 큰 위험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았다(요11:47-50참조).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요 메시아로 군림하여 백성들을 선동해 로마 체제에도 도전할 위험인물이다’는 취지로 총독에게 고발한 것이다. 예수 제거를 위하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모든 제 종파의 세력들이 일치하여, 자기들의 적대자인 로마정권을 위한 이적(利敵)행위까지도 서슴치 않은 것이다. 

☞ 이런 모습은 요즈음 전광훈 집단 속에 이단인 신천지세력과 극우보수 기독교세력과 극우 야당이 한 데 어울러져, 빨갱이 세력인 문재인 정부의 타도를 외치는 점과 흡사하다. 

☞ 이런 모습은 최근 우리나라의 복음주의에 앞장 서왔던 홍00 목사가 최근 이번 선거가 문재인 정권의 사회주의 체재로의 변혁을 저지하기 위한 기회라고 주장하면서, 교인들에게 보수 야당을 지지하도록 설교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이래, 과거 보수정권이 지켜온 모든 적폐적 흐름을 변혁해가는 것들이 사회주의(공산)에로 가려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예수를 제거하려 했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너무 흡사하다! 

 

이제 예수 자신의 대응이 어떠하셨는지를 확인하자. 주님은 빌라도의 관심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닌, 유대인들의 주장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신 후(34-35절),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王)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37절. 상). 

 

예수님은 담담(淡淡)하게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셨다. 예전에는 당신을 왕으로 추앙하려던 자들을 피하려고 하셨는데(6:15), 지금은 오히려 당신의 왕이심을 선명히 밝히고 나오신 것이다. 예수의 이런 선언은 그 자체가 매우 역사적이고 세계사적인데-, 대체 무엇이 담긴 내용인가? 우리는 그 선포의 대상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과 이방 세계의 대표자인 빌라도를 향한 말씀이고 계시(啓示)였다는 점에서, 그의 선포는 당신이 유대인의 왕의 차원을 넘어, 로마 제국을 포함한 ‘온 세상의 왕’ 되심도 선포하신 내용이었다고 보아야한다(요19:11참조).

 

즉 ‘왕 되신 예수’였음이 그의 지상 여정의 최후에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라면 당연히 다스리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그를 좇는 백성도 있어야 마땅한데, 그 대상들은 누구인가? 다행이 예수께서 직접 왕으로서의 당신의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궁금증도 소명(疏明)해 주셨다. 

 

1) 당신의 나라에 대한 증언이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절).  

 

☞ 주의 증언을 요약하면, ① 그의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져서 이 땅을 변화시키려고 임하신 나라이다. 그러기에 그가 그 일을 위해 오셔서 선포하신 첫 일성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다(막1:15). ② 하늘에 속한 당신의 백성들이 세상의 땅의 권력과 무력으로 맞서려고 하는 일은 없다. 오직 비(非)폭력과 평화를 추구함을 명백히 하셨다(36절,중). 제자 베드로의 칼부림도 직접 막고 나선 이가 주님이셨다(요18:10-11).  

 

2)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증언이다. - ‘나는-진리(眞理)에 대하여 증언하려 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37절.하). 요한복음은 타 복음서와는 달리, 진리이신 예수를 깊이 전한다. 먼저는 예수 자신이 진리이심을 밝혔다(14:6). 그러다가 ‘진리에 속(屬)한 자는 그의 백성이기에 누구나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는 선언까지 하셨다(8:40,45-47,10:3,16,27절 참조). 그들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를 왕과 길과 생명으로 알고 좇는다고 밝히신 것이다. 

 

그런데 주의 말씀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상대인 빌라도를 겨냥한 메시지도 담겼다. 즉 빌라도에게도 ‘너도 불의와 거짓에 동조하지 말고 진리 편에 서라’며 돌이킬 기회를 부여한 메시지였다. 결과는 어떠했나? 빌라도의 마음에 깊은 통증(痛症)을 안겼다고 본다.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되묻는 말로 그 심문을 끝냈으나, 그는 예수가 처형할 만큼의 혐의를 가진 인물이 아님을 인정했다(38절,19:7참조), 그리고 예수의 방면(放免)을 위해 노력도 했다(19:12). 

 

그럼에도 빌라도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 처형에 내어준 역사적 죄인이 된 것은, 그가 예수의 마지막 요청을 행동으로 답(答)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 자신이 예수의 무죄를 확인한 즉시 무죄 선언하고 석방을 명하였다면, 그는 진리 편에 선 자요 예수의 백성이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빌라도가 세상 눈치를 고려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바람에(39-40절), 그는 결국 예수 적대자들의 간교함에 휘말려 들면서(19:12-13참조), 예수를 끝내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게 된다(19:16). 

☞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논리나 이론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선택하는 행동으로 직접 받으면 된다는 점이다. 예수와의 간격을 둔 진리 론에는, 요즈음의 신천지와 이단들처럼, 잡(雜)것들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서신서를 보자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를 믿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써, 진리의 백성들이 되어있는 빌립보 교우와 우리들을 향하여, 빌라도가 보여 주었던 실패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권면을 하고 있다. 

