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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5-1) - " 기쁨 충만한 삶을 물려주려면 " / 교회교육주일, 어린이 청소년주일 / 이훈삼 목사 >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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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5-1) - " 기쁨 충만한 삶을 물려주려면 " / 교회교육주일, 어린이 청소년주일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1-04-29 (목) 15:27 2년전 516  

본문) 아 2:8~17, 롬 8:1~11, 요 15:1~11


1. 아이들의 눈물 

1) 7년 전, 주민교회 부임해서 처음 맞은 2014년 어린이주일예배에서 설교했던 내용 중에 서경식 선생의 책 ‘소년의 눈물’을 인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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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2) 자식을 위로하고 싶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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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위에 인용한 내용이 가슴에 남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부모의 바람은 똑같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상처 받지 않기를, 어른이 모르는 사이에 홀로 방에서, 뒷골목에서 눈물 흘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거친 세상에서 아프고 힘들어도 다시 새 힘을 내기 위해서는 아파서 눈물 흘릴 때 누군가 손잡아 주고 등 두드려 주고 말이라도 편들어주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애들이, 청소년들이 무슨 눈물을 흘릴 정도로 상처 받느냐고, 눈물 나고 싶은 이들은 험난한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어른들뿐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 어린이‧청소년들의 눈물을 보려고 하는 진지한 자세에서 행복한 가정과 사회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2. 상처 입은 영혼들 

1) 3년 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했던 TV 연속극 ‘나의 아저씨’를 최근에 몰아서 보았다. 딸이 인생 드라마라고 추천했지만 제목이 좀 아리송하고 무엇보다 80분씩 16부작을 보려니까 엄두가 안 나서 아예 시작을 안했는데,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최근에서야 시청했다. 한 마디로 아주 잘 된 작품이다. 역사 기록과 논문이 있음에도 허구인 소설이 필요하듯이 다큐멘터리가 있음에도 가상의 내용인 영화‧연속극도 필수다. 그것은 각각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고유한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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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는 실제에서는 불가능한 꾸며낸 요소들이 있으나 그건 극이니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체 기조가 불교 문화적이어서 아쉬웠다. 그것이 싫었다기보다는 왜 기독교적 문화를 바탕으로는 이런 품격의 대중 작품이 안 나오나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럼에도 참 감동적인 장면이 많았고, 많은 시청자들을 눈물 나게 했다. 눈물은 공감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나온다. 이 작품의 배경이 일반인들과 무관한 상류층이나 엘리트 또는 부유층들이 사는 지역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의 가정, 일반적인 회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 등 우리 일상과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보다 쉽게 동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극 중의 눈물에 동화될 수 있었다. 

2) ‘나의 아저씨’는 여러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은 안과 밖으로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준다는 점이다. 가난하고 지치고 연약한 사람들뿐 아니라 안정되고 풍요롭고 건강한 사람들도 역시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픔과 상처가 있다. 내 속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은 채 표시 안내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밖으로 표시하는데 점잖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무례하고 천박하고 뻔뻔하게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옆에 사람이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지금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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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면서 부딪힐 때, 서로에게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덧내고 후벼 파는 이들도 있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달래주고 풀어주는 관계도 있다. ‘나의 아저씨’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극 중 여러 관계들에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잘 풀어냈다는 점이고 그 자연스러움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할 수 있지 하는 공감을 불러냈다는 점인 것 같다. 상처 입은 사람의 부정적 표현(무례‧범죄‧뻔뻔함 등)을 불쾌해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 아픔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렀다’(지안/至安, 극 중 여주인공의 이름).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한 측은지심이 이 잔인한 분노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 


3. 기쁨이 충만한 삶을 위하여

1) 아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것, 부모가 자식을 향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징은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마음을, 시간을, 선물을 주고 싶어 한다면 그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한다. 죽을 때도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한다. 유산이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이 악물고 못된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최선을 다한다. 

물려줄 유산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쉽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재산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사람은 어리석다. 정신없는 물질 만의 유산은 받은 이들을 오히려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유산은 영원한 삶의 가치관이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물려주는 것이다. 우리 자식이 행복한 삶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사람은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2) 주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목적은 11절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11)


우리들의 인생에 기쁨이 가득하게 하게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내 삶에 가정에 하루하루가 너무 기쁜 삶, 이런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 자식들이 하루하루 너무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삶,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감격적이고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가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물려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3) 주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기쁨이 가득한 삶, 행복한 삶,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눈물 흘리지 않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확실한 방법은 분명하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고 행복해진다.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기쁨으로 가득한 삶은 물질 만으로 안 된다. 고가의 아파트 몇 채를 남겨줘도 안 된다. 주님의 사랑 안에 살아야 기쁘고 행복하다. 이것이 복음이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은혜를 간직하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이 기독교인의 인생이며 그 때 참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에 이른다. 

우리가 올 해 매주 찬송가 하나씩 외우기 운동을 하는 것도 사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주님을 잊고 세상 풍조와 욕심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죄다. 믿음은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이다. 이를 위해 아주 좋은 것이 찬송가를 외우는 것이다. 찬송가는 모두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외워지지 않는 찬송가를 외우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 자체가 우리 자녀들에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모습을 물려주는 것이다. 


4)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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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그 나이에 맞는 상처를 받으며 산다. 그 상처가 우리 자식을 힘들게 하고 가족과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불쌍히 여기며 상처를 덧내는 관계가 아니라 치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복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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