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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4-1) - "말씀으로 성취되는 현재의 부활"/ 김진수 목사

longbeach 2018-04-21 (토) 09:07 6년전 2528  


말씀으로 성취되는 현재의 부활

2015년 4월 26일  욥33:14-18,23-28/ 고전15:51-58/  요11:17-44  부활절넷째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했고 그로 인해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목숨 걸고 고난 중에도 순교를 각오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사도들이 목숨 걸고 선포하려 했던 부활사건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주님 오시는 재림의 날,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까? 영원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부활과 영광의 몸이란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몸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고난 중에 깨닫는 하나님의 말씀(욥33:14-18, 23-28)


욥기33장은 경솔했던 욥의 세 친구(소발, 빌닷, 엘리바스)의 발언이 끝난 후 신중한 사람 ‘엘리후’가 욥의 고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내용입니다. ‘엘리후’의 발언은 앞의 세 친구의 발언에 비해 고난에 대한 매우 사려 깊고 성숙한 발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의 좁은 시각을 넘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화의 통로’라고 말합니다.(욥22:14-16절)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에게 다가오십니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과 긴밀해지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까? 형통할 때는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서 자신에 대해 철저히 절망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C.S. 루이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그의 뜻을 알게 됩니다. 결국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것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알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기쁨으로 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또한 고난이 더 큰 고통과 화를 막기 위한 예방수단이라고 말합니다.(욥33:17-18절)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악한 일과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교만을 꺾으시며 그의 마음을 더럽고 위험한 유혹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그 생명을 하나님의 심판대(칼) 앞에 서지 않도록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나아가 고통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라고 합니다.(욥33:23-27절) 하나님은 ‘중보자’와 ‘구속자’를 통해 고난당하는 자의 고통을 아시고 억울한 고난을 당치않게 하시며 질병에서,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이 자기를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구원해 주셨다”고 외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3-2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앞에서 바르고 온전한 자의 고난을 중보자를 통해 다 아시고 그 고난을 통해 더욱 복된 일을 이루시고 구속자를 통해 질병과 실패와 죽음에서 건져내어 건강과 젊음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바르고 온전한 자를 마침내 더 아름답게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눈이 열려 고난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더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주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고난도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시고 새롭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서 새 삶이 시작됩니다. 고난을 감사하게 되고 죽음너머의 새 삶을 살게 됩니다.


부활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고전15:51-58)


고전 15장은 소위 말하는 부활장입니다. 장차 역사의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성도의 부활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확실한 언어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 이루어졌던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우주적으로는 ‘새 하늘 새 땅’으로, 전 인류적으로는 ‘몸의 부활’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질병, 우환질고, 고난으로부터 구원받고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구원입니다. 완전한 구원은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먼저 이 세상에서의 순간적이고 제한된 삶을 넘어 영원하고 영광스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곧 사망권세 이기고 영생 얻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처음 이 땅에서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성취될 것입니다. 또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52절) 우리는 아무리 건강해도, 장수해도 여전히 썩을 몸을 입고 살다 죽습니다. 늙고 노쇠하여 옷같이 낡아집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날 우리가 부활할 때는 썩지 않을 새 몸을 입고 살아납니다.(53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들은 홀연히 다 변화되어 역시 썩지 않는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51절) 이 새 몸, 변화된 몸은 날마다 새로운 몸, 갈수록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 오시는 날,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가장 무섭고 강한 대적 사망은 심판을 받아 불 못에 던져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사망을 이기고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죽음은 우리 삶의 마지막도, 파멸도 아닙니다. 승리에 이르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충성되게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상급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와고 흔들리지 말고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날의 ‘우주적인 부활사건’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입니까? 언제 성취될 것인지는 다 압니다. 주님 오실 때라고 주일학교 어린애도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점진적인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교회가 온 땅에 편만해지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물리적인 천지개벽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그냥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성경은 “마지막 나팔에”(51절), “나팔 소리에”(52절)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고 부활에 이르게 된다고 하십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하셨을 때 나팔소리가 들렸습니다.(출19:19)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할 때 하나님은 나팔로 명령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민10:2) 새해가 왔을 때도 나팔로 새해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강림을 말씀하시는 살전4:15에서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큰 음성’이요 그의 ‘명령’이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소리’요 ‘신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매우 급하고 중요한 그의 명령을 말씀하실 때 들리는 소리가 ‘나팔소리’입니다. 악기 중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게 나팔이 아니겠습니까?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육체들을이 다 알아듣도록 가장 큰 소리로 ‘깨어 일어나라’고 말씀하는 명령이시겠지요! 하나님은 처음 창조의 날에도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 창조하셨듯이 마지막 날에 이 온 우주를 다시 재창조하시는 날도 그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시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 몸을 부활의 몸으로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보석으로 치장되고 순금으로 포장된 도로가 포장된 물리적으로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주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이 새 하늘 새 땅, 새 부활의 몸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으로 성취되는 현재의 부활(요11:17-44)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두 자매는 예수께서 오라비 곁에 있지 않아서 죽었다고 말하고 주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리라고 하십니다.(17-23) 마르다는 당연히 마지막 날에 살 것을 믿는다고 했고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주님 오시는 날에 가서야 부활의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 바로 부활이시라고 하십니다.(25절) 그리고 나서 주님은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지금 마리아, 마르다, 많은 사람들 목전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고 주님 오시는 날에만 얻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먼저 무덤의 돌문을 열게 하십니다. 물론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나올 수 있도록 닫힌 돌문을 열어놓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주님의 음성에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에게 들려지도록 큰 소리로(43절) 말씀하시기 위해 돌문을 옮겨놓으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주의 음성이 들려야 놀라운 새 창조가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자’를 치유하실 때(막7:31-37) 청각장애자가 알아듣도록 “손가락을 양 귀에 넣어”서 ’손과 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들려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열려진 무덤을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43절) 드디어 주님의 말씀이 죽은 나사로의 귀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갑니다. 말씀대로! 말씀을 따라! 나온 것입니다. 나사로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이 얼마나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는지 아십니까? “수족을 동인채로”(44절) 나왔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말씀하신 그만큼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더하여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44절)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무엇입니까? 죽은 이후에나,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그 미레의 날에나 경험할 수 있는 사건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영광스런 부활의 은총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5절)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선포된 말씀을 믿음으로 수용되는 곳에 바로 부활의 삶이 있습니다. 죽었던 심령이 살아나고 어떤 고난도 이기며 죄악의 유혹을 정복하고 어둠의 권세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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