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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1-1) - " 예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미래 " / 부활주일- 씨뿌림주일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21-04-01 (목) 11:14 2년전 692  

본문) 눅 23:50-24:12, 출 14:15-31, 계 1:10-18

 

기독교 신앙 영역에는 성격상 그 메뉴들이 다양하다. 창조신앙, 언약신앙,구속신앙, 해방신앙, 화육신앙,고난신앙, 부활신앙, 종말신앙, 재림신앙,영생신앙 등등이다. 그 중에 가장 최고봉에 있는 신앙을 말하라면, 무엇을 말할까? 역시 부활신앙이다. 

 

그 까닭은 나사렛 예수께서 부활하시면서, 인간은 자신들의 최후의 경계선인 죽음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믿음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를 통하여 부활이란 실체를 확인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 말은 인간은 예수의 부활을 접하면서, 영생(永生)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부활의 실존(實存)은 언제부터 였을까? 창조 질서의 핵심부분으로 존재하였다고 본다. 적어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제거된 에덴에서는 부활의 찬란한 빛이 가득한 곳이었을 것이다(창1:2참조). 즉, 그곳 에덴에는 죽음이란 어둠이 감히 엿볼 수 없어서, 아담 부부가 아무런 불안 없이 해방된 삶을 한껏 누리며 살았던 무대이었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과 온갖 생태계는 죽어서 보다 영광스러운 변화된 몸으로 다시 사는 곳으로 단장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언제부터 인간의 마음에서 창조주의 부활의 밝은 빛이 사라진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첫 사람들이 에덴에서 추방되고, 사전에 예고된 죽음이란 공포의 먹구름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였다(창2:17). 게다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이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로 인하여 영생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아예 차단하시는 바람에(창3:22-24참조), 인간은 희망이 아닌 암담한 미래의 절벽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은 길잃은 존재가 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분별력 상실은, 인간이 ‘죽음은 곧 마지막이며 끝장이다’는 도그마(dogma)에 떨어진 일이었다. 그 바람에 죽음은 인간에게서 가장 두려운 실세가 되었고, 인간을 가장 절망하게 만드는 주체가 되었다. 죽음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주눅 들고 비겁해지며 소심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히2:15). 늘 어둠과 저주와 불안의 먹구름의 종으로 살아온 것이다. 평화와 영생을 주는 부활의 세계가 여전히 엄존한대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인생이 되었다

 

그 바람에, 마귀와 어둠의 권세들이 이 죽음이라는 허상을 부리는 주체가 되어, 양심의 가책으로 허약해진 인류를 마음껏 유린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대가 지속되었다. 언제까지였나?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그 치명적인 장벽을 깨뜨리신 때까지였다. 그러기에 예수의 부활은 인간의 닫힌 눈과 불행한 마음을 어둠과 절망의 늪으로부터 건져준 최고의 복음이다!!!

 

그렇다면, 그 부활의 실체를 나의 것으로 접목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믿음(신앙)이다(요1:12-13참조). ‘부활이 있음’에 대한 믿음, 예수와 함께라면 죽음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믿음, 그리고 그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첫 열매라는 믿음이 우리가 부활의 실체를 접하게 하는 열쇠다(고전15:20). 바울의 말들을 참조하면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고전15:16-18).

 

우리는 이제 이 부활의 실재(實在)에 눈이 떠야한다. 지금도 부활의 영은 우리 안팎에서 매우 활발하게 일하신다. 이제 창조 때부터 존재한 부활이 인간을 구원하는 부활로의 전이(轉移)로 그 민낯을 드러나기까지, 부활이 어떻게 현존했는지를 살펴보자. 

 

o 복음서 - 증인들을 통해서 확인된 예수 부활

 

1) 본문은, 빌라도에 의해서 시체로 매장(埋葬)되었던 예수를 더 이상 가두어 둘 수 없어서 빈 무덤이 되어야만 했던 놀라운 현실을 전한다. 본래 그 무덤은 당시 국회의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 시신을 위해 제공한 것인데(눅23:53절), 장례 후 사흘째 새벽에 두 명의 하늘 천사들이 그 무덤을 방문하면서, 그 무덤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구원의 희망을 던져주는 빛을 주는 곳이 된 것이다. 이유는 그곳에 누우셨던 예수는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망으로부터 일어나(하나님이 일으키심), 그곳 무덤을 ‘빈 곳(허망한 곳)’으로 만드시고 세상으로 나가셨기 때문이다. 

 

2) 이 빈 무덤의 충격은 그곳을 찾은 여인들에게는 사랑하는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차원에서의경악(驚愕)스런 순간이었지만, 그러나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환희(歡喜)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무덤이 빈 무덤이 되었듯이, 아담 이래 인류를 줄곧 괴롭혀왔던 죽음의 정체도 이제는 허망(虛妄)한 것이 되었으며, 죽음이 왕 노릇하던 시대 역시 끝났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런 기쁜 소식이 또 어디에 있는가!!!

