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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1-2) "죽어서 이기게 하시는 부활의 은총"/ 김진수 목사

longbeach 2018-03-30 (금) 17:42 6년전 2732  

본문)  출14:15-31/ 계1:10-18/ 눅23:50-24:12  부활주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에는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가을에 땅에 떨어진 씨는 조용히 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그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의 싹을 틔웁니다. 우리는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생물' 입니다. 이 세포들은 태어났다가 죽고 또 새로운 세포들이 생성되어 생명을 이어갑니다. 산다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포들은 생물체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포가 어떻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느냐고요? 놀랍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폽토시스(Apoptosis)” 현상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답니다. 세포가 노화에 이르거나, 몸에 더 이상 존재할 필요 없는 잉여세포가 되거나, 세포가 손상을 입거나 훼손당해 죽음에 이르게 될 때 세포는 스스로 자신을 죽여 다른 세포를 살리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다른 세포의 양분이 되어주는 것이지요. 스스로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으면 암세포가 되어 다른 세포를 죽이고 온 몸을 죽이고 자신도 죽습니다. 그러나 세포가 때가되어 스스로 죽으면 다른 세포를 살리고 온 몸을 살립니다. 

     

죽어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출14:15-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폭력적인 힘으로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애굽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물질의 풍요나 쾌락에 빠져 사는 가나안 땅에 있는 나라와 같은 또 하나의 나라를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이웃을 살리고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의 지리적인 이동이 구원이 아니듯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공간적인 이동이 믿는 이들의 구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새로운 백성, 전혀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타락한 백성을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그의 백성을 억압하고 결박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사 바로의 노예로 살고 있는 그 백성을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바로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로, 바로가 섬기고 있는 우상들을 심판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결박하고 있는 애굽과 바로로부터 그의 백성을 건져내셨습니다. 장자들이 죽는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장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대신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셔서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대신 감당하셔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 피조물로 만드시는 전부가 아니라 첫 과정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 다음에 하신 일이 있습니다. 홍해 도강의 사건입니다. 홍해 도강은 그의 백성들을 결박하고 종으로 삼았던 세력들을 대항하여 싸워 이기고 정복하는 과정이요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은 것으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 이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권세에서 건짐 받은 것으로는 안 됩니다. 마귀를 정복하고 싸워 이겨야합니다. 

하나님은 혼돈의 원시 바다에 침수되어있던 땅을 건져 올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살 수 있는 마른 땅, 육지를 만드셨습니다.(창1:2, 9-10) 혼돈의 물결은 항상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한 짝을 이루는 출애굽사건이 하나님의 백성을 결박하고 억압하는 애굽의 권력에 대한 심판이라면 또 다른 짝, 홍해 도강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막는 하나님에 대한 저항세력을 격파하고 정복하신 사건입니다. 출애굽은 했지만 홍해를 건너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정치적, 신체적, 정신적 해방과 자유가 곧 우리 구원의 성취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자유와 해방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혼돈세력, 저항세력인 죄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서 그것을 깨뜨리고 정복하는 일입니다. 어떻게요? 우리 앞에 놓인 홍해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저 죽음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갈2:20)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우리의 대적인 홍해를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 옛사람이 죽어야 홍해를 건 살 수가 있고 우리 대적 애굽의 군대를 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완성은 부활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미완성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죽은 자를 찾는 제자들(눅23:50-24:12)

     

