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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2-2) - " 하나님께 맡긴 시간 " / 이혜숙 목사 >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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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2-2) - " 하나님께 맡긴 시간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1-04-09 (금) 20:01 2년전 527  

본문) 민 9:15-23   행 26:1-23   요 9:1-1

 

  광야에서 처음 맞이하는 유월절에 주의 말씀에 따라 성막이 세워졌습니다. 그 성막 위를 구름이 덮습니다. 낮에는 구름이던 것이 밤이 되니 불같이 보입니다. 성막은 사람들이 관리하지만 구름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사람들은 성막을 걷어 이동합니다. 구름이 정지하는 곳에서는 성막을 펼치고 머무릅니다.

 

  민수기 9장 말씀에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19절)는 1번,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18, 18, 20, 20, 23, 23, 23절)는 7번 반복됩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서 명령에 따라 행진하고 머물며 성막과 장막을 걷고 펼치는 백성들의 활동을 세세히 보여줍니다. 언제 구름이 떠오르고 머물지 모릅니다. 22절에는 구름이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진영에 머물다가 떠오르면 행진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온전히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명령에 따라 살 수 있을까요? 생명과 가족과 재산을 전적으로 여호와께 맡기고 살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자손이나 오늘의 우리에게 불확실성이 연속되는 삶입니다. 

 

  요즘 주식이나 펀드나 전자화폐 등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과 땅을 사 모으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돈을 벌려는 데 있습니다. 그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투자인지 투기인지를 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언제 뜨고 머물지 모르는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을 맞춥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은 구름이지만 주체는 여호와입니다. 땅, 집, 주식, 전자화폐를 사고 파는 행위는 하나님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을 냅니다. 목적은 돈입니다. 부자 되는 것이고, 편히 살려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을’로 살면서 속상한 일도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야 했고, 가난한 부모님을 보면 안타깝지만 마음속으로는 한심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총명하지 못한 DNA 탓도 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한 운명 탓도 해 봅니다. 그래서 요즘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무언가를 합니다. 영끌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모찬스를 사용해 어려서부터 온갖 지원을 다 받으며 비싼 학원 다니고, 내로라하는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한 청년들에게 “땀 흘려 번 돈이 값진 것이다.”라고 훈계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부제:한국 실업의 역사)는 제목의 책도 있습니다. 계약직이고 최저임금이라도 좋으니 취직하고 싶어 합니다. 2021년 관공서의 계약직 직원들이 받는 월급은 180만원 가량 됩니다. 시급제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비교적 많은 액수의 안정적인 수입입니다. 이런 청년들이 180만원을 3년 간 모으면 경기도지역 아파트 1평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끌해서 뭔가를 시도합니다. 희망을 판돈으로 내건 도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영혼이라도 팔아 희망을 사려고 할까요?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 청년은 이웃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 저가 맹인으로 태어났을까?” 예수께 묻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대답하십니다. “죄 때문이 아니다.” 놀랍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불구가 되고 몸이 아픈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고통이나 불구라는 증상이 나타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랍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나면서부터 맹인인 이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걸 말고는 없었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해도 참아야 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에 의하면 그가 이미 장성하였으나 독립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청년은 언제나 밤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눈으로 햇볕을 볼 수 없는 어둠이었고, 희망이라는 것을 꿈꿀 자격이 박탈된 어둠입니다. 그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청년에게 예수께서 다가가셨습니다. “나는 빛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은 낮이다.” 예수께서 눈 먼 청년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 빛을 본 청년에게 낮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나면서부터 맹인이던 청년에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빛이, 낮의 시간이 불현 듯 찾아왔습니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찾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빛에 노출되고 하나님의 시간을 만나기 바랍니다. 하루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걸어가고 멈출 때 만나를 먹고, 물을 마시는 광야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개인의 생활을 맞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이들은 불안정한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할 희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따라서 나아가고 멈춰서기를 계속하였더니 어느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영끌하는 젊은이들처럼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사는 이의 희망은 현실로 바뀝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희망을 사고 싶은 어둠의 시간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자기가 본 빛을 증언합니다. “예수라는 자가 수치스러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 제자라는 자들이 예수는 부활했고, 예수가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야라며 선전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배우고 믿었던 율법으로 예수의 무리를 벌주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무리를 잡아오려고 가던 길에서 불현 듯 부활한 예수를 만납니다. 빛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날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한 시간에 맞춰 생활하려고 합니다.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 일이라는 우리의 시간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무색하게 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행동은 하나님의 시간에게 잠시 비켜있으라고 요구합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주었기에

사람들은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그러나 네가 팔에 꽃을 한아름 안고, 늦게,

머리칼이 젖은 채, 같이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바다는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4월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의 아침도 지났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시작과 끝이 있지 않으므로 지금도 계속되는 빛의 세계입니다. 겨울을 지난 대지가 죽은 듯이 보이던 것들로부터 어쩜 그리도 선명한 빛과 색의 축제를 벌이는지 하나님의 시간에 눈뜨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이 되니 붉은 녹을 뒤집어 쓴 채 자기의 시간을 증명하려는 듯 서 있는 세월호가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바다는 황량해지고 바다는 깊은 어둠이며 어둠의 깊은 곳으로부터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깊은 침묵 앞에 서 있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묻던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라고 답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지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 사이에 가로막힌 구름과 광야에서 성막 위를 덮은 구름의 어둠은 보호입니다. 불은 소멸이 아닌 생명을 품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둠과 침묵을 지난 후 부활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십니다. 희망을 품고 수고하는, 어둠에 있으나 절망하지 않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시기 바랍니다.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청년은 어두운 눈에 진흙을 발라 더 깊이 빛을 가리고 실로암으로 갑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를 보여주고 성전 뜰로 들어가 예배할 자격을 얻습니다.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동기는 앞을 보고 싶은 희망의 간절함 때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주께서 이미 부활을 펼쳐놓으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를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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