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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세계성만찬주일

관리자 2019-09-25 (수) 16:46 4년전 977  

본문) 출 12:1-15, 요 6:48-59, 고전 5:6-8  

 

때 아닌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국내에 들어와 전국 돼지 가축 농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그것도 특효약도 없는 판국이어서, 한반도 창조 세계에 큰 적신호(赤信號)가 아닐 수 없다. 이게 어찌 가축 농가만의 일이겠는가? 유달리 돼지고기에 맛들인 전 국민의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잖아도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방사선 폐기물을 태평양 바다에 투기하려는 문제로,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들의 수산물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형국인데-, 이번의 돼지열병은 우리에게 먹거리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위기와 염려를 심화시킨 것이어서 큰 문제가 된다. 

 

본래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은 자연계와 더불어 공존해야 되는 틀로 형성되었다. 즉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곳에 있는 생명체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공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나선 당사자는 바로 인간이었다. 탈(脫)에덴 된 인간은 강박감에 쫓기면서 평화와 공존 대신에 탐욕과 이기주의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조그만 유익을 위해서는, 동료 인간에게는 물론 모든 생태계를 향한 공격에도 거침이 없어졌다. 

 

계속해 새롭게 발병하는 충격적 질병의 원인은 전적으로 불의하고 탐욕적인 인간들에게 있다. 그 속도는 마치 폭주하는 열차와도 같아서, 미래의 전망도 어둡기 그지없다. 인간이 무서워진 시대가 된지 오래이다. 참을 줄 모르고, 난폭하고, 너무 자기 위주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삶의 행태가 지나치다. 건강한 사람, 성숙한 인격을 찾아보기가 너무도 어려운 시대 속에 산다. 

 

그런데 시대의 타락상에 탄식만 하고 있는 것도 왠지 무책임하다는 느낌이다. 시대가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자기변명도 왠지 부끄럽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나부터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내일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그 정신이 소중해진다. 이 일의 선행은 나를 먼저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내 영혼, 내 정신, 내 삶의 행동과 철학부터 건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붙잡아 세우는 일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다시 창조주의 말씀과 지침에 다시 경청해야 한다. 나부터 새롭게 하기 위한 디딤돌을 말씀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창조절 다섯째 주일이다. 세계교회가 지키는 성찬(聖餐)주일을 한 주간 앞당겨 지키게 된 특별한 주일이다. 하나님 백성들의 특이한 음식 문화를 접하게 하는 의미 있는 주일이다. 

 

성찬은 무엇인가?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거룩한 음식이다. 즉 이 거룩한 식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와 백성으로 부르신 사람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책임 있게 살아가야만 할 무리들, 그들만을 위한 특별식(特別食)을 말한다. 그러기에 이것 먹지 않으려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용납되지 않는 그런 음식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음식까지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별하여 먹이시려 하실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음식의 힘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본래 먹지 않고 생존하는 생명체는 없지 아니한가! 그만큼 먹는 음식은 생존의 절대조건이다. 게다가 음식은 인간 체질 형성과 변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기에 인류는 항상 건강하고 좋은 음식 먹기에 전력을 다하고 살지 아니한가!

 

일찍이 말씀에 의한 영의 양식을 인간에게 주셨던 하나님은, 이번에는 먹을 음식으로도 인간을 구원하고 싶으셨다. 비록 불로장생(不老長生) 형(型)의 음식은 아니지만, 먹으면 인격과 존재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영생(永生)에까지 이르게 하는 신령한 음식을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먹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찬(聖餐)이라 부르는데, 주님은 이것을 거룩한 예전(聖禮)으로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공급해 주셨다. 

 

오늘의 말씀들은 그런 특별 양식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들이다. 출애굽기에서는 그 음식의 역사적 기원을 전하는데, 그 때의 음식은 구원의 상징적 표적이었다(출12:13참조). 하지만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내어주신 십자가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먹게 함으로서, 성찬은 예수의 사람됨의 여부를 가름하는 실재(實在)적 양식이 되고 말았다(요6:54). 우리의 영생과 구원까지 결정짓는 놀라운 특식이 된 것이다. 서신서는 교회 공동체가 그런 생명의 식탁을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참여하고 활용하여야 할 것인지를 일깨워준 내용이다. 

