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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2-2) - " 차원이 다른 부활의 세계 " / 김영봉 목사

관리자 2018-04-05 (목) 23:18 5년전 2573  

본문) 민 9:15~23  요 9:1~11 행 26:1~23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통 3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2차원의 세계도 있을 것이고 4차원의 세계도 있을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평면 이동이 전부인 줄 알고 떼를 지어 이동하는 개미들을 사람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돌을 놓아 개미들의 진로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장애물을 설치해서 우회시킬 수도 있습니다. 길을 터놓아서 지름길로 직행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출애굽기 본문에서 진을 이루어 이동하는 출애굽 백성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로는 가나안을 향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위에서 뿌려주신 것입니다. 이들의 지휘부라고 할 수 있는 성막 위에 구름을 두어 행진을 멈추어 머물게 하십니다. 이동해야 할 때는 구름기둥을 떠오르게 손을 쓰십니다. 위에서부터 손을 쓰심입니다. 출애굽 백성들은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 그들의 세계관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임한 신비한 신호를 받아들입니다. 이 신호를 통해서 위에 여호와 하나님과 비로소 소통을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은 이동하기 적당한 때를 구름기둥 신호를 통해서 전달하십니다. 땅 위의 이스라엘은 순응합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전달됩니다. 받아들입니다. 이 구도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이고 서로 다른 차원이지만 접촉과 소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성막 위를 눈여겨 바라보는 백성으로 훈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신호를 이해하는 눈이 점점 밝아집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쏠려 점차 의존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앞으로 신실하게 사랑의 책임을 다하셔서 하늘의 복을 계속해서 부어주십니다. 시야가 좁고 어두워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위에서 전체 여정을 한눈에 내려다보시며 적절한 길로, 적절한 때를 맞추어 신호를 보내시며 이끄십니다. 정확하게, 절묘하게 이끄십니다.  이 훈련과 체험을 통해서 노예백성이 하늘백성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차원을 달리하는 변화가 이루어져 갑니다. 은총 받는 백성, 관심 받는 백성, 진정 복 있는 백성으로 자라갑니다.   

 

구름기둥으로 신호만 보내던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 세상이 놀랐습니다. 맹인도 놀라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2-33)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자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고백입니다. 이 맹인은 육신의 눈만 밝아진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일까지 깨달아 아는 영적인 눈도 밝아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으로 주님께 묻습니다.“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예수께서는 단호히 말씀해 주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예수님은 이 맹인을 접촉점으로 삼았습니다. 하늘의 차원을 인간 차원의 세계에 알리는 매개로 삼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체적입니다. 구약에서는 단지 구름기둥이라는 신호로 하늘이 개입을 했지만 신약에서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세상에 등장을 하셨습니다.  목소리도 직접 들을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는 구체적인 개입이십니다. 맹인이 자기에게 임한 하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맨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대로 알리기 시작합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2-33)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예수님과 맹인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차원으로 인간세상의 차원을 내려다 볼 때는 어두움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나라는 광명 자체입니다. 이 차원에서 오신 예수님은 의당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요9:5). 흑암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인간에게 광명 세계를 소개하고 알리는 가장 극적인 방법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맹인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일을 알리는 것입니다. 눈을 뜬 맹인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감지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눈을 뜬 맹인은 예수님을 알리는 선교사입니다. 하늘의 차원을 소개하는 전도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참여하게 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하늘의 차원에 잠시 머물다 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유대인들이 낙원이라 여기는 셋째하늘에 다녀온 사람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합니다(고후 12:4). 바울이 본 차원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다르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이 하늘의 세계를 땅에 알리기 위해서 바울을 하늘로 들어 올려 경험해보게 하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다가 완전한 세계를 맛본 사람은 그 세계를 동경하고 꿈을 갖습니다. 예전처럼 땅에 만족하며 살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준비하게 됩니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 9개월간 머물러 있습니다. 이 기간은 어머니 뱃속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고 풍요한 세상에서 살기 위한 준비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땅위의 삶은 성경이 말씀하신 바처럼 이 세상을 넘어선 더 충만한 세계, 햇빛이 필요 없고 눈물이 없는 그런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정보인 성경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위의 삶은 ‘임시적인 장막집’에 머무는 것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세계에서의 삶은 ‘영원한 집’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 한번 사는 ‘일생’이라고 한다면, 성경은 ‘영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영생은 마치 태중의 아이가 태중 밖의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알 수 없는 세계를 바울을 사용하여 알리십니다.

 

이런 보다 나은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우리들이 높고 고상한 기준을 따라서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영원이 있다면, 지금 살아가는 삶의 순간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태중의 아기가 태중에서 하루하루 지내며 성장하는 그 순간순간이 다음 세계의 삶을 위한 꼭 필요한 준비였던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곧 영원을 위한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의 의미가 바뀝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상실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가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잠시 이 곳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면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바울처럼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았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분명히 다르게 살 것입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론합니다. 현실도피를 위한 구차한 변명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고 합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죽은 줄로 알았던 분이 나에게 직접 나타나 분부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존재를 몸소 겪은 것입니다. 이 체험만도 놀라운데 그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보다 구체적인 하늘의 정보를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7-18)는 것입니다. 

자신은 삶의 목적이 주님의 분부 때문에 분명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는 것, 즉 하늘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하늘의 기업에 참여하도록 증인으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태아의 상태인 1단계에서 출산되어 다채로운 세상 경험을 하게 되는 2단계로 도약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경이롭고,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2단계에서 다음 단계인 3단계로, 즉 이 세상의 삶의 공간에서 하나님 나라로 진입한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정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정보를 상세하게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3단계의 나라인 하나님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해야 할 것은 1단계인 태아적 삶도 아니고, 현재의 단계인 2단계의 삶도 아니고, 다음 단계인 3단계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부활로 증거 된 더 나은 차원의 세계를 꿈꾸며 전파하는 삶이 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더불어 생명의 완성이 이루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행복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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