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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1-3) - " 하나님의 추수 " / 이혜숙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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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11-3) - " 하나님의 추수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0-11-13 (금) 18:57 3년전 1072  

본문)  사40:27-31, 시65, 계7:9-17, 눅18:1-8

 

  추수감사주일예배는 농부들이 곡식을 추수한 후 가장 좋은 것들을 주님 앞으로 가지고 와서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입니다. 가나안땅에 정착한 후에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절기를 지켰고, 오늘날 우리들도 가을철 수확을 끝낸 주의 백성들이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예배합니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돌보고 거둬들이기 위해 수고하는 농부들의 땀의 결실이 있도록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또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수고한 농부들에게 감사합시다. 농부들의 수확은 농부들 뿐 아니라 도시든 어디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됩니다. 

 

  그렇다면 도시인들은 추수감사주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요? 농촌교회의 집사님께서 묻습니다. “작년까지는 농사를 지어서 예물을 바쳤는데 올해는 농사를 안 지어서 바칠 것이 없는데 어떻게 추수감사주일 예물을 냅니까?” 주님의 말씀처럼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지만 그 분에게는 진지한 질문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니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까? 거둬들인 곡식이 없는데도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야 합니까? 

 

  지역이 어디든, 나이가 많고 적든 밥을 먹어야 삽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현대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살 것 같은 그 무언가는 아닐까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해야지만 되는, 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없거나 활력을 가질 수 없는 그것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밥일 수도, 직업일 수도, 취미생활일 수도, 이웃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 일용할 양식과 맞먹는 중요성을 띨 수 있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의 일용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어느 도시에 원한을 품은 과부가 있습니다. 그 과부는 도움 받을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할 사람은 재판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사람을 무시하는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싶으십니까? 

 

  원한이 사무쳐있습니다. 과부입니다. 과부가 품고 있는 원한은 어쩌면 과부가 되도록 했던 원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편이 없는 그녀의 하나뿐인 자녀와 관련된 일일수도 있겠지요. 하루종일 지치도록 땀 흘려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궁핍한 삶이 계속되는 원통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사무친 원한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과부는 원한을 풀어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나는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재판관뿐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불의하다고 규정한 재판관입니다. 재판관 자신도 의롭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과부 역시 그가 원한을 풀어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는 자꾸 찾아갑니다. 그러자 재판관이 마음을 바꿨습니다. 과부가 자꾸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니 어서 끝을 내려고 합니다. 과부의 청을 들어주겠다는 재판관의 결정은 과부의 원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과부는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 어렴풋한 희망이 원한에 사무친 과부에게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피곤하거나 기진맥진하지 않으신 분이시다. 그런 분께서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신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다.” 앙망은 ‘꼬아서 함께 묶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기다림과 갈망입니다. 꼬아서 함께 묶는 것. 농경시대에는 벼를 거두어들인 후 볏짚을 꼬아서 새끼줄을 만들어 썼습니다. 볏짚 몇 가닥이 한데 꼬였습니다. 든든해지고 질겨집니다. 

 

전도서 4장 12절의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끼리 힘을 합해도 적에게 지지 않는데, 온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과 하나가 된 때에야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여호와로부터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갈망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보다 먼저 ‘주님과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앙망을 품고서 간절한 희망을 붙잡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시65:2-3) 이 기도는 왕의 찬양일 뿐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고백이며 찬양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느라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들이 생기고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의 기도입니다. 일상에 빠져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잃었던 것을 기억해낸 이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뜰에 살게 하십니다. 죄악에 빠진 사람이 주의 뜰에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보다 더 큰 감사와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뒤집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십니다. 당신께서 이미 마련해 놓으신 아름다운 곳에 살도록 찾으십니다. 늘 찾아오셔서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쌓아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랑하기 위해 하나님은 교회에 잘 모셔놓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알 듯 모를 듯 갑질도 해가며 사는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희생과 용서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의 뜰에서 살 구원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채근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줘야 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번거롭게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하시고 또 찾아오시고, 또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번거롭게 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번거롭게 하는 일이 더 크고 많습니다. 

 

  주님의 말씀 때문에, 십자가 때문에 마음이 번거로워졌다면 이제는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야 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가 자주 찾아오는 게 번거로워서 그 원한을 풀어주려고 마음먹었듯이 우리들도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함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신 그 새끼줄에 나도 한데 엮어져야 합니다.

 

  우리 희망의 근거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하나님의 희망은 우리들과 당신이 떨어질 수 없이 한데 엮인 새끼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뜰에서 아름다움으로 만족해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흰 옷을 입고 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을 향해 ‘땅을 심판하여 자신들이 흘린 피의 억울함을 주께서 갚아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앙망함이 있었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고 생명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찬양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지난 2000년 동안, 더 이전, 아담 이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아오시고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해주십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는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라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곡식과 열매 뿐 아니라 나를 살도록 하는 그 무엇, 삶의 의미를 찾고, 활력이 돋게 하고, 보람되게 하는 일용할 양식을 얻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시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4:29)” 하나님의 추수 때가 가깝습니다. 늘 찾아오시고 사랑을 고백하시는 주께 감사합시다. 주님의 사랑은 말뿐인 사랑이 아닙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의 추수를 위해 애쓰며 분주하던 우리가, 주의 사랑에 감동하므로 마음을 바꿔 주의 손에 들려지는 열매가 됩시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은혜를 믿고 하나님의 추수 때에 알곡으로 거두어지는 소망 안에서 주와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앙망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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