 

성찬 전래의 역사는 매우 험난했다. 이 성찬으로 인해 숱한 오해와 거짓 뉴스들이 발생하곤 했다. 기독교는 인간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게 하는 잔인하고 패역한 집단이라는 매도(罵倒)적 공세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찬은 뜻밖에도 교회 박해와 멸시의 자료가 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독교는 이 성찬 나눔에 목숨을 걸었다. 성찬에 우리의 구원과 생명, 속죄와 용서의 깊은 생명의 샘이 흐르고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그래서 존속한 것이다! 

 

구약을 보자

본문은 출애굽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나 바벨론 포로기 때에 가정 명절로 지켜낸 예배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첫 달인 아빕월이나 니산월은 대략 우리의 봄인 3-4월 정도를 말한다(우리의 부활절기 정도), 여호와로 인해 발생한 이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로서의 첫 모습이어서, 나중에 유월절이란 절기로 규례화 되어 자자손손 영원히 이어가는 명절로 자리하게 되었다(14절). 

 

< 인간들 측면에서 유월절을 위해 취할 지침 >

1) 제물(祭物)이 될 가축은 흠 없고 1년 된 수컷 어린 양이나 염소이어야 한다(3, 5절). 

2) 취하는 때는 열흘에 취하여 열나흗 날까지 간직하다가, 해질 때 그 가축을 잡는다(3, 6절)

3) 취할 분량은 가족들을 위하여 취하되, 먹을 식구에 비하여 잡을 고기가 많으면 

   이웃과 연대하여 사람 수를 따라 먹을 수 있을 분량을 계산하여 먹어야 한다(3-4절).  

4) 피(血)는 양을 잡은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7절). 

5) 고기(살)는 불에 구워 먹되,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다(8절). 

 - 날것이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혹 남은 것이 있으면 곧 불사르라(9절).

 - 먹을 때 자세가 중요하다. 먹는 대로 애굽을 곧장 떠나야만 되기 때문이다. 

 -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다(11절)

 

< 그 때의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 >

6) 그 밤에 애굽 땅 전체에 있는 사람과 짐승 모두를 포함하여,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죽이고), 애굽의 모든 신(神)들도 (깨뜨려) 심판(審判)하신다(12절).   

7) 하지만 그 양의 피가 거주자의 집에 발라 있으면, 그 집과 가족은 죽이지 아니하고 넘어 가신다(Pass-over/13절).  

 

< 유념사항 >

8) 이 유월절 사건은 여호와의 절기 규례가 되어, 자자손손 대대로 영원토록 지킨다(14절).

9) 무교절도 지킨다. 이것은 후대의 절기 규례에 의한 것으로서, 이레 동안 유교병을 먹지 말 것과 ‘그 중 첫날에는 집에 있는 누룩을 제하라’는 명령과 함께, 무교절을 통한 집안의 거룩함까지 도모하게 했다. 그러면서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제외시킨다’고 규정하였다.  

 

복음서를 보자

구약에서의 어린 양이 구원자의 예표였다면, 여기에서는 어린 양의 본체가 드러난 곳이다. 그는 세례 요한에 의하여 일찍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지목(指目)되었던 그 당사자인 나사렛 예수이셨다. 본문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자기 계시(啓示)의 말씀이다. 그의 자기 계시에는 분명한 동기(動機)가 있었다.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로부터 오병이어의 놀라운 체험을 하였는데, 그때 그들은 예수야말로 자기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 선지자로 판단하고, 자신들의 메시아(왕)으로 추대하려는 마음들을 드러낸다(요6:1-15참조). 하지만 당사자인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들의 요구대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해명하고자, 당신의 정체(正體)와 이 땅에서의 역할(役割)을 밝히고 나오셨다. 당신은 목숨을 십자가에 내주어서 세상을 살리려는 일념만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 때 ‘당신을 양식(糧食)으로 표시한 것’은, 음식의 기능이 당신의 역할을 세상에 제대로 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보셨기 때문이다

 

1) 주님은 당신을 옛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었던 만나와는 다르게(49절), 먹고도 죽지 아니하게 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며, 영생도 주는 떡임을 선포하셨다(58절). 그러면서 주님은 그 떡이 바로,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찢어짐으로 내어 준 당신의 살(육체)임을 밝히셨다(48-51절). 그러기에 당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다’고 규정하시면서, 당신이 택하신 무리들이 기꺼이 당신의 ‘살을 먹으라’고 명령하셨다. 