 

3) 그 <죽음의 죽음>의 시대가 열렸음을 생생히 목도하면서 확인해 준 인물들이 바로 본문에 나타난 다양한 주인공들이다.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과 제자 베드로(12절)였다. 이들은 물론, 처음에는 ‘죽은 예수’를 찾았다(3절). 비록 생전에 예수의 부활 예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아예 믿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산 증인도 되었고(10, 눅23:55참조), 그 죽음의 세력이 예수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낼 수 없었음을 확인하였던 증인도 되었다(24:2-3). 이것은 인간들이 죽음의 한계를 넘어 생명의 부활에 눈이 뜨는 인류사적 순간이었다! 

 

4) 천사들의 힐난(詰難)과 증언도 뼈아프다(5-7절). 그 증언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세 차례 예고(豫告)말씀을 회상시키는 것이었는데(마16:21,17:22-23,20:17-19 참조), 그들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의 첫 수난 예고 때, 베드로의 강한 반발과 저지가 있었는데(마16:22), 이것은 부활은 못보고 죽음만보고 살아온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실상을 대변한모습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이 사전 예고는 예수께서는 생전에부터 이미 부활의 세계를 내다보고 계셨고, 이제는 당신이 그 세계를 먼저 열어 가실 것을 예고하셨음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o 출애굽기 - 하나님의 백성의 조건이 된 죽음과 부활의 경험

 

1) 본 홍해 도강(渡江) 사건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민족적 차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준 기록이다(14:31참조). 그들은 홍해 도강이라는 현장 체험을 통하여, 온 백성이 집단적(集團的)으로 죽음과 함께 다시 살아남의 체험으로 여호와의 큰 능력을 보았고, 경외하게 되었으며, 믿게 되었음을 전한다. 

 

2) 도강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피압박자를 누르고 자기의 노예로 붙들려는 억압세력에게는 흑암과 죽음을 선고하시고(20절), 그런 억압과 속박에서 해방과 자유를 구하며 찾는 무리들에게는 구원과 해방을 베푸시는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심을 확인시켜 주셨다(20, 30절). 그런데 이때 심판의 갈림길로 사용된 지표(指標)가 바로 홍해(紅海)라는 바다(물)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 홍해의 물을 통하여 대적자들에게는 심판과 정죄로, 좇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부활의 세계로 각각 인도하셨다. 

 

① 홍해 도강 이전의 이스라엘과 도강 이후의 이스라엘은 다르다! 그들은 도강하면서 이전의 애굽에 매달려 살아왔던 자신들이 죽는 체험을 했고, 도강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되는 백성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홍해를 통한 죽음과 부활 사건 위에 선 민족이 되었다.

② 그러기에 바울은 이 도강 사건을 집단(集團) 세례 행위로도 보았다(고전10:1-2 참조).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렇게 홍해 도강을 집단적 세례로 본다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홍해 도강 사건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탄생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의 물세례를 통한 죽음과 부활 경험의 전거(典據)가 됐기 때문이다(롬6:3-5참조). 그렇다. 우리가 받은 세례에는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다시 살아난 부활의 표징이 있음을 기억하자.

 

o 계시록 -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흔적을 지녀야

 

1)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현재 어디에 계시며,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연계되어 있는지를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11-12절) 

2) 천상의 주(主)이신 분이 자신을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라고 밝히신 것은, 그가 이전의 주(主)일뿐 아니라, 지금과 영생(永生)의 주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17절). 

3) 동시에, 장로 요한을 그의 나라로 부르셔서 땅에 있는 고난당하는 당신의 교회들에 대한 관심사를 전하게 하시는 모습은, 주께서 하늘에 오르셨어도 우리 세상과 당신의 몸된 교회들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미래를 대비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전하신 것이다(11절 참조). 

 

4) 특히 지금의 당신을 ‘전(前)에 죽었었던 이’로 밝히는 것은 매우 귀중한 소식이다(18절). 그것은 하늘 영생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보전하신 체로 하늘에 계심을 밝힌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죽음의 흔적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이었음도 의미한다. 동시에 죽음과는 상관없는 그 나라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하고도 부활을 통해 이겨내신 분으로 존재하신 일은, 앞으로 과연 어떤 인물들이 영원한 심판대인 하늘 보좌 앞에 서게 될 수 있을 지를 미리 예고하신 내용이라고 보인다. 예수와 함께 죽임 당함의 흔적이 진정한 빛을 발할 것임을 엿보게 한다. 

 

o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부활 세계에 눈이 떠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을 견인하고자한 일임을 믿어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고 우리의 것이 되게 해야만 한다. 특히 개인 차원의 부활만이 아니라, 집단 공동체 차원의 부활 역사에도 우리의 눈이 떠야 하겠다. 

 

아직도 세상과 인류는 죽음이라는 허상의 노예들로 살고 있다. 그것의 허상을 벗겨주고, 부활의 빛으로 세상을 구원해낼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그렇다. 세상을 이길 믿음과 평화도, 그 부활의 세계를 보고 보유하고 누리고 사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확실한 부활신앙의 사람들이 되길 빈다. 예수부활의 능력을 한 평생 풍성히 즐기고 누리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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