 

바울의 강조도 우리들 모두가 주님을 뵐 때까지 확고한 정체성(Identity) 위에서 사는 일이다. 첫째는 지금은 참된 본향(本鄕)인 하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나그네들이다(히11:13, 벧전2:11참조). 둘째는 하지만 자신들은 이미 하늘의 시민권(市民權)을 소유한 자들이다. 셋째는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그 주님을 만날 때, 기다리던 우리는 죄 짓기 쉬운 낮은 몸에서 주님의 신령(神靈)한 몸과 같은 영광의 몸체로 변화되고 완성된다(20-21절). 

 

이런 정체성을 보전하며 ‘주 안에서 진리 위에 서도록’(4:1),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별당부를 하였다. 실로 눈물로 전한 사도의 당부였다(18절). 

 

1) ‘나를 본(本) 받으라’고 했다(17절, 고전11:1참조). 교우들은 대체로 신앙이 여리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본받을 만한 신앙의 모범(模範)과 모델이 필요하다. 그게 지도자인 교역자일수도 있고, 선배나 동료일 수도 있다. 자라가는 성도 곁에 훌륭한 신앙을 가진 선배나 동료가 있음은 큰 복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성도 상호간 교제(交際)를 통하여 성장하기 때문이다. 

 

2) 십자가의 원수인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18-19절). 바울은 일부 교우들이 그들 가운데 침투해 들어온 유대교의 거짓 교사들의 교육과 유혹에 휩쓸려 들어간 일들에 대하여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에 의한 구원을 계속 강조하며 가르쳐 왔던 바울과는 달리,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 의한 행위 중심의 구원론과 할례가 구원의 증표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믿음이 여린 교우들 일부가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와 교회는 코로나19를 통하여 드러난 이단 신천지의 폐해를 생생히 목격중이다. 이단(異端)의 결정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구원론이 다름에 있다. 예수가 계실 자리에 이만희나, 정명석이나, 문선명이 들어선 것이 바로 이단들이다. 그리고 예수와 그가 전한 복음과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죽으신 십자가(十字架) 복음 이외에, 다른 것으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있다면, 다 이단들이다. 모세의 율법과 할례가 본래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어찌 예수가 그렇게 오셨겠는가? 그게 불가능하니까, 예수가 오셨잖은가! 따라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빠지면, 그는 십자가를 무효화시키려던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구원에서도 제외된다.

 

그들의 더 큰 문제는 타락 이후의 삶에 있다. 진리 되신 예수에게서 떨어져나가는 순간부터, 인간들은 더 이상 성령과 진리의 사람이 아니다. 마치 불 꺼진 집안처럼 된다. 즉시 어둠의 영에 사로잡히면서, 사탄이 쳐 논 타락의 그물에 떨어진다. 그 동안 그들의 영혼을 건강히 통제하던 성령과 말씀이 떠나자, 그들 속에 잠재한 육체의 욕망과 죄성이 그의 새 주인이 된 것이다. 육신과 세속 중심의 생각들에 빠져들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직 자기만족과 땅의 일들만을 생각하는 나락에 빠진다(18-19절). 이게 바로, 믿다가 타락한 것이 무서운 이유이다!  

 

☞ 우리는 지금 사순절의 한 복판에 들어섰다. 내 신앙을 재 점검하여야할 때이다. 나는 진정 진리를 선택하고 복종하며 살아가는 예수 나라의 백성인지, 아니면 빌라도와 같이 주어진 기회들과 진리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소극적인 신앙인으로 떨어진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혹 십자가의 원수로 살지는 아니한가? 타락한 영혼은 하늘의 일이 아닌 땅의 일에만 매진 한다(빌3:19참조). 다시 눈을 씻자! 우리의 눈을 우리 본향인 하늘의 시온 성(城)을 향하게 하자. 

 

구약을 다시 보자

본문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내고, 그의 긍휼의 은혜를 받아낸 자들이 성부 하나님에게서 어떤 삶을 허락 받아 살게 되는 지를 매우 생생히 전하는 내용이다(10절 참조). 말씀의 배경은 가까이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들을 위한 위로의 비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인 할례를 받은 세계의 모든 구원 받은 성도들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이다.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온 세계 만민들과 백성들을 끌어들이면서 당신의 나라와 백성들을 흥하고 영광스럽게 만드는 신비한 모습들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마6:33)고 약속하신 내용의 구체적인 실현을 미리 담아낸 조감도(鳥瞰圖)라고 보인다. ‘더하여 주시는 은혜’로 사는 자들의 신비로운 세상 말이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당신의 나라와 백성을 언급하셨던 바로 그 대상들이 살게 될 시온성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13-14절). 가슴을 설레게 한다! 

 

결론이다

시온성-, 그 거룩한 곳을 상속할 여러분들이여! 그곳은 예수의 진리를 좇아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 십자가에 책임을 감내하면서 이겨낸 이들을 위해 예비 된 곳임을 명심하시라. 이 땅의 삶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임도 명심하자. 그곳은 완전함과 온전함으로 가득한 곳이다. 우리의 그 어떤 부족과 결핍으로 인한 고민과 갈등도 완전히 벗어난 곳이다. 걱정이나 염려는 있을 수 없다! 완전한 평화, 완전한 안전, 완전한 개방, 완전한 자유, 그리고 완전한 승리가 부여되는 영원한 본향이다. 신실함으로 꼭 상속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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