2) 당신의 피도 소개하셨다. 이 둘(살-피)은 패키지로 묶여 있는 양식으로서, 피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흘리신 보혈이요 ‘영생을 주는 음료’이기에, 그 피를 ‘마시라’고 명하셨다(54-55절). 

 

3) 살과 피의 양식을 취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차이에 대하여서도 분명히 언급하셨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53절). 그러나 먹고 마시는 자에게는 영생이 부여되고(완료형), 최후(最後)에는 주님이 그를 부활하게 하신다(54,57절). ☞ ‘영생을 가졌다’는 말은, 그가 주안에 거하고 주님도 그의 안에 거하는 현상에 들어감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수가 단지 영적으로서만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라는 구체적인 표시물로서 자신이 섭취(攝取)되려고 함을 말하는 내용이어 매우 주목되는 증언이다(56절,막14:22-24참조). 

 

☞ 이는 구원자 예수가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이단인 가현설(假現設=Docetism)을 단호히 거부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를 말미암아’(57절)라는 지적은 구원의 근거와 원인이 된다. 이 증언으로 성찬은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란 특식을 취하는 무리들이 되면서, 예수를 그 몸(삶)으로 받아 사는 존재가 되었다. 

 

서신서를 보자

본문은 성찬을 통하여 예수의 몸을 살기 시작한 교회 공동체가,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의하고 거짓된 세력들을 향하여,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한 사례를 중심으로 제공한 내용이다. 이 때 교회가 지키는 명절은 내부 문제 해결에 좋은 계지를 부여한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두 가지 대립적(對立的)인 상황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성령 안에서 복음이 준 죄의 용서와 그로 인하여 얻게 된 해방과 자유(自由)의 영성을 누리게 된 상황이었다(6절 상).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복음이 부여한 자유라는 차원의 기쁨의 영성을 제재하거나 훼손하는 일을 매우 힘들어 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어두운 상황 때문이었다. 그들 안에 적은 누룩(범죄자)이 있어서, 온 덩어리(교회 공동체)에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6절,하).  

 

왠 누룩이며, 무슨 염려였는가? 그 교회에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았던 자가 있었다. 아마 과부된 계모(?)를 그렇게 자기 아내로 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런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교회는 치리(治理)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까닭은 복음의 자유정신과 용서의 영성에, 그런 자에 대한 치리가 합리적이냐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했다 -‘치리함이 옳다’(6절.중). 그것은 복음으로 얻어낸 자유를 소중히 지키고 방종을 막기 위해서도, 묵은 누룩은 꼭 치리되어야만 했다. 사도는 그 치리 방향도 제시하였다. 

 

1) 용서 받은 깨끗한 영혼들(누룩 없는 자)은 묵은 누룩(범죄자)과 공존할 수 없다. 만일 누룩(범죄자)에 유야무야(有耶無耶)하는 태도를 보이면, 새 덩어리(공동체)도 금방 오염된다. 그러기에 ‘묵은 누룩은 제때에 내버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깨끗함과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유월절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도 전적으로 부합된 일이기도 하다(7절). 

 

2) 그때가 언제인가? 출12:15절의 유월절 규례를 따르면 된다. 즉, 유월절 전에, 집안의 누룩 남은 것을 치우는 유대 관습에 따라서, 교회도 성찬을 행할 명절을 앞두고 범죄자 치리를 집행하여, 공동체 모두가 누룩이 없이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떡을 받게 하면 되는 것이다(8절). 

 

☞ 그렇다. 성찬은 거룩과 불결을 구분 짓게 하며, 예수의 것과 귀신의 것을 단절시키는 예전이다(고전10:21). 그러기에 교회는 성례전을 통하여, 우리 내부에 있는 죄악과 거짓 세력을 숙정하고 회개하면서, 모두가 깨끗한 영혼(몸과 마음)으로 주께 나오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결론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듣는 양식인 주의 말씀과 먹는 양식인 성찬으로 생명의 양식을 취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주의 백성들이다. 그러기에 거짓과 불결한 죄악의 누룩에 우리의 몸과 영혼이 빠져 젖어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영생을 안겨주시기 위해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거룩성을 보전하는 일에도 더욱 기도하며 서로사랑에 더욱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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