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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6-1) - " 거리두기 - 하나님의 거룩한 배려 " / 어버이주일-승천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1-05-06 (목) 17:01 2년전 550  

본문) 19:16~25, 24:44~53, 5:6-14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거리두기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최소한의 거리두기를 통해 전염의 위험성을 낮춰보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단어입니다. 처음에는 이 거리두기가 많이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도 거리두기를 하고, 대화할 때도 거리두기를 하고, 걸을 때도 거리두기는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예배같지 않았고, 악수 대신 눈 인사로, 팔꿈치로 대신하는 방식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거리두기가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이제는 서로 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모를 감염의 위험을 낮추는 가장 쉬운 방법이 거리두기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 거리두기가 존재합니다. 오늘날 거리두기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성을 낮추는 방편이라면, 성경의 거리두기는 죄인 된 인간을 지키시고,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방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거주하던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탐하는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동산 밖으로 내보내시고 그 경계에 불 칼을 두어 인간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거리두기를 한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거리두기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인간을 버리고 심판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살리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입니다. 죄로 물든 인간이 거룩한 동산에 들어왔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면치 못하니 거리두기를 통하여 그들이 그 죄의 허물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두기는 철저히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거룩한 원칙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신 장면입니다. 오늘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그에게 계명을 주시고, 이스라엘과 거룩한 언약을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사 계명을 약속을 주시기전에 험히 경계합니다. 백성들이 함부로 산에 오르지 못하게하라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거리두기가, 모세에게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오늘 거리두기를 하라 명령하신 이유가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24절은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덧붙입니다. 죄로 물든 인간이 그 죄를 씻지 않은 채 호기심만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왔다가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다가 오지 못하게 하라 명령하고 경계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거리두기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거리두기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늘 영광 보좌에서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거리두기를 하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직접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이유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고, 죄로 인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대속하사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은 바로 그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시고 그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명령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 마지막 당부와 명령의 핵심이 거리두기라는 점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에 등장하는 거리두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는데 하나는 제자들을 위한 측면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구원을 위한 측면입니다.

먼저 제자들을 위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예수님의 거리두기는 제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와 세계 모든 족속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즉시 그 사명을 감당케 하시지 않고,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며 기다리라 말씀하십니다. 일종의 시간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행하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즉각적으로 명령을 수행케 하셨던 예수께서 승천을 앞두고는 시간적 거리두기를 통해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라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만의 힘과 능력으로는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배려이자 당부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거리두기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사명을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셨음을 오늘 누가복음은 증거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거리두기(승천)는 죄악된 세상에 대한 포기와 심판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나아가 마지막 사명을 다 완수할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거리두기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아직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곧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거리두기는 철저히 이 땅의 죄인들을 거룩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배려였음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위한 거리두기가 오늘 누가복음을 통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요한계시록의 증거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께서 보좌로부터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는 이 땅에서 박해받고 고난 중에 죽으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 이 세상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통치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일곱 뿔은 통치자의 상징이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리마리를 취했다는 것은 창조주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상징합니다. 그 통치자이신 어린양 그리스도는 지금 경배와 영광과 찬송을 받는 자리에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천사나 장로들과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거리두기를 통해 구별한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 남겨진 이들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이 허튼 맹세가 아니라 구원자의 위치에서, 창조자의 위치에서, 통치자의 위치에서 예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상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을 받들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 기도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낱낱이 그리스도 앞에 올려지고, 기억되고 있음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비록 거리두기를 통하여 지금은 하늘 보좌에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시지만,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통해 이 땅의 성도를 돕고, 가르치며, 인도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요한계시록의 증언은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밀접히 연결된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입니다. 집 떠나면 효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는 그 사랑과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집을 떠나 독립해 보면 비로소 부모님의 그 수고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전체를 볼 수 없고, 진실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거리두기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도 깨닫게 되고, 소중함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은 거리두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과 구별합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죄로 물든 우리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심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별하고 거리두기를 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거룩한 대행자로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신약의 거리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땅끝까지 증언해야 하는 거룩한 사명으로 제자들과 우리를 인도합니다. 동행하시던 예수께서 거리두기를 통해 당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고, 이제는 제자들이 그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계시록은 거리두기가 이 세상에 대한 포기 선언이 아니라 구원 선언이며,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강권적인 약속임을 보여줍니다.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거리두기는 좌절과 절망의 소식이 아닌 승리와 구원의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 전하고 선포하셨던 모든 말씀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요한계시록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두기는 우리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배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옛날 에덴에서의 거리두기처럼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거리두기는 회개를 위한 배려요,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거리두기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염병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한 도구라면, 하나님의 거리두기는 죄악의 늪에서 허덕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거리두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보하셨고, 성령을 통해 우리와 동행함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도움을 받은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주신 그 사명을 전인생을 통해 감당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키고 보호하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거룩한 뜻 늘 가슴에 품고, 거리두기를 통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뜻을 헤아려 세상에 주의 뜻을 증거하는 거룩한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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