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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8-2) - "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 " / 김진수 목사 (종교개혁주일, 이단경계주일)

관리자 2020-10-23 (금) 09:31 3년전 876  

본문) 출33:18-23, 롬11:33-36, 눅10:21-24


사자도 못 건드리는 것 둘이 있답니다. 하나는 고슴도치이고 다른 하나는 “타조 알”입니다. 고슴도치는 금방 이해가 갑니다. 찌르는 가시가 있으니까요. “타조 알”은 뜻밖입니다. 그런데 타조 알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자도 건드릴 수 없는 신비한 “생명유지 장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알이 둥글고 너무 커서 사자의 송곳니가 닿지 않아 건드릴 수 없고 알껍데기는 너무 강해서 사자의 발톱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약해서 새끼들이 깨고 나오기에 충분하다고 합니다. 둘째는 알 내부로는 어떤 작은 세균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빈틈이 없지만 안에 있는 생명이 호흡하도록 극 초미세 구멍이 3만여 개나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표면이 구형(球形)으로 잘 굴러다녀 사자의 공격은 무디게 하지만 엄마의 체온은 골고루 받을 수 있고 한 쪽은 뾰족하고 가볍고 다른 한 쪽은 둥글고 무거워 굴러도 원을 그리며 굴러서 엄마의 둥지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창조질서와 그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 본문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구약본문과 서신서 본문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출33:18, 롬11:36)”을 언급하고 있으며, 복음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영광(히 דובכ/카보드, 헬 δόξα/독사)은 하나님의 존재, 성품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광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무엇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곳에만 영광(Glory)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둥, 불, 구름, 진동, 큰 소리 등 두렵고 놀라운 현상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누구와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 감히 손을 대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영역을 침범한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인간은 다만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굴복하고 엎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가리시는 영광(출33:18-23)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했던 분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40일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빽빽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여 달라고 기도했고(18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영광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모세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선한 것”이었습니다.(19절) 결함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영원하며 의로우시고 선하며 거룩한 영광입니다. 악하고 추한 것, 불의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사라지고 변하지만 주 안에 있는 영광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으며 죄와 죽음과 거짓과 실패를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며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영광입니다. 이런 영광을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조건을 초월해 베푸시는 절대 은총의 영광입니다.(19절) 모든 좋은 것에는 값이 있습니다. 대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 아들까지 죽이시고 우리를 속량하시는 그 은혜의 영광은 너무 크고 값진 은혜라서 값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 값을 치를 만한 사람도, 그 영광만한 어떤 가치도 인간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이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조건 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자격 있는 자, 공로 있는 자가 아니라 너무 값지고 존귀하여 그냥 주시는 은총입니다. 아무 힘없는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힘 있는 자나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긍휼과 자비가 필요한 연약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충격적이며 놀라운 은혜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감히 얼굴을 볼 수 없는 영광입니다.(20절) 우리의 제한된 육체의 눈이 그 영광의 광채를 감당할 수 없고, 우리의 심장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대면하는 것을 감당 못합니다. 살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뿐입니다. 모세는 빽빽한 구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뿐이며 이사야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며 “화로다 내가 죽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영광을 보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처럼 그 영광에 압도당하여 엎드려 옛사람은 죽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증거 하는 새 사람이 되든지! 웃사처럼 법궤 안에 머무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영광을 모르고 수레와 함께 뛰는 법궤를 자기 손으로 감히 통제하려하다 참람하게도 죽든지!


나타내시는 영광(눅10:21-24/ 출33:21-23)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22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하나님은 이 놀라운 은총을 이미 모세에게 예고하셨습니다. 모세 곁에 있는 한 “반석” 곁에 서고, 그 틈에 숨겨두셔서 하나님의 뒷 보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한 곳, 곧 그 반석 위에서 만이 볼 수 있습니다(출 33:21~23).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에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등만을 볼 수 있는 영광입니다(눅10:23). 하나님의 등은 감추어진 영광, 가리신 영광을 뜻합니다.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통해, 그가 모세를 통해 행하신 놀라운 표적을 통해 무엇보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영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인격 안에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자연 질서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고, 한 별은 지정된 궤도를 벗어나 한 지점을 향해 움직이는 놀라운 일이 나타났으며,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온 인류를 구원할 한 왕께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여 찾아왔으며 천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으며, 이미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초라한 한 시골,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공생애를 통해서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새 창조와 치유와 만물의 통치와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무엇보다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친히 저주의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태산 같은 영광스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저 빛나는 능력과 영광을 보여주셨고 재림하시는 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친히 우리에게 영광을 보여주셨으나 다 본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21절, 23-24절) 장성한 어른들은 이성으로 분별하고 판단하여 정보를 얻습니다. 납득이 안 되고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못 믿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뛰어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정보를 얻습니다. 아직 분별력이 없고 지각이 발달되지 않아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소중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믿어서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큰 위험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 혼자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괴도 당하고 건강 헤치는 음식도 먹어서 탈이 납니다. 장성한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좁은 판단을 뛰어넘는 것은 아무리 소중한 정보라도 놓치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일은 지각을 사용해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는 가장 중요한 일애 대해서는 우리의 좁은 판단으로 하면 안 됩니다.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증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본 사람,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죽으셨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신 분 예수의 말씀,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그 주님을 증거 하는 제자들과 증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누리게 하시는 영광(롬11:33-36)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받고 누려야 우리 삶이 풍성해 집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일을 만나도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고 그럴 때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찾아 누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은총을 알게 되었습니다(36절).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 크고 광대하여 그것을 알 자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너무 커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33-34절)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알 수 없어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야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얻는 자가 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먼저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35-36절) 주께 먼저 드리고 얻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드려서 얻으려는 사람은 고달프고 힘듭니다. 드린 만큼 밖에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먼저 그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영광을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구원과 은총의 영광을 먼저 받는 자는 그 은혜가 감격스러워 행복하고,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영광스러워 스데반처럼 자신의 전부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고 누리는 사람은 그 풍성함에 만족합니다. 너무 차고 넘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상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서 세상의 낙을 버립니다. 그 영광의 은총에 감격하여 잠시 누릴 “죄악의 낙(히11:25)”의 유혹을 떠나고 죄악의 추한 모습을 벗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본 사람은 바울처럼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력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을 향한 눈이 멀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는 그 영광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늘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마13:44). 날마다 하늘의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영광의 광채가운데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운데 삽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이 영광의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소금.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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