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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4-1) - " 말씀으로 다시 사는 부활의 은총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1-04-23 (금) 08:59 2년전 544  

본문) 욥 33:14-18,23-28, 고전 15:51-58, 요 11:17-44


“지선아 사랑해!”란 책을 쓴 한동대학교 이지선교수가 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다 술 취한 기사가 운전하는 대형트럭이 뒤에서 추돌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오빠가 먼저 깨어보니 여동생의 상반신에 불이 붙어있었고 급히 옷을 벗어 불을 끄고 정신없이 안고 나오는 순간 차가 폭발을 했습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수없이 많은 피부이식수술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숟가락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아니라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답니다. 외계인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려다 순간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살려놓았으면 대책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나에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그 계획을 저도 좀 알면 한 번 다시 살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동안 하나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았던 시대의 절망(욥33:14-18, 23-28)


구약본문 욥기33장에서 ‘엘리후’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의 좁은 시각을 넘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화의 통로’(욥33:14-16절)라고 말합니다.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C.S. 루이스) 결국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것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또한 고난이 더 큰 고통과 화를 막는 예방수단(욥33:17-18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악한 일과 행위에서 돌이키시고, 그의 마음을 유혹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 생명을 하나님의 심판대(칼) 앞에 서지 않도록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나아가 고통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욥33:23-27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와 ‘구속자’를 통해 고난당하는 자의 고통을 아시고 억울한 고난을 당치않게 하시며 “하나님이 자기를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구원해 주셨다”고 외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해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하시고 새롭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새 삶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고난당하고 있는 욥에게 침묵하고 계십니다. 숨어계십니다. 나타나 말씀해주고 계시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우르의 아브람’에게는 고비마다 나타나 말씀해 주신 하나님은 ‘우스의 욥’에게는 나타나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욥의 고통이고 절망입니다. 욥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으면 하나님이 친히 욥에게 나타나셔서 그 이유와 목적을 말씀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망의 질고 속에서도 기뻐하며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 찬송할 것입니다. 욥의 항변은 다름이 아닙니다. 제발 내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은 숨어계시지 말고 직접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친히 육신으로 오셨습니다(요11:17-44)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분,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던 분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고 증언합니다.(요1:1) 그동안 하나님은 간접적으로 그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분명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구원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참 생명을 얻는지를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처럼 길을 가르쳐주는 분이 아니고 자신이 길이십니다. 진리를 가르쳐주는 분이 아니고 그의 삶이, 인격이 진리 그자체이십니다. 참 생명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요11:17-44의 말씀을 보세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두 자매는 예수께서 오라비 곁에 있지 않아서 죽었다고 말하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어도 다시 산다고 하십니다.(17-23) 마르다는 당연히 마지막 날에 살 것을 믿는다고 했고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마지막 날 뿐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자신을 통해 다시 산다고 하십니다.(25절) 그리고 나서 주님은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마리아, 마르다, 많은 사람들은 목전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고 마지막 종말의 때에만 이루어지는 미래의 사건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를 통해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지평을 넓혀주셨습니다. 주님 오시는 마지막 때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도 부활의 은총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먼저 무덤의 돌문을 열어달라고 하십니다.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돌문만은 사람들의 힘을 의지하실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음성(말씀)이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에게 들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43절)” 열린 돌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주의 말씀, 그의 음성이 들려야 놀라운 새 창조가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자’를 치유하실 때(막7:31-37) 청각장애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손가락을 양 귀에 넣어”서 ’손과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까? 열려진 무덤을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43절) 드디어 주님의 말씀이 죽은 나사로의 귀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갑니다. 말씀대로! 말씀을 따라! 나온 것입니다. 나사로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이 얼마나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는지 아십니까? “수족을 동인채로”(44절) 나왔습니다. 주님이 그냥 나오라고 말씀하신대로, 말씀하신 그만큼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더하여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44절)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무엇입니까? 죽은 이후에나,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그 미래의 날에만 경험할 수 있는 사건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영광스런 부활의 은총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5절)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선포된 말씀을 믿음으로 수용되는 곳,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곳에 사망권세, 죄의 권세, 어둠의 권세이기고 사는 새로운 부활의 삶이 있습니다. 죽었던 심령이 살아나고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들은 물러가고 어떤 고난도 이기며 죄악의 유혹을 정복하고 어둠의 권세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나팔소리처럼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고전15:51-58)


고전 15장은 부활 장(章)입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 이루어졌던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예수님 오시는 날 우주적으로는 ‘새 하늘 새 땅’으로, 전 인류는 ‘몸의 부활’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질병, 우환질고, 고난으로부터 구원받고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순간적이고 제한된 삶을 넘어 영원하고 영광스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곧 사망권세 이기고 영생 얻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처음 이 땅에서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성취될 것입니다.


어떻게 마지막 날에 모든 믿는 자들이 부활에 이르게 됩니까? 성경은 “마지막 나팔에”(51절), “나팔 소리에”(52절)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고 부활에 이르게 된다고 하십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하셨을 때 나팔소리가 들렸습니다.(출19:19)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할 때 하나님은 나팔로 명령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민10:2) 새해가 왔을 때도 나팔로 새해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강림을 말씀하시는 살전4:15에서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큰 음성’이요 그의 ‘명령’이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소리’요 ‘신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매우 급하고 중요한 그의 명령을 말씀하실 때 들리는 소리가 ‘나팔소리’입니다. 악기 중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게 나팔이 아니겠습니까?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육체들을이 다 알아듣도록 가장 큰 소리로 ‘깨어 일어나라’고 말씀하는 명령이시겠지요! 하나님은 처음 창조의 날에도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 창조하셨듯이 마지막 날에 이 온 우주를 다시 재창조하시는 날도 그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시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 몸을 부활의 몸으로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보석으로 치장되고 순금으로 포장된 도로가 포장된 물리적으로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주의 말씀이 세상의 혼란한 소리들을 압도하여 나팔소리처럼 또렷이 들려지는 곳, 그 우렁찬 말씀 앞에 모두 엎드려 순종하고, 그 말씀으로 온 세상이 다스려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주의 말씀이 실현되고 그 말씀이 우리 몸이 되고 우리 삶이 되는 곳이 새 하늘 새 땅, 새 부활의 몸이 아니겠습니까?


이지선 교수이야기를 하고 마치려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고 싶습니다.” 몸부림치며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의 응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함께 찬양했던 성가대 찬양이 마음에 감동되지 않습니다. 늘 은혜 받았던 목사님의 말씀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오셔서 “사랑하는 딸아” 부르며 기도를 시작했답니다. 자기 자신도 사랑이 안 되는데 하나님이 이 딸을 사랑하신다고 기도해주십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목사님을 통해 마치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두 가지 약속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세상가운데 세우겠다.” 그리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다.” 지금 이지선 자신도 아무 소망이 없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자신을 창조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시라면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순간 생겼답니다. 모든 절망, 낙심, 모든 세상의 환경, 내게 닥친 죽음의 현실을 뛰어 넘어 너무도 확실하게 “내가 너를 반드시 세상가운데 세우겠다. 그리고 너를 통해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진 것입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섰습니다. 절망과 낙심과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약한 자들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사람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그릇을 붙여놓듯이 피부이식의 흔적으로 가득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위로를 받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이들의 희망이 되고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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