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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7)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9-10-08 (화) 16:10 4년전 913  

본문)  수 24: 14-28, 요 15:18-27, 행 3:22-26

 

나라가 어려운 때이다. 무엇으로 어려운가? 지금까지의 우리는 대략 IMF같은 경제위기에 어려워했고,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에 의한 긴장감 때문에 어려워했다. 군사독재의 횡포와 그 잔재들의 권력만용에 힘들어 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같은 환경오염으로 어려움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번의 어려움은 그게 아니다. 한 인물의 법무장관 임용을 두고, 국민들 사이에 찬. 반 입장에 첨예하게 갈라져서 논쟁이 치열하게 된 일 때문에 어려워한다. 게다가 그 논쟁이 대규모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두 광장들이 기백만 군중의 지지세(支持勢) 대결로까지 나아갔다.

 

그러면 묻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렵지 아니한 때가 과연 있었던가?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없었던 시대가 전혀 없었다. 항상 어려웠다. 그 위기를 느끼는 각자의 촉감(觸感)이 ‘둔(鈍)했냐 예민(銳敏)했냐’에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조금 더 확인해보자. 평화(平和)와 차별(差別)의 문제는 가장 큰 풀리지 않은 난제였다. 분단의 위협과 아픔은 우리의 삶을 전 방위적으로 옥죄어 놓았다. 그러자 그것에 기생(寄生)하여, 정치도 독재와 억압이 난무하고, 반공이란 이념의 절대주의가 기승하면서 우리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왜곡시켰다. 그 그늘 속에 차별과 대립도 일상화되었다. 지역차별. 학력 차별. 성차별, 빈부 차별이 일상화되고 생활화되었으며, 노사갈등, 빈부갈등까지 심화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만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놀라운 ‘국민적 저항력’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학농민혁명-3.1운동-항일독립운동-4.3제주항쟁-4.19 및 부마항쟁-5.18광주민주화운동-4,16세월호 참사와 저항-그리고 2016년의 국민적 촛불혁명 등이 우리 국민을 깨우는 민주주의를 향한 각성운동으로 축적되어 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혁의 동력을 얻으면서, 우리의 정치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해왔다. 아시아에서는 최고라는 세계가 놀라는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들이었다! 

 

이런 대변혁 현상은 이른 바, ‘적패세력’인 거짓과 가짜 세력의 저항(抵抗)과 퇴장(退場)이라는 흐름을 탔다. 적패세력은 누구인가? 성서적 표현으로 말하면, ‘묵은 누룩’과 같은 세력이다. 오랜 세월, 가짜이면서도 자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을 행세하면서 잡은 것 지키기에 뜻이 통하는 세력끼리 강고하게 결탁하여, 자기 집단이익을 사수하고 신진세력들을 배척하는 형태로 국가와 종교와 사회 전반을 장악해왔던 그룹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위선적 행태를 깬 것이 바로 촛불혁명으로 이루어낸 2017년의 정권교체이며 문재인 정부의 등장이었다. 국민이 주인인 참 헌법정신을 구현하려는 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자기 정부의 역사적 소임(所任)이 ‘적패청산에 있음’을 계속 천명해 왔다. 사실상, 그의 이 선언은 기존의 낡은 기득권 세력들을 향한 거대한 전쟁(戰爭)선포였다. 그의 이 싸움은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보완차원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보다 철저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보수 세력들은 처음부터 저항했다. 정말 막가파 수준이었다. 대통령에게 ‘미쳤다’며, ‘물러나라’는 등의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대들고 있잖은가!

 

하지만 이 정부의 지지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각성된 국민들이다. 정치와 경제와 언론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기존한 세력들이 이 정부의 우군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정부의 적(敵)들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라. 모든 국가 기업체나 공무원 사회나 언론계를 놓고 보더라도, 정권교체로 변한 세력은 누군가? 있다면, 윗부분인 머리들뿐이다. 그 그룹을 밑받침하는 몸체들은 여전히 낡은 옛 존재가 압도적이다. 따라서 숫자로 보면, 새 정부는 항상 소수였고 반발 세력은 다수이다. 기회만 되면, ‘주인을 물어뜯으려는 개’(구교주인)와 같은 존재들이 다수이다. 

 

지금의 싸움판을 잠시 복기(復碁)해보자. 이 싸움에 불씨를 던진 것은 기본적으로 남북화해와 평화의 흐름이다. 이것은 국민 누구나 희망을 주었지만, 유독 반공이념 대립으로 오랫동안 재미를 보아왔던 낡은 세력들에게는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자기들이 기대어 살아온 영역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일본의 경제적 공격의 흐름이었다. 그 일로 극일운동과 반일세력이 고조되자, 그 동안 잠재되어 살던 친일(親日)세력들이 자신들이 친일 세력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위 ‘토착(土着)왜구’의 세력들이 제 정체를 드러내면서 공격을 받게 되자, 그들은 출구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중에 조국 문제가 큰 출구가 된 것이다. 