부활은 의미나 상징이 아니라 이 역사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의로운 사람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이 제공한 새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 온 여자들은 향품을 준비하여 안식 후 첫날 아침 무덤을 찾아갔고 돌문이 열려진 것과 주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보았고 천사들을 만나 예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5절) 여인들조차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로마군대가 밤새워 파수보고 있는 가운데 몇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육중한 돌문이 옮겨져 있었고 철저히 인봉된 무덤 안에 둔 예수님의 시체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또한 여인들을 통해 소식을 들은 베드로는 즉시 달려가 직접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주님이 입으셨던 세마포만 놓여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죽은 예수, 과거의 예수, 역사적 예수만 찾고 있어요! 참 답답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는데, 무덤문은 열리고 무덤은 텅 비었으며 수의만 보이는데도 여인들도,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찾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시신만 찾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이 곁에 있는데도 삼일 전에 십자가에 죽은 예수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도행전은 살아계신 주님, 사도들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바울서신을 보십시오! 과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 항상 그의 삶 가운데 나타나셨던 예수,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하신 예수, 지금 내 곁에 살아계신 예수를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변화시켰고, 그에게 친히 이방선교의 사명을 주셨으며 감옥 문이 열리게 하셨고 풍랑에서도 건져주셨으며 수많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어느 시골에서 부활절 아침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활절을 상징하는 계란 모양의 플라스틱박스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에 15분 시간을 줄 테니까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교회 뜰에 나가서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갔다 교실로 돌아왔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설명을 시켰습니다. 한 아이가 플라스틱 계란 박스에서 예쁜 꽃을 꺼냈습니다. 생명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꽃. 선생님과 아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두 번째 아이가 또 박스를 열었어요. Butterfly! 나비! 살아있는 나비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세 번째 아이가 와서 또 박스를 열었습니다. 이번엔 파릇파릇한 잎사귀. 그 다음 네 번째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필립 차례가 됐어요. 학생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 바보 같은 필립이 뭘 가져 왔을까? 필립이 한참을 주저거리고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괜찮아 필립. 한 번 열어봐. 그러니까 필립이 탁 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학생들이 막 웃으면서 손가락질 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그런데 필립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래요. “쉬! -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지금 우리 곁에 살아계시잖아요!” 순간, 정적과 감동이 모두를 사로잡았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그 분은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김명혁 목사 설교집에서)

     

부활의 현재가운데 사는 사람들(계1:10-18)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태초부터 처음이셨던 주님은 부활하셔서 “세세토록 살아있어”(18절) 우리의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보았던 예수님과 교회의 모습은 고난과 핍박 중에 있는 “현재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장차 주님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일곱 촛대로 상징되는 교회는 금 촛대처럼 매우 존귀한 존재지만 또한 얼마나 불안정한지 바람 한 번 불면 꺼지는 촛불(등잔)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촛대 사이에 계신 부활의 주님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까? 

부활의 예수님은 지금 온 땅의 통치자(13절/ 발에 끌리는 옷, 금띠)로 계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모든 죄를 감찰하시는 재판장(14절/ 흰 머리털, 불꽃같은 눈)이시며, 부활의 주님은 엄위로우신 심판의 주(14절/ 주석 같은 발, 물 같은 소리)이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심판하면 더 큰 분란과 대립이 심화되지만 심판 주이신 그분은 가장 완벽하게 심판해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주의 사자들의 보호자(16절/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죄를 드러내시고 악을 갈라내시는 분(16절/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옴), 해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우신 분(16)이십니다. 바로 그 분이 지금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는 과거에 죽으셨던 분이요 지금은 부활하사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이시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교회는 이 어둠의 세상가운데 승리자이신 주님과 함께 세상 끝날 까지 존재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입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성취된 교회입니다. 지금 환난 속에서 승리를 보고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최근, 대전 지역에 새롭게 개척된 교회가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지면서 많은 진통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여러 날 함께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염려가운데 조심스럽게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때는 바람 앞에 촛불 같았습니다. 잘 안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만 두려고도 했습니다. 지금은 모범적으로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교회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흥분한 음성으로요! 올 해 하나님이 너무나 좋은 일을 교회에 베풀어 주셨답니다. 미국에서 온 한 분이 친분 있는 교인을 따라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가 서울에 있는 잘 아는 한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대전에 이러이러한 개척교회가 있는데 교인들이 초대교회처럼 모두 열심히 섬기며 전도하고 있다고. 그 권사님은 자식이 없는 분인데 마음이 감동이 되어 교회 강단 꽃꽂이 헌금 백만 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천만 원을 보내주셨답니다. 놀랍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분인데요! 그런데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 임대비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보증금 일억에 월세 6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통장으로 일억 원을 보내면서 월세를 줄인 금액은 반드시 선교비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목사님! 참, 하나님이 이런 일도 일어나게 하십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과 교우들이 이미 그렇게 잘 될 줄을 알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공연한 근심이요 자칫 그만 둘 뻔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서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시고 촛대 같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고 돌보시고 지키십니다. 지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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