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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7-3) - " 보시는 하나님, 보이는 믿음 " / 이성호 목사 (포항을 사랑하는 교회)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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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7-3) - " 보시는 하나님, 보이는 믿음 " / 이성호 목사 (포항을 사랑하는 교회)

관리자 2020-10-17 (토) 09:52 3년전 1156  

본문) 출 3:1-8, 히 4:1-13, 요 3:31-36


1. 보시는 하나님(3:1-8)

 

하나님 나라로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아시는(3:7; 2: 23~25) 하나님의 역사 개입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음을 단적으로 확인케 하는 출애굽 사건의 시발점이 오늘 창조절 일곱째 주일의 구약 본문입니다. 그 나라는 장차 주어질 새로운 국가와 영토뿐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류 전체를 향한 거룩한 백성되게 하시는 새 창조를 보증합니다.

 

모세는 버려진 사람, 잊혀진 사람, 실패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동족에게, 가족에게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인물이 되었을 때,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친구로 삼으십니다. 모세가 겪은 절대적 박탈은 신분의 추락과 환경의 전환과 거주의 제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절망과 좌절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거부되고 외면당함이 가져온 처절한 배신감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 박해받는 내 민족을 사랑한 죄. 불의에 대한 견딜수 없는 분노를 참지 못한 죄,.. 그것은 어쩌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뿌리를 기억함에서 오는 결과였을 것입니다.

 

그 고통은 오랫 세월동안 그를 괴롭혔으며 고향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날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운명을 안고 출생되었으며, 애굽의 왕가의 견재는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버려진 사람답게 실패한 인생이 되어 이방인의 땅에 거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고 잊지 않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보셨으며 모세에게 자신을 보이시는 것으로 그를 부르십니다.

 

7의 음성,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신음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과 모든 고통을 보고 계셨음을 직감합니다. 이때 보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바라보다 나타내다 조사하다의 뜻이지만 구약에서 약 1,300회나 사용되며 단순히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확대된 비유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의미들 중에서 다음의 다섯은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보낸 사자들에 의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해하고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6:10, 52:10, 15, 대하 26:5, 63:2[H3], 69:23 [H24]). (2) 하나님 쪽에서 받아들이는 행위를 나타냅니다(7:1, 23:21) (3) 이 단어는 또한 준비하다’(to provide)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22:8, 14, 삼상 16:1). (4) 이 동사는 또한 ‘...에 관심을 가지다’(to have respect to)를 의미하는데, 특히 하나님의 자비롭게 행하시는 것에 대해 사용됩니다(38:5, 시 시 66:18, 138:6).

 

(5) 특별한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받는 참된 선지자의 행동을 나타냄에 있어서 다른 어떤 단어보다 빈번히 사용된다는 점입니다(12:6, 46:2, 삼상 3:15, 1:11, 12, 13, 1:1, 4, 15, 27, 28, 2:9, 8:3, 40:2, 43:3, 10:7-8, 16). 무엇보다 선지자(prophet)와 연결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꿈이나 환상을 통해 보는 대변자’, 선견자역시 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보시고 보이신 하나님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치워진 인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보게 하시며 새 나라를 여십니다.

 

먼저 보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2. 현재를 위한 진지한 경고(4:1-13)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의 성취는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동일한 안식을 확증합니다. 이 안식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1:2) 하나님이 이루시는 완성입니다. 이 안식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 일곱 째 날에 쉬심과 같이 장차 도래할 창조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백성인 우리에게 임하는 안식의 약속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세상풍파에서 나의 안위가 보존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8). 이 안식의 약속은 1에 기록된 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믿는자들이 장차 들어갈 영원한 안식입니다.

 

우리 믿음의 순종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져야 합니다(2,11). 히브리서 본문은 하나님 백성으로 안도하는 유대인들과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 안에 거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민감하고 예리한 권면의 말(13:22) 입니다. 이 권면은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핵심적 내용에 근거합니다. 익명의 저자는 신앙이 나타해지기 시작하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에서 스스로 등을 돌려, 위험에 처한 교회를 고려하여 쓰여진 말씀입니다(2:1,3, 10:25, 12:4, 13:17).

 

루터에 이어 종교개혁 선봉에 섰던 멜랑히턴은 성경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 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것을 거듭 당부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적에 마음을 뺏기고 보이지 않는 신비를 우선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신비한 체험을 원하고, 또 강요받기도 합니다. 어떤이들은 그것이 구원의 증거라기도 하고, 성령받은 표징이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럼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기적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중심입니다.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마음입니다. 크기보다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거져 먹이시며 강건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과 대면하도록 흩으시는 분입니다. 세상으로, 일터로, 사람들에게로, 세파를 헤치고 복음을 살라 하십니다.

 

천국은 크기가 아닌 진정성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꾸며지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무슨 인간적인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교회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보고 알고 순종하는 신앙적 삶은 예비된 안식으로 인도하는 열쇠입니다.

 

3. 3:31~36(보이는 믿음)

 

세례 요한의 마지막 메시지가 이번 주 복음서 본문입니다. 보지 않고 믿은 자요, 주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였으며 자신의 전 생을 던진 보이는 믿음의 소유자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영생을 증언합니다(1:7, 3:36). 이 믿음은 순종으로 보증되는데, 세례 요한은 이 순종을 가리켜 그 아들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36a).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 믿음입니다.

 

주일 예배에 세본문을 강론할 때 가장 큰 유익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게 되며 성경에 대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보고 들은 것을 따르는, 예수 증언자가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요한은 순종을 거부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께서 오심으로 더 이상 미래 사건이 아닌, 이미 시작된 심판입니다(1:1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의 평이 반드시 합당한 것만은 아닙니다. 모세는 사람에겐 잊혀졌으나 하나님께는 기억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불결한 마굿간에서 나시고, 저주의 갈릴리에서 사시고, 친족의 조롱과 가족의 업신여김을 받으시고, 머리둘 곳이 없으시고, 작은 나귀를 타시고,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신 그 예수를 따른다면서, 매일 자랑하고, 인기에 목말라 하고, 칭찬에 솔깃하고, 세상 힘 달라 하고, 날마다 사람 숫자를 세며 재정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가능하면 돈과 기적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하나님의 멋진 피조물로 살면 좋겠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고 찬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보이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교우들과 함께, 신실하한 믿음의 길을 열어 가는, 코로나 앞에서도 당당한 여러분의 이 한주도 주안에서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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