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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4-1) - " 무얼 좀 잡았느냐 " / 청소년 - 교회교육주일 / 허재규 목사

관리자 2020-04-30 (목) 08:23 3년전 1142  

본문) 사 63:7-14, 시23,  행13:26-35, 요 21:1-14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시편 23편 1-2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같은 곳이 바로 갈릴리 바다입니다. 실제로는 바다가 아닌 거대한 호수입니다. 세

계적으로 물이 가장 맑은 곳이랍니다. 그리고 해수면 보다 209미터 아래에 있는 육지 호수인

데 두 번째라고 합니다. 가장 낮은 곳은 사해라고 합니다. 사해는 시편의 말씀과는 정반대입

니다. 말 그대로 죽은 바다,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진이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거대

한 호수입니다. 어업이 아주 발달한 곳이었다네요. 

 

그런데 여기는 디베랴 바다라고도 합니다. 세계의 모든 땅과 바다가 로마제국의 것이 된 시대

가 티베리우스(디베리우스) 시대입니다. 디베랴는 티베리아스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티베리우

스는 세계의 모든 땅과 바다를 자기 편, 로마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욕망은 맑고 깨끗한 

갈릴리 바다마저 자기 편으로, 자기 것으로, 로마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그를 따

르던 신하들의 충성심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티베리우스, 갈릴리 바

다의 다른 이름, 티베리아스에서 그 연관성을 상상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이 있으

면 내 것으로,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죠. 좋지 않은 것을 내 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좀 비정상이겠죠. 

 

요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제 “코로나19 감염

병과 함께 살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보에 몇 가지 써놓았습니다. 그 중에“걱정은 정

상입니다.” 2주 전까지 만해도 코로나19 감염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빅데이터 

상으로 78%(?)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염자 수가 두 자리 수로 줄면서 65%(?)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걱정이, 긴장이 좀 풀어졌다고 하는데, 이럴 때 일수록 외출하실 때 꼭 마스크 하시

고, 손 씻기 잘 하시고, 미심쩍다 싶으면 입었던 옷 다 벗어서 세탁하시고, 샤워하세요. 어디 

다닐 때도 앞 뒤 옆 거리를 두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

게 우리 생활 습관을 바꿔 놓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은 누구 편일까요? 

 

한 때 신종바이러스다, 우한코로나다, 코로나19다 하면서 명칭 가지고 말이 많았지요. 지금은 2  

세계적으로 코로나19(COVID-19)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우한코로나”라고 주장하는 사람

들이 있었습니다. 우한 지역에서 먼저 발생했다고 “우한코로나”라고 하면 우한 사람을 차별

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해도 끝까지 “우한코로나”라고 한 사람들이 있었

지요. “코로나19”를 “우한코로나”라고 부르면서 자기 편으로 만들어 볼려고 했던 것입니

다. 그러나 그들 뜻대로 그들 편이 아니었지요. 그럼 누구 편이었을까? 한치 앞이 안보이던 

도시가 맑아졌다고 하니, 네 편, 내 편도 아닌 지구 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

다. 공장이 멈추니까 하늘이 맑아졌답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로마의 군주 이름 냄새가 나는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는 누구 편일까요? 영원히 여러분 편입니다. 

 

오늘 이 바다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여기에 

누군지 모를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다른 두 사람은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모여서 

앞으로 일을 심각하게 논의했겠지요? 각자 한 마디씩 했을 터인데,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다들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거기에 두 사람, 여러분도 끼어 있습니

다. 갈릴리 맑은 바다에서 어업을 해서 큰 이익을 내 보겠다는 것이지요. 약간 비틀어 말하자

면, 머니머니(money)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더라! 돈 편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별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섰는데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 였답니다. 그런

데도 못 알아봅니다. 완전히 돈 편이 되어서 돈에 돌아버린 것일까요? 돈에 눈이 멀면 예수가 

안보인다던데, 정말 그런 것일까요? 

 

“얘들아, 뭘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물고기를 좀 잡아야 돈이 되는데, 허탕을 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봐, 그러면 잡을 것이야.” 제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물고기가 그물에 너

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 때에, “예수가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

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하고 말합니다. 예수가 사랑하시던 제자, 이 표현을 두 사람에

게 씁니다. 나사로와 요한! 대게 요한이라고 하는데, 나사로일 수도 있고, 여러분 일 수도 있

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어야 합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다.” 다른 말로 들으면 ‘저분은 내

편이다.’ 

 

이쯤이면, 이 바다에서 어부들을 부르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때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

데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거기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아라” 그 

때도 많은 고기 떼가 걸려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그분이 주님이시다.” 

 

3  

‘내 편이다.’ 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눅5:8) 당신은 내 편이 아닙니

다. 나는 당신 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이지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

겠다.” 이 말은 내 편이 되어다오. 내 편을 만들어다오. 이런 말입니다. “나를 따라오너

라” 다시 말해서, “내 편이 되어라” 이것이죠? 

 

당시에 예수 편에 선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있었을까? 한 참 후에 이것 저것 물어보고 따져

보고 자발적으로 겨우 들어온 사람이 니고데모이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밤에 몰래 왔잖아요. 

당시에 예수 편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예수 땜에, 베들레헴과 그 가까

운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 사내 아이들은 모조리 죽게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이 일을 예수께서 모를리 없었겠죠? 예수께서는 그 일을 얼마나 자책하셨을까! 예

수께서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겠지요? 아무도 자기 편이 되어 주지 않을 때 어

부들에게 내 편이 되어 달라! 예수 편이 되어서 예수를 따라 다닌 사람들이, 이제 예수 편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나타내셨는데, 오늘은 알아보지도 

못하고 물고기만 잡고 있습니다. 그것도 허탕입니다. 예수께서 보시기에 아마도 속 터질 일입

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대 놓고 내 편이 되어 달라고 했을까요? “그 아

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

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

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

합니다.” 이런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

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골1:15-22)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은 내 편이다. 그것을 알아버린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

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그를 정죄함으

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와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 보이셨습니다.”(행13:26-31) 

 

이 사람들은 지금 예수 편입니다. 한 때는 문 닫아 걸고 있던 사람, 한 때는 갈릴리 바다로 

물고기 잡아 한 몫 잡으러 갔던 이 사람들이 예수의 증인입니다. 

 

예수의 증인이 예수 편입니다. 편 갈라서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의 편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에 무얼 쥐고 계십니까? 옆 사람 손 잡아봅시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려

운가요? 그럼 좌우 옆 사람을 한 번씩 볼까요? 네 편입니까? 내 편입니까? 네 편도, 내 편도 

아닙니까? 그럼 예수 편이겠군요? 여러분! 성경을 잡아 보세요. 여기에 예수 편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김씨, 이씨 박씨, 윌리엄씨, 그리고 조나단씨! 어느 누구나 다 예수 편이 될 수 있

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감염병이라는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골짜기 이 편에서 인종 차별

하면서 저편으로 펀치를 날립니다. 반대편에서 또 펀치를 날리는 날에는 큰일 납니다. 이런 

때야 말로 예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꼭 잡으세요. 그러면 같은 동포가 됩니다. “아

브라람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동포가 뭡니까? ‘한 포대기’라는 말입니다. 코로나19 골짜

기에 한 포대기를 둘러야 합니다. 예수의 포내기를 둘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편이면 다 같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 같은 동포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은혜에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들을, 마치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편히 쉬게 하시지 않았던가?" 

주님께서 이렇게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사

63:14) 

 

하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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