 

조국 공격을 주도한 거대 결탁세력도 선명하다. 검찰과-보수야당인 자한당과-언론들이었다. 마치, 나사렛 예수를 제거하기 위하여, 당시 자기들끼리도 서로 맞지 아니하던 세 그룹들인, 바리새인-사두개인-헤롯당원들이 결탁하고 나온 모습처럼 그들은 하나 되어 있었다. 특히 검찰세력이 지금 우리나라에게 가장 강력한 실세임을 이번 기회에 뜨겁게 선언하고 나왔다. 임명직이면서도 그러나 국민의 선출직까지도 통제하고 군림할 수 있는 전횡권을 가진 세력이 바로 자신들임을 과시하고 나온 것이다. 전(前) 대통령도 죽게 할 힘이 여전함을 보여주려 했다.

 

그들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아주 오래 전부터 조국과 함께 묵은 적패를 청산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국회 청문회 직전에 후보자를 향한 대대적 압수수색들의 행태를 통하여, 그리고 그 동안 깊이 관계하며 부려왔던 모든 언론사들을 통한 사전 의혹(疑惑)들 부풀리기를 통하여, 그리고 깊이 연대해 온 야당(野黨)에게 정보공유를 흘려주면서 여론을 악화시켜, 대통령의 분명한 개혁 의지를 꺾고 주저앉히려는 일에 총력을 쏟아왔다. 

 

정치(政治)검찰의 목표는 분명했다. 자기들을 향한 도전이나 통제세력은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통령과 국민 모두에게 선포했다. 대 하극상(下剋上)이었다! 그 동안 그 어떤 장관 청문회 대상도 이렇게 일가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털리면서 장기간 검찰의 조사와 공세를 받은 적이 있었나? 그 동안 국가적인 대 사건들-이른바, 5.18, 4,16참사 사건, 김학의 장자연등의 권력형 비리사건, 일본과의 역사왜곡과 위안부결탁 등의 각종 국가위상이 걸린 사건들에게 꿈쩍도 하지 않던 검찰이-, 이번 조국 임명에 저토록 덤비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작 힘을 써야만 할 것에는 외면하고,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는 물어뜯으려는 존재임을 드러냈다. 그러니 만일 그들의 요구대로 되면,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되겠는가! 

 

문제는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이다. 우리 국민들은 두 가지 측면으로 마음을 드러냈다. 하나는, 그런 진짜 보아야할 검찰의 흉심(凶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체, 그들의 의혹 부풀리기 공세에 몸과 마음이 함께 휘말려 든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이 그러니까 그런 가보다’하였고,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에 ‘뭔가 그에게 큰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라면서 부풀린 검찰의 의혹이 사실인 양, 그와 그의 온 가족들을 천하에 없는 역사적인 죄인으로 알고 돌을 던졌다. 거기에 적대 야당의 정치적 총공세도 큰 몫을 하였다. 지금도 확실한 것 하나도 확인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얄팍한 분노와 실망감까지 표출하였다. 

 

하지만 또 반응도 나타났다. 이런 배후의 불건전한 세력의 총 공세를 견디고 버티는 조국은 더 이상 ‘개인 조국’이 아님을 안 것이다. 물론 그의 의혹들은 여전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는 이미 우리나라의 묵은 누룩들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적패청산을 할 수 있는, 새 시대의 심벌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강력히 대통령의 적패청산의 의지를 온 몸으로 실천해갈 지금의 대안(代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안고 있는 한계도 보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를 살리고 보전하여, 대통령과 함께 오랜 적패청산을 마감해주기를 바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갈라진 현상에 대하여, 최근 대통령의 평가가 있었다. ‘국론분열이라고 보지 않는다. 직접 민주주의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입장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국론은 확인되었다. 그것은 (무소불위의) 검찰은 개혁되어야만 한다-’. 매우 정곡(正鵠)을 찌른 평가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의 관심과 입장은 애매모호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것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다만 하나님 나라 건설에 어떤 세력이 보다 가까운 것인지를 분별하고 지원해야 한다. 모자란 것은 권고하여 협력하면 된다. 마침 오늘 창조절 일곱 번째 주일의 내용들 모두가, 당시의 절박했던 역사적인 상황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대변자들)이 어떻게 대응하시면서, 그 역사의 변곡점을 굴절(屈折)이 아닌 직선(直線)으로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전하여 주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구약을 보자

늙어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만 했던 여호수아는 염려와 걱정이 컸다. 자기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게 되면서, 그들의 영성과 신앙의 긴장감이 형편없이 허물어져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이(安易)와 나태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공적(公敵)이었다. 

 

1) 백성들 대부분은 이미 혼합(混合)종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 여호와 신앙이 필수이긴 하지만, 이방 신과 우상들도 선택하면서 순수성이 크게 망가져 있었다(14-15절). 더 큰 문제는 ‘당신 이후의 그들의 미래’였다. 당신이 떠난 이스라엘의 신앙은 무너지는 일밖에 없다고 판단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모든 것들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그 점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그들과의 마지막 승부를 벌렸다. 그래서 나온 통절(痛切)한 요구가 이것이었다. 

☞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그에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4-15절). 

 

2) 다행히, 지도자의 그 절박한 마음은 백성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위기를 넘긴다. 그들은 출애굽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자신들도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응답하고 나왔기 때문이다(16-21절). 하지만,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회개의 고백을 들으면서, 보다 철저한 압박을 가했다. ‘그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 거룩하고 짙투하시는 하나님은 너희를 용서 없이 재앙으로 멸하실 것이다’(19-20,23절). 

3) 또 다시 여호와만 좇겠다고 재 다짐과 맹세를 하는 백성들에게(21,24절), 모세는 대못박기 작업을 했다. 증인들 세우기로 그들의 퇴로를 철저히 차단하였다. 첫 증인은 그들 자신들이고, 둘째는 율례와 법도로 기록에 남기는 일이며, 셋째 증인은 큰 돌을 성소 곁에 세워서 돌 증인으로 하여금 자자손손 이 약속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지키게 하려 하였다(22,25-27절). 

☞ 이런 철저하고 엄청난 작업으로, 여호수아는 그 무사히 다음 세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복음서를 보자

조만간에 여린 제자들을 남겨 두고 하늘 본향으로 떠나실 예수님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다. 당신 이후를 전혀 상상 못하는 제자들에게 일종의 예방주사(豫防注射)가 필요함을 절감하신 것이다. 세상의 도전과 박해와 몰매를 이겨낼 믿음의 항체(抗體)가 그들에게 필요함을 아신 것이다. 그래서 닥쳐올 가상현실을 미리 보게 하시면서, 미래를 대비(對備)하게 하셨다. 

 

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요 박해할 것이다(18,20절). 그것은 너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기 때문이며,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면 된다. 주인이 당하는 데, 어찌 종들이 편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면서 잘 이겨내어야 한다(19절). 

2) 나와 너희를 박해하는 그들은 이미 나의 말을 들었던 연고로 그 자신들의 무죄를 핑계할 수 없으리라. 그들의 미움은 곧 당신의 하늘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다(21-24절). 

3) 제자들에게 이러한 당신의 증인들을 세워 확증하셨다. 그 증인들도 둘이었다. 하나는 하늘 아버지가 보내실 보혜사 성령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당신과 함께 살아온 제자들 자신이었다(26-27절). 바로 이 점에서 제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사도(使徒)권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서신서를 보자

앞에서 예수께서 예고하신 두 증인들, 즉 성령과 사도인 베드로의 예루살렘을 향한 선포내용이 올라와 있다. 그의 증언은 이제 유대교의 율법종교의 시대를 마감하고, 예수로 인한 복음의 시대를 온 세상에 열게 하는 일을 위한 세계사적 증언대에 선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그 가슴이 뜨겁고 절박하였는가? 준비되지 못한 청중들이나, 마음이 완고한 자들의 마음과 관심의 전환(轉換)을 유도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난감하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증언자들의 헌신과 수고로 새 역사와 닫힌 문은 열리게 된다. 이 일은 성령시대와 교회 시대, 그리고 온 세상 복음화의 문을 연 그 핵심적 상황을 보여 준다. 

 

1)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약속된 오실 메시아 였음을 전하고자, 예루살렘 청중들이 쉽게 접할 자료인 모세의 증언과 사무엘의 예언도 인용하며 외치고 있다. 율법과 예언의 따라 오신 메시아이시기에, 매우 설득력과 권위를 가지고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야 멸망 받지 않으리라는 말씀도 힘써 상기시켰다(22-24절, 신18:19참조). 

2) 메시아 예수의 오심은 이스라엘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복을 온 세상 만민에 전하시고자 하신 일임도 전하였다. 먼저 유대인에게 보내신 것은 그 전파의 일로 그 동안의 잘못과 과오를 씻어내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함께 전하였다(25-26절). 복음을 향한 유대인들의 역할과 책임도 강조하면서, 세상 구원을 위해 인종과 국경을 넘어, 모두 하나 될 것을 역설한 것이다. 

 

결론이다

결국 위기와 역사의 대전환기에 보여 준, 여호수아와 예수, 그리고 사도들의 적극적인 행보는 그 시대의 방향타가 되었고 출구가 되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 지역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구원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문제가 문제는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어떤 대응을 할지를 모르는 지혜의 부족에 있다. 지혜를 구하자.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혼란과 도전도 이 기회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살려서, 우리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새로운 차원의 성숙한 백성이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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